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한주를열며

[하영삼 한 주를 열며] 예방이 최상의 치료

입력 2020. 01. 10   15:30
업데이트 2020. 01. 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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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영 삼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한국한자연구소장
하 영 삼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한국한자연구소장

편작(扁鵲)은 중국 최고의 명의로 꼽힌다. 그러나 사실 더 뛰어난 의사가 자기 집에 있었다. 누구였을까?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한 번은 편작에게 물었다. “너희 삼형제 중 누구의 의술이 가장 뛰어나냐?” 편작이 대답했다. “큰형이 최고고, 작은형이 다음이고, 제가 제일 못합니다.” 문후가 의아해 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네가 최고라고 하지 않느냐?”

편작이 다시 대답했다. “저희 큰형은 얼굴색을 살펴 병이 생기기도 전에 치료하기에 그 명성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작은형은 병이 막 생겼을 때 치료하기에 그 명성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침을 찔러 혈맥을 소통시키고 독약을 쓰고 수술을 하여 환자를 구합니다. 그래서 제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갈관자』라는 중국의 병법서에 나오는 말이다. 예방(豫防)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사람들은 전장에 나가 적을 물리치면 명장이라 하지만, 전쟁이 나지 않게 하는 장수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의사가 최고의 명의요, 전쟁 치를 일이 없도록 하는 장수가 최고의 명장이다. 그래서 『손자병법』에서도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승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현대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도 『닭의 무지』에서 비슷한 우화를 들려준다. 자신이 씨앗이라 닭이 자기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환상에 시달리는 환자가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씨앗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당신이 닭을 잡아먹을 수는 있어도 닭이 당신을 먹을 수는 없어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시겠지요?”

숱한 상담과 반복된 훈련 끝에 드디어 자신이 씨앗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잘 아시겠지요? 당신은 씨앗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래도 닭이 두렵나요?” “아니, 이제 두렵지 않아요. 사람인데, 어떻게 닭을 두려워하겠어요?”

최종 테스트를 거쳐 드디어 닭에게 먹힐 것이라 두려워하는 병증이 없어졌다고 판정돼 퇴원하게 됐다.“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닭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병원 문을 나서던 환자가 문 뒤에 있던 닭을 보고서 혼비백산해 다시 뛰어 들어왔다. 의사가 말했다. “아니, 왜 그래요? 닭이 이제 두렵지 않다고 했잖아요?” 환자가 대답했다. “그건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제가 씨앗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 닭도 알고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풍요로워진 물질만큼이나 정비례해 날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인공지능이 일상화돼 가는 오늘이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각종 상처의 ‘치유(治癒)’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도 완벽한 치유란 없다. 한 번 생긴 상처는 영원히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최고다. 병이 생기지 않으면 치료할 일도 없다. 국방도, 정치도, 한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미리미리 준비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방책이자 최고의 지혜다.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 우리 모두 예방이라는 지혜를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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