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미디어 프리즘

Media, 인간문명 형성하고 현대사회를 바꾸다

입력 2020. 01. 21   16:50
업데이트 2020. 01. 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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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Medias 혹은 미디어적 인간


국가와 종교 같은 대규모 집단 형성…호모 사피엔스에게 ‘미디어’는 필수요소였다  

유발 하라리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다룬다. 『사피엔스』의 첫 번째 파트는 ‘인지혁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지혁명이란 다른 종들과 달리 호모 사피엔스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을 상상력이라는 인지능력을 발휘하여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 국가,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추상적인 존재들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상상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화폐, 과수원, 논밭, 공원 같은 것들은 자연적 존재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기능적으로 특화한 것들이다. 짜장면 한 그릇과 종이 한 장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은 그 종이가 돈으로서 추상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무가 심겨 있는 일정한 구역에서 산책하거나 데이트를 즐기는 것 역시 공원이라는 상상적 의미 부여를 필요로 한다. 회사, 학교, 군대 같은 집단이 일정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역시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상상적 개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침팬지나 유인원들은 개체끼리 먹을 것을 두고 다투는 경우는 있어도, 수천 마리 혹은 수만 마리가 무리를 지어 식량 확보를 위해 다른 무리와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라리에 따르면,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력을 매개로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면서 상호 협력적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호모 사피엔스에게 인지혁명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 상상력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주어진 생물학적 능력의 일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상상력이 순전히 타고난 능력이라면 인지혁명이라는 말이 필요 없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다른 유인원들도 그런 능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생물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호모 사피엔스만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라는 커뮤니케이션 진화 과정에서 최첨단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침팬지나 유인원들은 무리를 이뤄 살면서 개체끼리 먹을 것을 두고 다투는 경우는 있어도 식량 확보를 위해 무리를 지어 다른 무리와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인지혁명 덕분에 인간은 상상력을 매개로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면서 상호 협력적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림은 네덜란드계 보어인과 영국이 싸운 제2차 보어전쟁의 블러드 리버 전투를 묘사한 작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침팬지나 유인원들은 무리를 이뤄 살면서 개체끼리 먹을 것을 두고 다투는 경우는 있어도 식량 확보를 위해 무리를 지어 다른 무리와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인지혁명 덕분에 인간은 상상력을 매개로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면서 상호 협력적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림은 네덜란드계 보어인과 영국이 싸운 제2차 보어전쟁의 블러드 리버 전투를 묘사한 작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커뮤니케이션 진화에서 가장 원초적인 단계의 커뮤니케이션은 신체접촉이다. 호감을 표시하기 위해 상대방 신체를 쓰다듬거나 껴안거나 손을 잡는 것, 또는 반대로 불쾌감이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때리거나 할퀴는 것 등이 신체접촉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속한다. 신체접촉은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주로 감정의 영역에 속하며, 그 방법도 매우 제한적인 것이 특징이다. 신체접촉을 통해 감정적 표현 이외에 어떤 것이든 정보를 전달하려고 시도해 보라. 불가능에 가까움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다음 단계는 몸짓 혹은 제스처다. 여기서 말하는 몸짓은 야구 경기장에서 포수가 투수에게 보내는 사인처럼 언어적 메시지를 미리 약속된 몸짓으로 번역한 것이 아니다. 그런 약속된 코드 없이 신체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의 대표적인 것은 손짓이다. 훈련소에 입소하면서 가족을 향해 손을 바깥쪽으로 내저으면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전술훈련 중에 손가락으로 어떤 지점을 가리키면 그쪽에 대항군이 있다거나 그쪽 방향으로 이동하라는 뜻이다. 야구에서 3루에 있는 코치가 팔을 돌리면서 2루에 있던 주자에게 3루를 밟고 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몸짓의 한 사례다. 이렇게 몸짓은 상대방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거나, 상대방의 시선을 내 시선과 일치시키거나, 움직임을 모사하는 등 신체접촉에 비해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몸짓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는 별도의 학습과정이 필요 없다. 한두 번 경험하면 그 다음부터 직관적으로 사용 가능한 것이 몸짓이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


신체접촉이나 몸짓까지는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유인원이 공유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이다. 다른 유인원은 발전시키지 못하고 호모 사피엔스만 발전시킨 커뮤니케이션은 ‘언어’다. 언어는 원숭이가 뱀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를 듣고 다른 원숭이들이 도망가는 것과는 다르다. 언어는 메시지 전달을 위한 분절된 음성을 가리키며,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자의성이다. 자의성이라 함은 표현하는 언어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 사이에 직접적인 지시관계나 유사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가령 ‘핸드폰’이라는 음성과 실제 핸드폰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오직 약속에 의해서만 관계가 발생한다. 언어는 자의적이기 때문에 신체 반경 바깥에 있는 것이나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몸짓은 핸드폰이 눈에 보일 때만 사용 가능하지만, 언어는 핸드폰이 없더라도 그것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언어는 픽션이나 거짓말을 포함하여 경험 세계 바깥에 있는 존재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했고, 이것이 상상력을 발달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언어만으로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음성언어는 말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말을 듣는 상대방이 앞에 있어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지금 여기에’ 없는 사람에게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음성언어를 사용하면 최대 몇 명에게까지 한 번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예수가 다섯 조각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든 5000명을 먹였다는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사례를 보면, 5000명 정도까지는 가능할 듯도 하다.

그러나 5000명이 아니라 500만 명 아니 5억 명에게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음성언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메시지가 전파되어야 한다. 거리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며 존재조차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후대에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과 언어로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종교나 국가 같은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미디어가 필수적인 조건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 칼럼은 미디어가 어떻게 인간 문명을 형성하고 특히 현대 사회를 바꾸고 있는지 다룰 것이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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