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미디어

인터넷, 통제할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

입력 2019. 12. 17   16:11
업데이트 2019. 12. 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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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소셜 미디어, 평화와 전쟁 사이에서 (下)


‘아랍의 봄’ 지켜본 사회·권위주의 국가
소셜 미디어, 강력한 통제 영역으로 규정
중국, 구글·유튜브 등 차단 방화장성 구축
북한, 폐쇄적인 인트라넷 ‘광명넷’만 허용
태국, 로열 패밀리 권위 손상 게시물 금지
러시아는 전쟁 수행 일환으로 규정하고
국영방송·통신사 설립 국가정책 적극 홍보

 


2010년 ‘아랍의 봄’에서 민주주의의 춘풍을 불게 했던 소셜 미디어는 사회주의나 권위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중이 무소불위 독재자들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사건을 지켜보면서 권위주의 국가들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은 사회경제적 발전의 발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폭탄이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 없이 경제적 도약을 꿈꾸기 어렵지만,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의 IT 기업이 주도하는 소셜 미디어는 통제하기 곤란했다. 국내에 사업체를 두지 않고 외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허용하는 것은 정보의 국경을 활짝 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이후 권위주의 국가들은 소셜 미디어를 강력한 통제의 영역으로 삼기 시작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터넷서비스공급자(ISP)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은 정보 유통이 자유로운 무형의 영역이지만, 인터넷은 ISP를 통해서만 정보 유통이 가능하다. ISP를 국유산업으로 만들고,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일부 도메인을 차단하거나 아예 인터넷 자체를 차단하고 인트라넷으로만 운영하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중국은 정보 유통을 주권의 영역으로 보고 황금방패(金盾)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시황제가 이민족 침략을 막기 위해 구축했던 만리장성을 연상케 하는 방화장성(放火長城)을 구축해 정보를 통제한다. 황금방패 프로젝트에는 3만 명의 공안요원이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중국에서는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사이트 접속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부 사이트는 접속을 허용하더라도 때에 따라 전송속도를 인위적으로 느리게 만드는 스로틀링(throttling) 방법도 사용한다. 그리고 ‘천안문 사태’와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키워드는 검색을 막고 있다. 가상 사설망(VPN)으로 이 사이트에 우회 접속하는 방법도 있지만, 최근에는 가상 사설망도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북한에는 500만 대 이상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보급돼 있다. 북한도 IT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OS)를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첨단 기술로 무장한 해커부대도 운영한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인터넷 접속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광명넷’이라고 불리는 폐쇄적인 인트라넷만 운영한다(북한은 외국인 여행자에게만 별도의 망을 통해 인터넷 접속을 허용한다). 게다가 북한의 스마트폰은 앱 설치가 자유롭지 않다. 스마트폰 앱은 내려받기가 불가능하고 앱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매장을 방문, 유선으로 연결해 허용된 앱만 설치할 수 있다. 북한에서 스마트폰은 감시 도구로도 사용된다. 당국이 이용자 모르게 스크린샷을 복사하거나 카메라를 작동시키기도 한다.

한편, 인터넷 접속을 허용한 나라들에서는 사후적인 통제 조치를 시행한다.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태국에서는 로열 패밀리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게시물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2017년 페이스북에 반바지 차림의 국왕 이미지가 게시되자, 정부는 그 이미지를 옮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본 사람도 처벌하겠다고 예고한 적도 있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는 ‘가짜뉴스’ 처벌법을 제정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허위 정보를 유포한 사람에 대해 벌금형을 비롯한 형사적 처벌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위의 사례들이 인터넷 정보 유통을 차단하거나 정보를 검열하는 방어적 조치라면, 러시아와 같은 국가는 적극적인 전략을 취한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러시아는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해 정보에 대한 국가 검열을 폐지했다. 대신 2013년 러시아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전쟁 수행의 일환으로 보는 ‘하이브리드 전쟁’ 개념을 채택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란 물리적인 파괴력을 수반하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거나 타격을 가하는 방법으로 러시아군 총참모장을 지낸 게라시모프의 이름을 따서 ‘게라시모프 독트린’으로 불리기도 한다.

러시아가 추진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은 러시아 투데이(RT) 같은 국영방송국이자 인터넷 뉴스통신사 역할을 하는 언론기관을 통해 수행된다. RT는 2005년 설립됐으며 초기에는 350억 원 정도의 예산을 가지고 소규모로 운영됐지만, 최근에는 예산을 5000억 원가량으로 대폭 증액해 운영하고 있다. RT는 뉴스 이외에도 다큐멘터리, 토크쇼, 스포츠, 문화 관련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며 미국과 영국에 지국을 두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아랍어로도 방송하고 있다.

RT는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과 대외 정책을 뒷받침하는 홍보 매체의 기능을 하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인 선전매체는 아니다. RT는 CNN의 시사토크쇼 호스트로 유명한 래리 킹을 고용하기도 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투데이를 방문해 “정부가 돈을 대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반영할 수밖에 없더라도 RT가 러시아 정치 노선을 대변하는 채널이 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는 묘한 말을 남겼다. 그럼에도 RT가 국제적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의 방송통신위원회인 오프컴은 RT가 공정성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경고했고, 미국은 해외 기관으로 법무부에 등록하도록 요구했다. 실제로 RT의 편집국장은 “서방세계를 대상으로 정보전을 치르고 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가 말한 것처럼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가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 ‘글로벌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인터넷은 전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 20년 전 인터넷이 아직 초창기였던 시절,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데이비드 보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인터넷은 사람들이 서로 함께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갈라놓을 것이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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