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이들 클라쓰가 다르다

입력 2020. 02. 20   16:58
업데이트 2020. 02. 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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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이태원 클라쓰:원칙주의 리더에 대한 갈망


JTBC 이태원 클라쓰.
JTBC 이태원 클라쓰.

2020년은 드라마 업계에서 꽤 기억할 만한 해가 될 것 같다. 2019년 가을부터 시작된, 흔히 미니시리즈라 불리는 밤 10시대 드라마들의 약진이, 새해 초부터 더욱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 시대를 넘어 1인 미디어의 천국이 된 세상은 TV로 드라마를 보는 것이 더는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TV의 본방송 사수만이 집계되는 시청률은 낡은 기준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KBS2 ‘동백꽃 필 무렵’처럼 가히 레전드급에 속하는 드라마 정도 되어야 시청률 20%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올해는 2월도 다 지나가지 않았는데 SBS ‘스토브리그’와 ‘낭만닥터 김사부2’, tvN ‘사랑의 불시착’ 등 세 개의 미니시리즈가 20% 벽을 넘어섰다. ‘스토브리그’와 ‘사랑의 불시착’은 토요일이 서로 겹치게 편성돼 있었는데도 나란히 20%의 벽을 깼고, ‘낭만닥터 김사부2’는 시즌 1의 인기에 편승해서 제작되는 시즌2는 전편보다 흥행이 힘들다는 징크스마저 깨버렸다. 최종 시청률이 시즌1을 넘어 30%의 벽까지 깨는 것은 아닌지 관심을 끌고 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심상치 않은 드라마가 5회 차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꿈틀대고 있는데, 그것이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JTBC ‘이태원 클라쓰’다. 이미 6회 차에 수도권의 시청률은 20%를 넘어섰고, 전국 시청률이 20%를 넘는 일도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으로 보일 만큼 강력한 팬덤이 형성돼 있다. 이렇게 되면 새해를 맞은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는 시점에 20% 넘는 미니시리즈가 네 개나 탄생하는 것인데, 미니시리즈 전성기가 다시 찾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올해는 어떤 특성이 있길래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물론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유통망이 전 세계를 한국 드라마의 소비시장으로 만들어준 덕도 있다. 당연히 좀 더 풍족한 제작비가 생겼고, 좀 더 여유 있는 프리프로덕션 기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에 드라마의 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 살인적인 제작 관행도 개선되면서 재능 있는 인재들이 대거 드라마 기획이나 제작 인력으로 갈 수 있게 됐으니, 전반적으로 질적 고양이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SBS 스토브리그.
SBS 스토브리그.

하지만 이런 분석만으로 2020년 벽두의 현상을 해석하기는 힘들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아 평단과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던 tvN ‘블랙독’은 고작 5%대에 머물러야 했다. KBS2 ‘99억의 여자’처럼 선정적인 소재를 기발한 스토리에 얹어 과감히 다룬 드라마도 시청률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 어려웠다. 드라마는 다른 콘텐츠들보다 더 ‘공감’과 ‘소통’에 민감하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가 있다면, 오히려 그 시대가 요구하는 공감을 어떻게 끌어냈는지가 관건이 되기 때문에, 단지 제작 환경의 변화가 연속된 성공의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저마다 완전히 다른 소재와 개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드라마들이지만, 핵심적 메시지는 비슷한 상황이라서 함께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성공한 네 개의 드라마 모두 ‘바람직한 리더’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2’는 시대와 타협하지 못하는 천재 의사 김사부가, ‘스토브리그’는 냉혹한 구조조정 전문가 백승수 단장이, ‘사랑의 불시착’은 부조리한 혼돈의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서 외로울 수밖에 없던 윤세리와 리정혁이, ‘이태원 클라쓰’는 도덕과 정의의 가치를 소신으로 삼고 스스로 지켜내면서 재벌의 횡포와 맞서는 박새로이가 주인공인 것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완전히 다른 저마다의 개성들을 갖고 있지만, 기호학으로 분류해 보면 비주류·개성·인본·개혁·능력·합리·민주주의 등의 키워드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그들과 갈등하는 대상은 주류·전체·자본·보수·무능·부조리·독재 등의 키워드를 가진 자들이다.

특히 ‘이태원 클라쓰’는 20세기 말에 태어난 박새로이와 오수아, 21세기에 태어난 조이서와 삼각관계를 설정하고, 이들이 싸워야 할 대상으로 그들의 아버지 세대를 상정해 두고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영웅 스토리의 구조인데, 박새로이가 품고 있는 가치들이 특이하다. 도덕·인본·공동체·형제애·다양성 등 어찌 보면 신화시대의 낡은 개념들이다. 오수아가 ‘개인’이라는 가치 하나로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생존하는 90년대생의 전형이고, 조이서 역시 ‘능력’이라는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덕목을 통해서 인정받는 21세기형 인물인데, 그들이 모두 박새로이라는 현실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이상을 품고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에게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SBS 낭만닥터 김사부2.
SBS 낭만닥터 김사부2.

포스트모던의 강을 건너며 어쩌면 인간들은 이상과 좌표를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모든 가치가 무너진 상태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 사는 것은 어쩌면 공허 그 자체이며, 살아야 할 재미마저 사라진 상태다. 조이서가 그저 순간순간을 잊게 하는 중독적 기제들로 견디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박새로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어쩌면 구원이다. 그는 가치를 바로 세우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해 낸다. 때로는 흔들리지만, 그는 늘 뚝심 있게 가치를 선택한다. 수많은 예외 때문에 무질서가 일상이 된 판을 갈아엎으려면 박새로이가 안성맞춤인 영웅인 것이다. 어쩌면 조이서는 그것이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 능력이 있지만, 그것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몰랐기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밝혀줄 리더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그런 리더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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