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희생적 리더십 슬기롭게 그려내다

입력 2020. 03. 26   16:11
업데이트 2020. 03. 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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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슬기로운 의사생활:엘리트가 기득권을 내려놓는 세상


좀비가 없어도

아버지 죽음과
살인누명 없어도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제공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제공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 콤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들은 장르와 권위를 파괴하는 돌격대가 되어 방송계의 오랜 관행을 무너뜨렸다. 예능PD와 작가가 드라마PD와 작가로 도전해서 정상을 차지한 일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그들이 만든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시리즈는 케이블 채널에서 드라마가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기록을 세우면서 한국 드라마의 지형 자체를 바꿔놓았다.
스토리 없이 추억팔이와 남편 찾기로 일관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 콤비들의 가장 큰 힘은 누구보다 시청자들의 욕구와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낸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1990년대를 완벽히 재현해 내면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경쟁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드라마를 통한 이 집단적 성찰은 많은 시청자에게 위로와 치유를 선사했고, 공동체의 회복과 민주주의의 완성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낙관까지 선사했다.

또한, 이 시리즈는 영웅주의 산업화 신화를 깨뜨리고 평범한 서민들의 끈질긴 생활력의 가치를 되살렸다. 삶 속에서 체화된 깨달음과 작은 실천들이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이 놀라운 성찰은 오랜 시간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던 수많은 콤플렉스를 벗어날 실마리를 마련해 주었다. 경쟁논리 아래 강요되던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 혐오와 차별의 합리화, 물질 만능주의의 허상을 유머와 위트로 뒤집어버린 이 시리즈는 어떤 면에서는 집단 각성의 거대한 도가니와도 같았다.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처지에서 2016년에 기적처럼 불거진 거대한 촛불시위는 반드시 ‘응답하라’ 시리즈와 함께 연구해야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그들이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돌아왔을 때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시대의 요구사항을 파악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그들이, 왜 2017년에 하필 감방을 사유의 공간으로 삼았을까?

그것은 ‘슬기로운’ 시리즈의 두 번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공개되면서 확실해졌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다루는 공간은 이 사회의 루저(loser) 중의 루저인 교도소 수감자들을 갱생(혹은 치유)시키는 공간이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다루는 공간은 이 사회의 엘리트 중 엘리트라 자부하는 의사들이 환자를 치유하는 공간이다. 이 두 공간은 우리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공간으로, 세칭 ‘비정상’이 되어 공동체에서 격리된 구성원들을 ‘정상’으로 되돌려서 사회로 돌려보내는 공간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제공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제공

환자와 범죄자는 과학적 사유가 부재했던 시기에는 똑같이 취급되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이 시리즈의 성찰 목표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공동체는 어떻게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일까?”라는 질문과 그로부터 출발한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주로 루저들의 사연에 집중하면서 그들과 섞이기를 싫어했던 한 스포츠 스타의 재생기를 담았다. 이 루저들을 대하는 교도관들의 상반된 태도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상징한다. 자신의 승리만을 위해 온몸과 정신을 단련해 왔던 스타는 ‘감빵’에서 자신을 옥죄어 왔던 실체를 깨닫게 되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공존의 삶을 배우게 된다. ‘슬기롭다’는 것은 결국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엘리트들을 탐구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경쟁구도에서 이미 승리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최소한 주인공들은 승리로 인해 얻게 된 권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10년째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채송화나 의료법인의 후계자이면서 숨어서 저소득층 어린 환자에게 병원비를 대는 안정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래서 혹자는 비현실적이라 외면할 수 있고, 혹자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희석한다며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단정 짓고 몰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비난하는 당신은, 이런 의사를 정말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제공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제공

장기화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는 선명하게 갈라지는 이 사회의 엘리트들을 보게 된다. 어떤 의사는 하루 수백만 원의 매출과 가족의 만류를 뒤로하고 대구로 달려가 컵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감염을 무릅쓰고 사람의 생명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의사는 봉사 자체를 이벤트로 만들면서 다른 이익을 취하려 한다. 어떤 의사들이 과연 ‘슬기롭게’ 의사 생활을 하는 것일까?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억지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승자의 어쩔 수 없는 각성을 그렸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좋은 친구들 덕분에 그 혹독한 이기적 생존 과정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승자를 그려낸다. 그들의 자발적인 기득권 내려놓기는 최근 드라마에서 탐구하고 있는 ‘희생적 리더십’을 좀비들이 없어도, 아버지의 죽음과 살인 누명이 없어도, 현실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 이런 특별한 현실감각이 바로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획득하고 있는 재능이다. 이 재능이 또 어떤 영향력을 일구어낼지 이제 2회를 보았을 뿐인데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확실한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사회를 ‘정상’으로 되돌릴 때 꼭 필요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란 믿음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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