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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주 병영칼럼] 국어순화와 우리말 다듬기

입력 2020. 04. 20   13:58
업데이트 2020. 04. 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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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주 이화여대 국어문화원 선임연구원
한은주 이화여대 국어문화원 선임연구원


1980년대 초등학교에 다녔다. 지금도 기억나는 도화지 크기의 누릿한 종이 위에 포도송이를 그려두어 한 알에 스티커 하나씩을 붙여 포도 한 송이를 가득 채우면 담임선생님께서 상을 주셨다. 선물과 함께 친구들 앞에서 큰 칭찬을 해 주시는데 나는 그 칭찬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던 기억이 있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매일 아침 칠판에 ‘국어순화’를 써두셨고 토요일 오전에 한 주간 배운 국어순화 시험을 보고 잘한 학생에게 스티커를 주셨다. 그 포도송이 이름은 ‘국어순화’였다.

한번은 ‘캬베츠→양배추’, ‘닌징→당근’, ‘규리→오이’, ‘다마네기→양파’ 등 채소의 이름에서 쓰는 일본말을 순화해 주셨는데 어린 나이에도 우리 주변에 정말 일본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러면서 주변 어르신들이 “아이꼬야” 하며 서로의 이름을 독특하게 불렀는데 그것들이 모두 일본식 이름이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이처럼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의 국어순화는 1976년 ‘국어순화세칙’에 따라 일본식 한자어나 일본어를 어원으로 하는 외래어를 아주 바꾸어서 우리 말과 글의 사용으로 규정했다. 이는 일본어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언어 순화의 형태였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로 ‘가라, 잇빠이, 기스’를 모두 ‘가짜, 가득, 흠(생채기)’과 같이 순화해 쓰도록 했다. ‘곤조, 신삥, 쇼부’처럼 속되게 느껴지는 생활 일본어를 ‘본성(심지), 새내기, 흥정(결판)’으로 고쳐 우리말답게 쓰도록 했다. 건설 분야에서 쓰는 ‘가꾸목, 구루마, 시다바리’는 ‘각목(각재), 수레(달구지), 보조원(밑일꾼)’으로 순화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우리의 언어에는 외국어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자리했다. ‘오늘 해피해’ ‘그레이 컬러가 멋져’ ‘아이가 샤이해서요’처럼 말이다. 때로는 문법에 전혀 개의치 않고 알고 있는 외국어를 말마다 넣어 쓰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일본어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국어순화가 아닌 우리 말과 글을 우리 말과 글답게 쓰자는 취지에서 ‘국어순화’를 ‘우리말 다듬기’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리말 다듬기’는 일본어 투 용어와 일본어 투 한자어, ‘밤바, 난닝구’처럼 일본을 거쳐 들어온 변형된 서구 외래어와 ‘척사(擲柶) 대회(윷놀이 대회의 한자어 표현)’와 같은 어려운 한자어, 한글맞춤법이 틀리는 경우와 국가 기관의 이름에서부터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영어 약자나 외국어의 표기를 우리말로 고쳐 쓰는 경우도 포함했다.

또 언어의 굴절이 자유롭게 허용된다는 의식이 심어질 수 있는 통신 언어를 일상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말 다듬기의 대상이다.

국어순화를 시작한 것이 우리의 것을 되찾으려는 노력이었다면, 우리말 다듬기는 오염된 언어를 지키려는 노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만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쓰는 일상의 언어에서도 우리말답게 다듬어 바르게 쓰는 것을 함께 실천하며 우리말을 지켜야 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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