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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차이 배려·존중하는 軍 다양한 시도 고무적”

입력 2020. 02. 13   17:08
업데이트 2020. 02. 1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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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변호사 특별기고 - 다양성 존중, 공존과 번영을 위한 준비


인권위, 채식주의를 ‘헌법상 보장받을 기본권’ 인정
병역법 개정으로 2028년 다문화장병 8000명 추산
다문화시대 모슬렘 등 ‘급식소수’ 배려 분위기 확산
국방부, 대체식 제공·선택급식제·메뉴 개발 등 노력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베지테리언이냐”는 비행기 승무원들의 질문이 낯설게만 느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그 정도에 따라 보통 4단계로 나뉩니다. 첫째는 유제품과 동물의 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비건, 둘째는 유제품은 먹는 락토(Lacto) 베지테리언, 셋째는 유제품과 동물의 알을 먹지만 고기와 생선류를 먹지 않는 락토 오보(Lacto ovo) 베지테리언, 넷째는 유제품과 생선류 및 동물의 알은 먹지만 붉은 살코기와 조류를 먹지 않는 페스코(Pesco) 베지테리언 등입니다. 이런 다양한 범주의 채식주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별다른 차별이나 불편함 없이 자신의 기호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기반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단체급식을 먹어야 하는 환경에 있다면 어떨까요?


교도소 내 채식주의자의 탄생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완전채식을 하는 청년 A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는 고기류와 생선, 젓갈을 포함한 해물 종류는 물론이거니와 유제품이 포함된 식품도 가급적이면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조미료인 ‘쇠고기 다시다’를 사용하는 찌개·국 종류와 젓갈을 사용하는 각종 겉절이·김치· 깍두기, 햄 또는 육류 성분이 포함된 반찬을 일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청년 A는 자신의 이러한 확고한 평화주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였고 결국 병역법위반죄로 1년6월 징역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청년 A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교도소에 채식 위주의 음식 제공을 요구하였으나 법무부는 “완전 채식은 종교적 신념이 아닌 개인의 취향에 불과하고, 단체급식을 하는 교도소 여건상 까다로운 개별 취향에 맞는 음식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청년 A의 요구를 거부하였습니다. 신념에 따른 채식주의는 과연 다양성에 따른 개인의 취향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우리 헌법상 보장되는 양심의 자유에 속할까요?


채식주의는 그저 까다로운 개별취향?

양심의 자유에서의 ‘양심’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양심은 그 대상이나 내용 또는 동기, 특히 양심상의 결정이 이성적인지 합리적인지 또 타당한 것인지 등의 외부적인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습니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완전한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것 또한 양심에 속하고 이는 일반적 수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에 따른 개인의 취향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받을 기본권의 보호범위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법무부 장관에게 채식주의에 관한 개인의 신념이 확고한 수용자에 한하여 합리적 식단의 배려 등 적절한 처우를 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채식주의 장병의 탄생

여러분은 혹시 동물권(動物權·animal rights)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동물권은 ‘사람이 아닌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창시절 이러한 동물권을 접하게 된 청년 B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B는 성장하여 이제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이 되었습니다. A와 달리 B는 병역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군에서 단체급식을 할 생각을 하니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육군훈련소 한 달 식단을 분석한 결과, 채식주의자인 장병은 총 83끼 중 41끼는 쌀밥만 먹을 수 있었고, 26끼는 밥과 반찬 한 가지, 5끼는 아예 먹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래서는 채식주의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군대 내 채식주의자들은 군 당국에 채식 식단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요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 채식주의자인 장병이 상사와 면담을 하였으나 해당 상사는 “네 몸이 네 것인 줄 아느냐, 네 몸은 국가의 것이다. 『채식의 배신』 같은 책은 읽어보고 채식을 하냐”며 조롱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기존의 군내 채식주의자들은 살기 위해 육류를 먹어야 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무력감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에 청년 B는 군 입대를 앞두고 양심의 자유 및 건강권 침해를 이유로 군대 급식에서도 채식주의자를 배려해 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하게 됩니다.


다문화 군대로의 전환


유엔은 21세기를 ‘국제이주의 시대’로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2007년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이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선언하게 됩니다. 2010년 차별 철폐의 의미에서 병역법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을 제2국민역으로 편성하는 제도가 폐지되었고 우리 군도 다문화 군대로 전환되게 되었습니다. 다문화가정 출신 징병검사 대상자는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2028년 우리 군의 다문화장병은 8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한 다문화가정의 어머니는 ‘모슬렘인 아이들이 군대에 갔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의 존중은 더 이상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조속히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습니다. 문화는 더 이상 인종과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채식주의도 큰 테두리에서는 다문화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존과 번영을 위한 우리 군의 준비

현재 국방부는 모슬렘, 채식주의자 등 급식소수 장병의 현황을 파악하여 대체식을 제공하고, 메뉴를 다양화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①할랄푸드를 구매하고, ②뷔페와 같은 선택 급식제도를 시행하며, ③돼지고기 대신 닭고기 또는 양고기 가공식품 등으로 대체급식을 하고, ④모슬렘 장병이 선호하는 할랄 제품(할랄방식으로 제조한 치킨너겟 등)을 구매하여 제공하는 것 등입니다. 또한 주식·부식·후식을 구분하여 채식주의 장병들이 취식할 수 있는 품목을 발굴, 급식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군은 위와 같이 장병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군 급식으로 채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군은 채식주의자를 위하여 식사비를 개별지급하고, 양털을 사용하지 않은 베레모를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급식소수자를 배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다문화 군대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의미심장한 첫걸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일선 부대 지휘관 역시 이러한 필요성을 십분 이해하고 단위 부대 차원에서 각각의 장병들이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여 다문화 군대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경주할 때입니다.

이지훈 변호사
이지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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