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초, 성 니콜라우스 주교의 전설이 기원
오랜 세월 거치며 명칭·루돌프·빨간색 복장·뚱뚱한 체격 등 완성
전 세계 대중의 간절한 기원·믿음 모여 이뤄진 ‘인류 합작 콘텐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클라우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넷플릭스에서는 ‘클라우스’라는 2D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을 탐구한 색다른 이 이야기는, 두 귀족 집안의 분쟁 때문에 온 마을 사람이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스미어랜스버그라는 한 작은 섬이 배경이다.
우편사관학교의 교장인 아버지 때문에 흥청망청 지내던 제스퍼는 아버지의 분노를 사고, 스미어랜스버그로 쫓겨나게 된다. 그 작은 섬마을에서 1년 동안 6000통의 편지를 받아서 직접 소인을 찍고 배달하라는 임무를 달성하지 않으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아버지의 엄명과 함께. 하지만 제스퍼는 사실상 전쟁 상태라 모든 소통이 가로막힌 그곳에는 편지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호화로운 원래 삶으로 돌아가고 싶던 제스퍼는 바람도 못 막는 엄청난 손재주를 가진 산사람 클라우스를 알게 되고,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후 산속에 틀어박혀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가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많은 장난감을 만들어 놓았지만, 주인을 잃은 장난감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을 뿐. 제스퍼는 순진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면 클라우스 아저씨가 장난감을 준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착한 아이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까지.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제대로 놀지도, 배우지도 못하던 아이들은 놀이처럼 편지를 쓰고 착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웃집끼리 서로 소통하게 되고 공동체가 회복되면서 분노만 가득하던 마을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가고, 클라우스의 이야기는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결국 산타클로스의 신화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구조는 실제 산타클로스의 탄생과 무척 닮았다. 산타클로스의 모델은 4세기 초 고대 리키아의 항구도시 파타라(지금 터키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여행하고, 리키아로 돌아온 후에 미라의 주교가 되었다는 성 니콜라우스였다고 한다. 그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감옥에 갇히고 고문도 당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하자 풀려났고, 그 후 니케아 종교회의에도 참석한 명망 높은 교부였다.
그는 6세기경부터 성자로 칭송되면서 다양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아이들을 사랑해서 그들에게 늘 선물을 주었다는 이야기들이나 전쟁 때문에 나라에서 결혼을 금지하고 있을 때 연인들을 위해 몰래 주례를 서준 이야기들, 리키아 해안에서 선원들을 구해줬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 내려왔다. 특히 굴뚝을 타고 벽난로로 내려온다는 전설은 아나톨리아의 가난한 세 자매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너무 가난해서 결혼하지 못하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성 니콜라우스는 아무도 모르게 금덩이를 굴뚝으로 떨어트렸다. 금덩이는 신기하게도 벽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고, 금을 받은 세 자매는 그 돈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지면서 벽난로 옆에 양말이나 신발을 걸어두는 풍습도 생겼다고 한다.
12세기 프랑스의 수녀들은 성 니콜라오 축일 전날인 12월 5일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부터 북유럽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12월 6일 축일 가족 중 한 명이 성 니콜라우스 분장을 한 다음 착한 어린이를 칭찬하고 나쁜 어린이를 혼내주는 전통을 지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17세기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로부터 미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인들은 세인트 니콜라스를 ‘신트 니콜라스(Sint Nikolass)’라고 썼고, 이것이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는 ‘신터클라스’가 되었고,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뉴암스테르담의 통치권을 영국인들에게 넘겨줄 때 ‘산타클로스(Santa Claus)’라는 영어식 철자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사슴이 끄는 썰매는 등장하지 않았는데, 1822년에 뉴욕 신학자이자 치과의사였다는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 박사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에게 읽어줄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여덟 마리 순록이 끄는 하늘 나는 마차와 아이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등장한다.
이때만 해도 검은 옷의 신부복에 마르고 작은 체형이던 산타는 1863년 미국의 시사만화가였던 토머스 나스트(Thomas Nast)에 의해 풍성한 수염과 뚱뚱한 체형으로 바뀌게 됐다. 그 후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에 의해 주먹코와 뚱뚱한 체형, 이마가 훤하게 보이는 미국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의 산타클로스가 완성되었다. 또 미국 크리스마스카드 인쇄업자였던 루이스 프랭(Louis Prang)은 이전까지의 검은 옷 대신 붉은 옷의 산타를 찍어냈다. 1931년부터 코카콜라에서 대규모 겨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산타의 옷에 하얀 테두리를 달고, 붉은 옷에 붉은 볼까지 갖추는 색깔 마케팅이 시작됐다. 옷 색감도 코카콜라 로고 색깔을 사용했고, 옷의 흰 테두리와 산타의 흰 수염은 콜라의 거품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코카콜라의 공격적 마케팅에 1939년에 발표된 ‘루돌프 사슴코’ 동화가 얹히며 산타 신화는 완성되었다. 엄마가 없어 왕따를 당하던 딸을 위해 로버트 메이라는 동화작가가 쓴 이 이야기는 발표 후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1949년에 지니 마르크스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지면서 대표적인 크리스마스캐럴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대중문화 창작자들의 합작품이 산타클로스 신화인 것이다.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동심 파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창작자들이 저마다의 바람을 담은 그 콘텐츠들은 소통과 배려의 공동체를 위한 간절한 기원들이었고, 그 기원들이 모여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의 ‘클라우스’ 제작진이나 1939년의 로버트 메이나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었다. 그 성찰이 담긴 만들어진 이야기는 성찰이 없는 공허한 설교보다 훨씬 더 의미 있다. 그 의미의 공감이 믿음으로 발전하기에 내년에도 많은 사람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릴 것이다.
4세기 초, 성 니콜라우스 주교의 전설이 기원
오랜 세월 거치며 명칭·루돌프·빨간색 복장·뚱뚱한 체격 등 완성
전 세계 대중의 간절한 기원·믿음 모여 이뤄진 ‘인류 합작 콘텐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클라우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넷플릭스에서는 ‘클라우스’라는 2D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을 탐구한 색다른 이 이야기는, 두 귀족 집안의 분쟁 때문에 온 마을 사람이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스미어랜스버그라는 한 작은 섬이 배경이다.
우편사관학교의 교장인 아버지 때문에 흥청망청 지내던 제스퍼는 아버지의 분노를 사고, 스미어랜스버그로 쫓겨나게 된다. 그 작은 섬마을에서 1년 동안 6000통의 편지를 받아서 직접 소인을 찍고 배달하라는 임무를 달성하지 않으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아버지의 엄명과 함께. 하지만 제스퍼는 사실상 전쟁 상태라 모든 소통이 가로막힌 그곳에는 편지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호화로운 원래 삶으로 돌아가고 싶던 제스퍼는 바람도 못 막는 엄청난 손재주를 가진 산사람 클라우스를 알게 되고,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후 산속에 틀어박혀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가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많은 장난감을 만들어 놓았지만, 주인을 잃은 장난감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을 뿐. 제스퍼는 순진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면 클라우스 아저씨가 장난감을 준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착한 아이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까지.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제대로 놀지도, 배우지도 못하던 아이들은 놀이처럼 편지를 쓰고 착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웃집끼리 서로 소통하게 되고 공동체가 회복되면서 분노만 가득하던 마을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가고, 클라우스의 이야기는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결국 산타클로스의 신화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구조는 실제 산타클로스의 탄생과 무척 닮았다. 산타클로스의 모델은 4세기 초 고대 리키아의 항구도시 파타라(지금 터키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여행하고, 리키아로 돌아온 후에 미라의 주교가 되었다는 성 니콜라우스였다고 한다. 그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감옥에 갇히고 고문도 당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하자 풀려났고, 그 후 니케아 종교회의에도 참석한 명망 높은 교부였다.
그는 6세기경부터 성자로 칭송되면서 다양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아이들을 사랑해서 그들에게 늘 선물을 주었다는 이야기들이나 전쟁 때문에 나라에서 결혼을 금지하고 있을 때 연인들을 위해 몰래 주례를 서준 이야기들, 리키아 해안에서 선원들을 구해줬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 내려왔다. 특히 굴뚝을 타고 벽난로로 내려온다는 전설은 아나톨리아의 가난한 세 자매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너무 가난해서 결혼하지 못하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성 니콜라우스는 아무도 모르게 금덩이를 굴뚝으로 떨어트렸다. 금덩이는 신기하게도 벽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고, 금을 받은 세 자매는 그 돈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지면서 벽난로 옆에 양말이나 신발을 걸어두는 풍습도 생겼다고 한다.
12세기 프랑스의 수녀들은 성 니콜라오 축일 전날인 12월 5일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부터 북유럽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12월 6일 축일 가족 중 한 명이 성 니콜라우스 분장을 한 다음 착한 어린이를 칭찬하고 나쁜 어린이를 혼내주는 전통을 지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17세기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로부터 미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인들은 세인트 니콜라스를 ‘신트 니콜라스(Sint Nikolass)’라고 썼고, 이것이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는 ‘신터클라스’가 되었고,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뉴암스테르담의 통치권을 영국인들에게 넘겨줄 때 ‘산타클로스(Santa Claus)’라는 영어식 철자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사슴이 끄는 썰매는 등장하지 않았는데, 1822년에 뉴욕 신학자이자 치과의사였다는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 박사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에게 읽어줄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여덟 마리 순록이 끄는 하늘 나는 마차와 아이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등장한다.
이때만 해도 검은 옷의 신부복에 마르고 작은 체형이던 산타는 1863년 미국의 시사만화가였던 토머스 나스트(Thomas Nast)에 의해 풍성한 수염과 뚱뚱한 체형으로 바뀌게 됐다. 그 후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에 의해 주먹코와 뚱뚱한 체형, 이마가 훤하게 보이는 미국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의 산타클로스가 완성되었다. 또 미국 크리스마스카드 인쇄업자였던 루이스 프랭(Louis Prang)은 이전까지의 검은 옷 대신 붉은 옷의 산타를 찍어냈다. 1931년부터 코카콜라에서 대규모 겨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산타의 옷에 하얀 테두리를 달고, 붉은 옷에 붉은 볼까지 갖추는 색깔 마케팅이 시작됐다. 옷 색감도 코카콜라 로고 색깔을 사용했고, 옷의 흰 테두리와 산타의 흰 수염은 콜라의 거품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코카콜라의 공격적 마케팅에 1939년에 발표된 ‘루돌프 사슴코’ 동화가 얹히며 산타 신화는 완성되었다. 엄마가 없어 왕따를 당하던 딸을 위해 로버트 메이라는 동화작가가 쓴 이 이야기는 발표 후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1949년에 지니 마르크스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지면서 대표적인 크리스마스캐럴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대중문화 창작자들의 합작품이 산타클로스 신화인 것이다.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동심 파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창작자들이 저마다의 바람을 담은 그 콘텐츠들은 소통과 배려의 공동체를 위한 간절한 기원들이었고, 그 기원들이 모여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의 ‘클라우스’ 제작진이나 1939년의 로버트 메이나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었다. 그 성찰이 담긴 만들어진 이야기는 성찰이 없는 공허한 설교보다 훨씬 더 의미 있다. 그 의미의 공감이 믿음으로 발전하기에 내년에도 많은 사람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