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똥은 예술이다

입력 2019. 12. 24   16:04
업데이트 2019. 12. 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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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끝> 아르테 포베라-네오리얼리즘, 뉴 이탈리아 영화, 68혁명, 가난한 예술, 예술과 삶의 이분법, 공간개념, 미국식 미니멀리즘, 설치미술


아르테 포베라, ‘가난한 예술’ 의미
1960년대 말 이탈리아서 나타난 미술운동
배금주의 풍자…예술과 생활 경계 해체
만초니 작품 ‘예술가의 똥’ 금값에 판매 화제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넝마의 비너스, 1967-1974, 대리석·천 2.12x3.4x1.1m, TATE.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넝마의 비너스, 1967-1974, 대리석·천 2.12x3.4x1.1m, TATE.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이탈리아에서 전쟁 이후 나타난 아상블라주, 누보레알리즘, 독일의 플럭서스(Fluxus)와 맥을 같이하는 미술 운동이다. 이탈리아는 1947년 이탈리아 강화조약으로 파시즘 정권이 점령했던 발칸반도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반환했다. 이곳에 거주하던 대다수 이탈리아인이 고국으로 이주하면서 이탈리아는 인구 변동을 겪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도 미국의 마셜 플랜의 영향으로 고도성장을 거듭해 1951년부터 1971년까지 20여 년간 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부작용도 있었다. 이탈리아 경제 기적을 선도한 공업화는 급격한 인구 변동을 유발해 약 900만 명이 공업지역인 ‘산업삼각지대’ 밀라노, 토리노, 제노바로 몰려들었다. 경제근대화로 새로운 철도와 고속도로가 들어섰고 에너지 산업도 증가했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팽창 때문에 도시개발은 계획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성장의 후폭풍은 1963년 바욘트 댐 붕괴 사건과 1976년 밀라노 인근의 세베소에서 일어난 화학플랜트 공해 사건 등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사회 양극화 문제와 ‘프랑스 68혁명’ 영향으로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투쟁과 파업도 발생했다.

그 와중에도 고도성장은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매스 미디어가 발전하고 중산층은 경제적 여유를 소비로 과시했다. 여가에 대한 관심은 영화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940년대 중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이후 전후 복구기를 지나면서 이탈리아 영화는 정치·사회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을 천착하기 시작했다.

이를 주도한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1912~2007),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1922~1975),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1941~2018) 등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감독들은 뉴 이탈리아 영화(New Italian Cinema)의 전성기를 끌어냈다.

이탈리아의 미술가들은 혁명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로 번영의 그늘을 살폈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상업화된 화랑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을 흔들고자 했다. 천박한 배금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도 함께 한 이들은 전통적인 캔버스와 유화, 대리석, 청동 등의 재료를 넘어 흙이나 넝마, 나뭇가지 등 하찮은 다양한 재료를 작업에 사용했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1960년대 말에 탄생한 것이 ‘가난한 예술’이란 의미의 ‘아르테 포베라’다.

이 말은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제르마노 첼란트(1940~ )의 글에서 비롯됐다. 그는 1967년 제노아의 베르테스카 화랑(Galleria La Bertesca)에서 아르테 포베라 에 임 스파지오(Arte Povera e IM Spazio)라는 전시를 기획하고 알리기에로 보에티(1940~1994), 루치아노 파브로(1936~2007), 야니스 쿠넬리스(1936~2017), 줄리오 파올리니(1940~ ), 피노 파스칼리(1935~1968) 등과 함께 작업했다. 



피에로 만초니, 예술가의 똥 No.14, 1961, 혼합재료, 6.5x4.8㎝, MoMA.
피에로 만초니, 예술가의 똥 No.14, 1961, 혼합재료, 6.5x4.8㎝, MoMA.



이 전시에서 작가들은 모두 ‘가난한’ 재료를 써서 아르테 포베라의 개념적 특성을 구현했으며 일상적인 일이나 행위를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냈다. 이들은 일상이 예술의 영역에 침입 또는 반입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이전에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시각으로 보도록 했다. 이 전시 후 조반니 안젤모(1934~ ), 마리오 메르츠(1925~2003), 지아니 피아센티노(1945~ ),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1933~ ), 질베르토 조리오(1944~ ) 등이 합세해서 ‘예술과 삶의 이분법’을 파괴하고자 하는 공통의 욕구를 개념적으로 연결했다.

이들은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해체하는 한편 사회의 많은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혁명적인 주장과 세상을 자극하는 주장을 펴며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첼란트의 선구자적 글과 토리노, 밀라노, 제노아와 로마에서 활동하던 많은 이탈리아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이런 경향은 집단적인 정체성으로 나타났고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경제가 다시 불안정해지자 급속도로 파급됐다.

아르테 포베라는 이탈리아의 추상미술이 쇠퇴하고 1920~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같은 전위적인 태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등장했다. 특히 알베르토 부리(1915~1995), 피에로 만초니(1933~1963), 루시오 폰타나(1899~1968) 등 세 명의 선지자가 있어서 가능했다. 부리는 삼베 포대와 타르, 모래를 써서 가난한 재료로 회화를 전위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폰타나는 캔버스를 칼로 짼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e)’을 제시했으며 만초니는 자신의 대변을 통조림통에 넣어 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판매하는 작품을 발표해 혼란을 야기했다. 이들은 단순한 개념과 유머, 전복을 통해 전통적인 미술의 경계를 교란하면서 미술을 개념화했다.

이들의 작업은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한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토양, 음식, 물과 저렴한 건축자재 같은 재료를 사용했다. 또 전후 이탈리아의 문화적 맥락에 적합하지 않은 미국의 미니멀리즘(American Minimalism)과 민감하게 대조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파괴적이고 전위적인 전술과 조각에 대한 비전통적인 접근 방식 등 오늘날의 설치미술(Installation art)과 같은 방식을 선호했다. 이들은 예술과 삶을 연결하기 위해 각각의 작품에 대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반응을 중시해 순전히 작품과 관객 간의 상호 작용을 중시했다.

이들의 작품은 자연과 인공을 연결하거나 그 차이에 집중했다. 물과 흙이 기하학적 틀이나 구조에 의해 모양이 결정되는 작업을 통해 물성의 대조 또는 불협화한 물질을 결합해 폐기물 또는 다른 방식으로 폐기될 것들을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웅대한 대상’이라는 개념을 어지럽혀 작품과 작품이 놓인 전시장의 가치 체계에 내재된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다. 


루치아노 파브로, 하늘의 두 얼굴, 1986, 대리석·철사·스테인드 스틸, 98x270x20㎝, 크뢸러 뮐러미술관.
루치아노 파브로, 하늘의 두 얼굴, 1986, 대리석·철사·스테인드 스틸, 98x270x20㎝, 크뢸러 뮐러미술관.


1960년대 이탈리아의 중요한 운동인 아르테 포베라는 1969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윔 뷔렌(1928~2000)이 큐레이팅한 ‘둥근 구멍에 네모난 말뚝, 구조와 암호화(Square Pegs in Round Holes: Structures and Cryptostructures)’와 하랄드 제만(1933~2005)이 베른 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두 전시는 현대미술사와 미술관 전시의 혁명적인 일로 기록됐다. 이들은 한정적인 물질이 귀속하는 관점을 지양하고 작품을 결정짓는 여러 가지 조건 즉 작품이 놓이는 방법,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 등을 중시해 ‘사물’이란 수준에서 바라보며 반미학적인 재료의 물질적인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기존의 문화체계와 예술 개념을 해체하여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특히 공간과 인식의 문제, 과정 및 에너지와 관계된 다양한 재료의 도입, 언어사용과 정체성의 문제는 아르테 포베라를 이해하는 주요한 화두다.

<정준모 큐레이/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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