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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에서 인생작을 만나다

입력 2020. 02. 04   17:18
업데이트 2020. 02. 0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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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언제까지 문학의 위기라고 할 것인가?


네 명 배우가 웹소설 주인공 재현
각 광고마다 200만 조회수 돌파
2019서울영상광고제 ‘그랑프리’
부정적 인식 변화에 상당한 영향

네이버시리즈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편(2019)
네이버시리즈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편(2019)

  
전통적인 소설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문학의 위기라고들 하지만 <치즈 인 더 트랩> <타인은 지옥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 <낙원의 이론> 같은 웹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앞의 세 편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웹소설은 이제 소설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며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웹소설 유통업체의 광고 캠페인

동네 서점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는데도 네이버시리즈·카카오페이지·리디북스 같은 웹소설 유통업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8년 9월, 네이버에서 웹소설과 웹툰을 공급하는 네이버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대략 6만여 개의 웹 콘텐츠가 유통됐다. 네이버시리즈는 플랫폼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시리즈로 달린다’와 ‘잠깐이라도 행복하자’에 이어 ‘인생작을 만나다’ 같은 광고 캠페인을 전개했다. ‘인생작을 만나다’ 캠페인(2019)에서는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해 네이버시리즈의 웹소설을 인생작이라고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다. 영화배우 김윤석, 수애, 이제훈, 변요한이 광고에 출연해 저마다 웹소설의 주인공을 재현했다.

첫째 광고인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편에서는 김윤석이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의 주인공인 외과 전문의 백강혁을 연기했다. 원작의 줄거리는 충분히 살 수 있는데도 환자들이 죽어 나가고, 필요한 의사를 만나지 못해 환자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광고에서 김윤석은 원작의 명대사를 이처럼 내뱉었다. “내가 이 병원에 온 이상 더는 멍청한 짓을 용납할 수 없어.” 김윤석의 발언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려고 소품이나 배경을 간명하게 처리해 광고 메시지를 더 부각했다.

둘째 광고인 ‘재혼황후’ 편에서는 수애가 출연해 변심한 황제를 떠나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황후 나비에 역을 맡았다. <재혼황후>는 남편과 정부의 불륜을 알아챈 황후의 심리상태와 사후 대처방식을 참신하게 묘사했다. 광고 카피는 다음과 같다. “연적… 연적이라… 폐하의 그녀는 황후인 제게 연적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제게 연인이 아닌데 어떻게 그녀가 제게 연적이겠습니까? 폐하에겐 소중한 연인이지만, 제겐 그냥 남과 마찬가지지요.” 연재되는 동안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1·2위를 유지했던 웹소설의 긴장감이 광고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셋째 광고인 ‘혼전계약서’ 편에서는 이제훈이 차가우면서도 낭만적인 주인공 한무결 역을 연기했다. 웹소설 <혼전계약서>에서는 비혼(非婚)주의자 우승희가 정혼 계약에 발목 잡히자 결혼을 계속 미루기 위해 금왕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한무결과 혼전 계약을 맺으며 벌이는 머리싸움이 흥미롭다. 광고에서 이제훈은 이렇게 말했다. “이 결혼에 사랑 같은 것은 없어도 됩니다. 딥한 애정,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운 거예요. 혼전계약서 쓰죠. 까짓것.” 고급감이 넘치는 광고의 영상미는 젊은이들의 계산적인 사랑의 풍속도를 아련하게 떠올리게 한다.

넷째 광고인 ‘장씨세가 호위무사’ 편에서는 변요한이 장씨세가를 위한 일이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호위무사 광휘로 완벽히 변신했다. 웹소설 <장씨세가 호위무사(張氏世家 護衛武士)>는 세상과 등진 채 은둔하며 살아가던 주인공 광휘가 몰락해 가는 장씨세가 상인 집안의 호위무사로 발탁돼 벌어지는 좌충우돌 현장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광고에서 변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난 영웅이 아니오. 소저의 호위무사일 뿐. 그러니 내 죽음은 소저가 신경 쓸 일이 아니오.” 15초 광고만 봐도 원작 소설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대강 그려질 정도다.



흑백 톤·배우 연기력…몰입감 자극

각 광고에서는 4명의 배우가 소설의 지문을 말하면서도 마지막에는 “네이버시리즈에서 인생작을 만나다. 지금 네이버시리즈에서 ○○○○를 만나보세요”라는 카피로 마무리했다. 컬러 광고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각 광고에서는 흑백 톤을 써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웹소설의 주인공과 성격이 유사한 배우를 광고 모델로 활용해 광고에 대한 몰입감을 자극한 결과, 광고마다 200만 조회 수를 넘길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결국, 이 캠페인은 2019 서울영상광고제에서 영예의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재미로 무장한 웹소설로 독자 사로잡아

웹소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여전히 많다. 웹소설은 본격 문학이 아니라는 편견도 존재한다. 신춘문예 같은 문단의 전통적인 등용문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웹소설 작가들의 자격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다. 웹소설 작가들은 전통적인 등단 절차 같은 것도 거추장스러워한다. 자신의 본명을 드러내며 필명을 날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수시로 가명을 쓰고 작품마다 작가 이름을 바꿔가며 작품을 발표하는 사례도 많다.

앞으로 ‘인생작을 만나다’ 캠페인은 웹소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문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데, 고대 로마 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시학(詩學)』에서 라틴어로 ‘둘케 에트 우틸레(dulce et utile)’, 즉 재미있는 것과 유익한 것이 문학의 요체라고 했다. 두 가지 중에서 최소한 하나는 있어야 문학이 성립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재미없고 유익하지도 않은 소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재미로 무장한 웹소설이 독자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나 작가들은 문학의 위기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오판을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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