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데뷔…왕좌에 오르다
임요환 수제자로 프로팀 합류
우직한 스타일로 압도적 물량 확보
스승과 나란히 게임 본좌 등극
지도자로 전직
손 빠르기 한계 부딪혀 이른 은퇴
리그 오브 레전드로 종목 전환
코치에서 감독으로 커리어 쌓아가
‘전략의 대가’ 이름값 톡톡
유닛 물량을 뽑아내는 최연성의 실력은 동시대 게이머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이는 손이 빨라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초 단위로 생산 순서를 연습하며 갈고닦아 온 ‘빌드’라는 전략적 구상의 결과였다. 필자 제공
‘리그 오브 레전드’ 시대에 e스포츠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주로 감독이나 코치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인물이지만, ‘최연성’이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수많은 커리어와 결과물들은 아직 감독보다는 선수로서의 트로피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면에서는 인기 절정의 두 게임에서 각각 선수와 감독으로 커리어를 써 내려 왔기에 e스포츠 플레이어로서는 완전체라고 불려도 좋을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스타크래프트 1’: 괴물 테란, 두터운 전략과 빌드로 승부하다
2003년 최연성은 프로게이머로 데뷔하자마자 승리를 쓸어담으며 데뷔 첫해 개인 리그에서 우승하는 위엄을 보여준 신인이었다. 아마추어 시절 온라인에서도 이미 실력 있는 게이머로 유명했던 그를 픽업해 프로선수로 영입하고자 했던 것은 ‘황제’ 임요환과 그의 팀이었던 T1(당시 동양 오리온스)이었다.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 중 주종족을 딱히 정하지 않고 플레이하던 그는 임요환의 수제자로 합류하면서 테란으로 주종족을 결정했고, 곧 프로리그 판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승인 임요환이 기발하고 허를 찌르는 세밀한 변칙을 통해 상대를 흔들고 승리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최연성의 플레이는 ‘머슴’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우직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경기를 보면 언제나 상대 선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물량이 드러나는데, 같은 게임을 하는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유닛 생산의 숫자 차이가 큰 경기가 많았다. 딱히 세밀한 전략 없이 그저 유닛을 많이 잘 뽑아 이긴다는 일종의 평가 절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최연성의 물량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전략에 집중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의 전략은 화려하기보다는 좀 더 대국적인 차원에서의 판짜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똑같은 자원을 놓고 시작하는 전략시뮬레이션에서 더 많은 유닛을 뽑는 것은 결국 초반에 자원으로 유닛을 뽑느냐, 생산용 건물을 늘리고 일꾼을 뽑느냐를 놓고 벌이는 저울질을 통해 이뤄진다. 최연성은 그 속에서 최적의 타이밍을 재고 이를 공식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는 동시대 게이머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물량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물량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초반에 공격 유닛보다는 일꾼에 투자해야 했고, 그만큼 초반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연성은 적은 유닛으로 수비하는 데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탄탄한 수비력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빌드를 통해 대국적인 전략이라는 그만의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된 전략가의 길은 대략 2003년에서 2006년까지 그의 전성기를 일궈내며 최연성이라는 선수를 ‘임이최(임요환 이윤열 최연성)’라는 게임 본좌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2003년 TG삼보 MSL 결승에서 홍진호를 3대 0으로 셧아웃시키며 본격적으로 강자의 자리에 오른 최연성은 2004년 EVER 스타리그 결승에서 스승이나 다름없었던 임요환을 3대 2로 꺾으며 극적인 결과를 연출했다. 개인 리그와 팀 리그를 넘나들며 펼친 그의 경기들은 매번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물량을 쏟아내며 시청자가 ‘어떻게 저게 돼?’ 같은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며 전성기를 견인했다.
꾸준하게 출전하는 리그마다 4강 가기를 밥 먹듯 하던 그였으나, 2006년에 들어서면서 그 위세는 점차 퇴화하기 시작했다. 대국적 판짜기를 통해 승리를 확보하는 그의 스타일은 점차 타 게이머들의 연구로 따라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최연성은 두터운 전략 연구에 비해 손 빠르기가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고, 다른 게이머들이 그의 플레이를 붙잡고 연구하기 시작하자 점차 그의 장점은 사그라들었다. 최연성은 한계를 절감하고 2008년부터 선수생활과 함께 플레잉 코치로 전직을 시도했고, 이후 남들보다 빠른 은퇴와 함께 선수에서 지도자로 자신의 커리어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프릭스 팀 최연성 감독. 사진=팀 공식 페이스북
‘리그 오브 레전드’: 전략과 운영으로 승부하는 감독으로
워낙 빌드를 만들어내는 데 전문적이었다 보니 최연성의 감독/코치 전직은 순조로웠다. 소속팀이었던 T1에서 서서히 코치 역할을 무겁게 가져가면서 그의 코칭을 받은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략적 두뇌가 손 빠르기라는 약점을 넘어서는 코치로서의 포지션은 최연성의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기회였다. 임요환의 뒤를 이어 T1 팀의 수석코치를 맡은 데 이어 2013년에는 T1 감독으로 승격하면서 최연성은 ‘스타크래프트’ 1, 2 두 게임 모두를 총괄하는 감독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감독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이어지며 2016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프로팀 아프리카 프릭스의 감독 자리를 맡게 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로 종목은 확 바뀌었지만, 특유의 전략적 감각은 코치/감독 시절을 겪으며 쌓아 온 매니지먼트 능력과 결합되며 나름의 성과를 냄으로써 ‘감독 최연성’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2020년 현재까지도 최연성은 수많은 감독 교체가 이루어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여전히 같은 팀의 감독을 유지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여러 e스포츠 선수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감독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이는 최연성의 아프리카 프릭스는 2020년 새 시즌에도 여전히 중위권 이상의 팀일 거라는 기대와 예측을 받는 중이다.
‘괴물 신인’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해 전략이라는 영역에서 뛰어난 실력을 구축한 선수가 코치를 거쳐 감독으로 다른 게임에 정착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e스포츠라는 장르 전부를 관통하는 커리어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가 보여주었던 전략과 빌드라는 측면에서의 강점은 e스포츠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 전략이라는 두뇌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그런 전략의 대가가 아직 감독으로 뛰고 있음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전략의 e스포츠가 가진 깊이를 드러내는 효과도 보여준다. 괴물 신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2020년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화려한 데뷔…왕좌에 오르다
임요환 수제자로 프로팀 합류
우직한 스타일로 압도적 물량 확보
스승과 나란히 게임 본좌 등극
지도자로 전직
손 빠르기 한계 부딪혀 이른 은퇴
리그 오브 레전드로 종목 전환
코치에서 감독으로 커리어 쌓아가
‘전략의 대가’ 이름값 톡톡
유닛 물량을 뽑아내는 최연성의 실력은 동시대 게이머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이는 손이 빨라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초 단위로 생산 순서를 연습하며 갈고닦아 온 ‘빌드’라는 전략적 구상의 결과였다. 필자 제공
‘리그 오브 레전드’ 시대에 e스포츠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주로 감독이나 코치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인물이지만, ‘최연성’이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수많은 커리어와 결과물들은 아직 감독보다는 선수로서의 트로피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면에서는 인기 절정의 두 게임에서 각각 선수와 감독으로 커리어를 써 내려 왔기에 e스포츠 플레이어로서는 완전체라고 불려도 좋을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스타크래프트 1’: 괴물 테란, 두터운 전략과 빌드로 승부하다
2003년 최연성은 프로게이머로 데뷔하자마자 승리를 쓸어담으며 데뷔 첫해 개인 리그에서 우승하는 위엄을 보여준 신인이었다. 아마추어 시절 온라인에서도 이미 실력 있는 게이머로 유명했던 그를 픽업해 프로선수로 영입하고자 했던 것은 ‘황제’ 임요환과 그의 팀이었던 T1(당시 동양 오리온스)이었다.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 중 주종족을 딱히 정하지 않고 플레이하던 그는 임요환의 수제자로 합류하면서 테란으로 주종족을 결정했고, 곧 프로리그 판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승인 임요환이 기발하고 허를 찌르는 세밀한 변칙을 통해 상대를 흔들고 승리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최연성의 플레이는 ‘머슴’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우직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경기를 보면 언제나 상대 선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물량이 드러나는데, 같은 게임을 하는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유닛 생산의 숫자 차이가 큰 경기가 많았다. 딱히 세밀한 전략 없이 그저 유닛을 많이 잘 뽑아 이긴다는 일종의 평가 절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최연성의 물량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전략에 집중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의 전략은 화려하기보다는 좀 더 대국적인 차원에서의 판짜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똑같은 자원을 놓고 시작하는 전략시뮬레이션에서 더 많은 유닛을 뽑는 것은 결국 초반에 자원으로 유닛을 뽑느냐, 생산용 건물을 늘리고 일꾼을 뽑느냐를 놓고 벌이는 저울질을 통해 이뤄진다. 최연성은 그 속에서 최적의 타이밍을 재고 이를 공식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는 동시대 게이머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물량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물량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초반에 공격 유닛보다는 일꾼에 투자해야 했고, 그만큼 초반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연성은 적은 유닛으로 수비하는 데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탄탄한 수비력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빌드를 통해 대국적인 전략이라는 그만의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된 전략가의 길은 대략 2003년에서 2006년까지 그의 전성기를 일궈내며 최연성이라는 선수를 ‘임이최(임요환 이윤열 최연성)’라는 게임 본좌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2003년 TG삼보 MSL 결승에서 홍진호를 3대 0으로 셧아웃시키며 본격적으로 강자의 자리에 오른 최연성은 2004년 EVER 스타리그 결승에서 스승이나 다름없었던 임요환을 3대 2로 꺾으며 극적인 결과를 연출했다. 개인 리그와 팀 리그를 넘나들며 펼친 그의 경기들은 매번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물량을 쏟아내며 시청자가 ‘어떻게 저게 돼?’ 같은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며 전성기를 견인했다.
꾸준하게 출전하는 리그마다 4강 가기를 밥 먹듯 하던 그였으나, 2006년에 들어서면서 그 위세는 점차 퇴화하기 시작했다. 대국적 판짜기를 통해 승리를 확보하는 그의 스타일은 점차 타 게이머들의 연구로 따라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최연성은 두터운 전략 연구에 비해 손 빠르기가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고, 다른 게이머들이 그의 플레이를 붙잡고 연구하기 시작하자 점차 그의 장점은 사그라들었다. 최연성은 한계를 절감하고 2008년부터 선수생활과 함께 플레잉 코치로 전직을 시도했고, 이후 남들보다 빠른 은퇴와 함께 선수에서 지도자로 자신의 커리어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프릭스 팀 최연성 감독. 사진=팀 공식 페이스북
‘리그 오브 레전드’: 전략과 운영으로 승부하는 감독으로
워낙 빌드를 만들어내는 데 전문적이었다 보니 최연성의 감독/코치 전직은 순조로웠다. 소속팀이었던 T1에서 서서히 코치 역할을 무겁게 가져가면서 그의 코칭을 받은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략적 두뇌가 손 빠르기라는 약점을 넘어서는 코치로서의 포지션은 최연성의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기회였다. 임요환의 뒤를 이어 T1 팀의 수석코치를 맡은 데 이어 2013년에는 T1 감독으로 승격하면서 최연성은 ‘스타크래프트’ 1, 2 두 게임 모두를 총괄하는 감독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감독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이어지며 2016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프로팀 아프리카 프릭스의 감독 자리를 맡게 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로 종목은 확 바뀌었지만, 특유의 전략적 감각은 코치/감독 시절을 겪으며 쌓아 온 매니지먼트 능력과 결합되며 나름의 성과를 냄으로써 ‘감독 최연성’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2020년 현재까지도 최연성은 수많은 감독 교체가 이루어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여전히 같은 팀의 감독을 유지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여러 e스포츠 선수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감독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이는 최연성의 아프리카 프릭스는 2020년 새 시즌에도 여전히 중위권 이상의 팀일 거라는 기대와 예측을 받는 중이다.
‘괴물 신인’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해 전략이라는 영역에서 뛰어난 실력을 구축한 선수가 코치를 거쳐 감독으로 다른 게임에 정착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e스포츠라는 장르 전부를 관통하는 커리어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가 보여주었던 전략과 빌드라는 측면에서의 강점은 e스포츠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 전략이라는 두뇌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그런 전략의 대가가 아직 감독으로 뛰고 있음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전략의 e스포츠가 가진 깊이를 드러내는 효과도 보여준다. 괴물 신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2020년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