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국정원 특수요원도 피해갈 수 없는 한국여성의 비애 공감하다

입력 2020. 04. 29   16:47
업데이트 2020. 05. 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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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굿캐스팅:진짜 현실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인가?


첫 액션물에 도전하는 김지영
첫 액션물에 도전하는 김지영

최근 새롭게 선보이는 미니시리즈 드라마에서는 눈에 띄는 흐름이 포착된다. 예전에는 흔히 보지 못했던 개성 만점의 전문직 여성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그들이 아예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는 드라마들까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스카이 캐슬’의 대성공 이후 간간이 시도되던 여성 캐릭터 중심의 전개는 ‘동백꽃 필 무렵’을 거치면서 하나의 장르처럼 정착했고, 이젠 캐스팅만 성공적이라면 흥행 공식 중 하나로 인정되는 분위기다. 지속적으로 투자와 편성이 이어지는 것이다.

강력한 여성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끌어가는 드라마들은 최근엔 성적도 꾸준한 편이다. 사실상 배우 김서형의 원 톱 드라마라 볼 수 있는 ‘아무도 모른다’는 최고 시청률이 11%대를 달성하며 비교적 성공적으로 종영을 맞았다. 김혜수·주지훈의 투 톱을 내세운 ‘하이에나’도 역시 최고 시청률 16%를 돌파하면서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다. 배우 김희애가 원 톱으로 활약하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8회 만에 20%를 돌파했다. ‘부부의 세계’는 10회 차에 벌써 22.9%를 기록하면서 ‘스카이 캐슬’이 세웠던 JTBC 사상 최고 시청률 기록의 턱밑까지 도달했다. ‘부부의 세계’는 ‘동백꽃 필 무렵’이 세운 시청률 기록은 물론 ‘낭만닥터 김사부2’가 기록한 2018년 이후 미니시리즈 최고 시청률 기록까지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의 승승장구는 새 드라마 ‘굿캐스팅’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도 모른다’의 뒤를 이어서 여성 캐릭터 중심의 수사물을 연거푸 선보인 SBS의 도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모한 도전으로 평가됐을 것이다. 하지만, ‘굿캐스팅’은 전작의 기록보다 더 좋은 12%대의 시청률을 첫 회에 기록했다. 이는 ‘낭만닥터 김사부2’의 첫 회 기록에 버금가는 성적으로, 사실상 시즌1의 덕을 봤던 ‘낭만닥터 김사부2’보다 더 좋은 성적이라고 볼 수 있는 기록이다. 이제 고작 2회가 방영됐을 뿐이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기세가 유지된다고 하면 ‘부부의 세계’와 ‘굿캐스팅’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함께 시청률이 상승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고, 회차가 많이 남은 ‘굿캐스팅’이 최종적으로는 시청률 기록 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싱글맘 국정원 요원 역의 유인영
싱글맘 국정원 요원 역의 유인영

사실 ‘굿캐스팅’의 갈등 구조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이미 시청자들은 외국 드라마 시리즈 등을 통해서 ‘여성 특수요원들의 수사물’을 숱하게 봐 왔다. 국정원이란 기관이 드라마 소재로는 희귀한 편이지만 여성 경찰들의 액션들은 최근 미니시리즈에서는 두드러진 흐름 중 하나였기에, 액션 신만으로는 확실한 차별화가 쉽지 않다. 또 개성 뚜렷한 세 요원의 역할 분담과 코믹 코드들은 80년대 초 큰 인기를 끌었던 ‘미녀 삼총사’ 등에서 이미 봐왔던 것으로 사뭇 모방이라는 지적까지도 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좌천돼 현장에서 빠졌던 요원들이 어떻게 ‘굿캐스팅’이 돼 한 팀으로 복귀해서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인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어 스토리 전개가 다소 엉성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캐스팅’은 숨 가쁜 전개 속도만큼이나 충분히 신선하다. 보면 볼수록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색다른 재미까지도 챙길 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국정원 특수요원들도 피해갈 수 없는 한국 여성들의 비애가 강력한 미해결 과제로 작용하면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비혼모의 ‘경력단절’ 상황이나 맞벌이를 사실상 강요당하는 아내의 심정, 또 여성이기 때문에 시달려야만 하는 편견과 오해 등이 갈등의 바탕이 되고 있어, 누구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일상 속의 불평등이 이들 액션의 통쾌함을 강화하기도 하고, 또 매력적인 반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작가는 그런 상황과 맞물려서 웃음이 터지게 하거나,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게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다. 이런 영리함이 더해져 신선한 재미가 쏟아지는 것이다. 

 

국정원 블랙요원 역의 최강희
국정원 블랙요원 역의 최강희

두 번째 이유는, ‘미스 캐스팅’처럼 느껴지는 전적(?)이 확실한 여자 배우들을, 전혀 다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는 데에 있다. 최강희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가두고 있던 ‘극한 동안 외모’에서 벗어나 날고, 뛰고, 구르는 모습을 선보이며 탁월한 블랙 요원의 모습을 완벽히 구현해 냈다. 김지영 역시 최근의 작품들에서 탐구해온 아줌마 캐릭터를 잘 변용하면서 창조적으로 생활력 강한 요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인영 역시 해킹과 육아라는 정해진 영역 외에는 계속 사고를 치는 색다른 민폐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이미 잘 알려진 주연급 배우들은 자신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구축한 이미지를 단박에 깨뜨릴 수도 있는 선택이라면 우선은 피하려 한다. 긴 공백기를 가졌거나, 기존의 이미지를 훼손할 만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먹여 살려야 하는 식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면에서 최강희나 유인영의 도전은 충분히 평가되어야 한다. 더욱이 이런 도전이 식상할 수 있는 전개를 새롭게 해석할 여지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캐스팅의 중요성까지 확인하게 하는 사례가 된 것이다.

최강희는 제작발표회에서 2년 만의 복귀작으로 ‘걸크러시 액션물’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시대에 알맞게 힘센 사람들이 일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통쾌하게 싸워주고 이겨주고 같이 울어주니까 보시는 분들이 대리 만족하고 응원해주실 것 같다”면서 스스로를 ‘액션 유망주’로 불렀다고 한다. 작품을 고르면서도 시대정신을 고민하는 그의 안목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굿캐스팅’이 어떤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 ‘굿캐스팅’과 같은 기획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와 더불어 한국의 문화콘텐츠 안에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여성에 대한 편견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확실히, 세상은 달라졌고, 지금도 계속 달라지고 있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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