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실감세대: 오감을 만족시키는 현실 같은 감각에 끌리다
바뀐 일상 적응력이 다르다
재택근무·‘싸강’ 등 일상생활 큰 변화
예기치 않은 현실서 재미·의미 찾아
게임에서
무인도 이주해 생활 터전 가꾸는
시뮬레이션 게임 ‘모동숲’에 열광
수시로 후기 쓰고 참가자와 공유
영화에서
떼창 하며 보는 ‘싱어롱’에서
떼춤 추는 ‘댄스어롱’까지
눈·귀뿐 아니라 온몸으로 관람
여행에서
비슷 비슷한 단체 여행은 사양
여행지 특별한 매력 실감 원해
독서에서
확실한 콘셉트 독립서점 인기
관점과 오감 만족 감성까지 소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MZ세대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재택근무에 능숙하게 적응해야하는 직장인들과 사이버 강의(싸강)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불만도 있지만, 나름 거기서 재미와 의미를 찾고 있다. 물론 아르바이트(알바) 일자리가 없어지고, 취업 시험이 연기되거나 인원이 줄어드는 등의 피해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지만 M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예기치 않은 사태에 가장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코로나19로 MZ세대와 그 윗세대의 차이점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숱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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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의 교수가 실시간 ‘싸강’을 하는데, 딱 한 명의 학생을 빼고는 모두 카메라를 껐단다. 교수 자신도 어떻게 카메라를 꺼야 하는지 모르고 학생도 그런 눈치인데, 그 학생은 교수보다도 나이가 많은 만학도였단다. ‘시간 내내 둘이 눈싸움하듯이 마주 보고 하느라 몹시 난감’한 데다 그분의 ‘허리 뒤틀고 하품 참는 적나라한 모습이 노출된 민망함’에 수업을 끝내자마자 초저녁인데 쓰러져서 다음 날 아침에야 겨우 일어났단다. 그런데 학생들 다수는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는 교수님들의, 자신들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온라인 행동이 재미있다. MZ세대에게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활동하는 무대 중 하나가 온라인이었다. 집안에서의 자녀, 학교에서 학생, 축구클럽에서 선수, 게임에서 팀원으로서의 다양한 나 자신의 하나로 혹은 다수로 온라인에서의 내가 있었다. 듣고 본다는 단순 시청각 이상의 감각들을 느끼고, 그로부터 감정으로 전이되는 과정도 자연스럽다.
코로나19 감염과 전파 예방을 위한 대응으로 ‘집콕’하고 있는 MZ세대 친구들에게 일을 하거나, 싸강하는 시간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활동을 물었다. 게임, 요리, 실내운동 등의 대답이 주로 나왔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치를 받지는 못했으나, 공통의 화제에 오르며 가장 뚜렷한 다수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이 있었다. ‘모동숲(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그 주인공이었다. 모동숲은 무인도에 이주해 생활 터전을 가꾸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란 슬로건이 어떤 체험을 할 수 있는지 대변해준다.
온라인 게임이지만 활동이 게임 장면 스크린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용자들은 수시로 트윗이나 페북 후기를 써서 참가자들과 나누는데, 이들의 감각이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는다. 집안에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을 몇 차례 노크하다가 갑자기 안에서 사람 있다는 노크 응답이 와서 무서워 잠을 설친다. 곤충이 나타나서 화들짝 놀라며 실제 자기 손을 허공에 휘젓는다. 자신의 캐릭터를 꾸미는데, 소음인이라 감기에 잘 걸린다면서 볼에 오이를 붙인다. 이들의 감각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별이 없다. 어릴 때부터 이들에게는 그런 구분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느 한쪽의 비중이 커졌다가 줄어들고 하는 변동은 항상 있어 왔다.
소비 트렌드의 관점에서 MZ세대를 ‘실감세대’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현실 같은 감각에 끌리는’ 소비 행태를 보인다. 여기에서의 ‘실감’은 오프라인 쪽에 더 비중을 뒀다. 온라인, 스트리밍 콘텐츠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클릭 한 번 또는 한 손가락으로 화면을 쓱 밀어 모든 것을 구매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더 다양하고 낯선 자극을 온몸으로 느끼며 실행하는 세대이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그야말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감각 총동원령을 내리며, 체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왔다. 온라인 쪽으로 너무나 몰렸기에 오프라인에서의 체험이 상대적으로 신선하게 보이고 색다르게 느껴진 까닭이기도 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만남의 가장 큰 차이는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에 함께 있는가 여부다. 머리야 온라인에서도 함께 쓸 수 있지만, 뭔가 몸의 움직임이 들어가는 데서 확연히 구분된다. 모여서 함께 몸과 머리를 쓰는 방 탈출, 실내 스포츠장, 보드게임 카페 등이 실감세대적인 소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팝콘이나 먹으며 눈·귀만 고정시켰던 영화 관람도 몸과 마음을 집단으로 함께 움직이는 활동으로 한국의 MZ세대가 바꾸었다. ‘떼창’하며 보는 ‘싱어롱’에서 음악에 맞춰 ‘떼춤’을 추는 ‘댄스어롱’까지 나왔고, 앞으로도 영화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다양한 새로운 방식이 출현하리라 기대한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으로 여행업을 꼽는다. 그런데 지난 10년 넘게 여행사의 주력이었던 계획에 맞춰 진행되는 단체여행은 사양길이었다. ‘어디서 여행의 매력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1, 2위로 나오지만, 낯선 것의 ‘체험’을 응답하는 비율이 계속 늘고 있다. 단순히 보는 관광이 아닌 여행지의 특수한 매력을 접하고 실감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한 달 살아보기’가 인기를 끌고 있고, 여행사들도 ‘여행은 살아보는 것’ ‘한 지역에서의 특별한 경험 여행’ 등의 광고 문구를 내세우고 있다. MZ세대에게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설렘은 들이는 비용과 시간과 적응의 귀찮음을 상쇄한다. 기업들이 생산시설 등으로 외부인을 초청하는 ‘팩토리 투어’ 같은 프로그램도 일방적인 홍보 행사가 아닌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제주 맥주 양조장 투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아예 기업에서 마치 여행사가 여행 참가자를 대상으로 하듯이 직접 방문객들을 모집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독서 인구는 줄어든다고 하는데 서점은 늘고 있다. 특히 확실한 콘셉트를 가진 독립서점들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독립서점들에서는 특별전시, 북토크, 책과 함께 하는 콘서트 등의 행사들이 열린다. 눈으로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닌 다양한 감각으로 책을 만나고 느끼게 한다. 대형 서점의 대표인 교보문고에서는 책에 뿌리는 향수인 ‘북퍼퓸’을 내놓고 판매했다. 책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향들이 나왔다. 시각은 물론이고, 손으로 책을 만질 때의 촉각,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 청각에 향수를 뿌려 그에 어울리는 후각까지 느끼게 했다. 특정한 책과 함께 즐기면 좋을 음료와 음식을 추천하는 미각이 함께하는 경우도 많다. 이제 곧 책을 읽는 관점과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성까지 판매한다. 책 한 권을 집에서 읽을 때와 다른 ‘현장성’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현장성의 매력’은 곳곳에서 발현되면서 소비되고 있다.
스크린 스포츠가 기존의 골프와 야구를 넘어 확장하고 있는데, 낚시와 사격이 대표주자이다. 낚시꾼들이 입에 달고 사는 ‘손맛’, 사격 좀 해봤다는 이들이 입에 잘 올리는 ‘반동’을 느낄 수 있다. 윗세대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기술에 힘입어 MZ세대도 느끼고 소비하게 된 것이다. 그런 감각에 기초한 감성의 교차점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싸강’ 시대에 맞춰 기존의 강의 평가법을 패러디한 대학내일의 게시물이 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앞서 소개한 카메라 끄는 법을 몰랐던 교수는 대학내일이 ‘싸강’ 시대에 맞춰 기존의 강의 평가법을 패러디한 강의평가서(이미지 참조) 항목 중 네 번째의 ‘귀여운 반려동물’ 보여주기는 자신 있다고 한다. 한 수강생의 반려동물이 랜선을 씹어서 인터넷이 끊겼다고 지각 사유를 대면서 증거물로 반려동물의 사진까지 제출했다. 증거물인 반려동물이 너무 귀여워서 납득했단다. 그렇게 MZ세대와 윗세대가 같은 감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박재항 대학내일 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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