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성공으로 가는 협상 전략

철저한 법적 근거…정교한 반박 논리…전례 없던 역전승...협상도 이기고 밥상도 지켰다

입력 2019. 12. 11   17:08
업데이트 2019. 12. 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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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후쿠시마 수산물 WTO 분쟁 승소 사례, ‘치열한 협상정신’ 시금석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 회원들이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합헌 판정에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 회원들이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합헌 판정에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간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면 사실상 전쟁에 버금가는 총력전이 펼쳐진다. 특히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유네스코(UNESCO),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 국제기구에서는 이 같은 국가 간 경쟁과 대결이 진행되는 사례가 많고, 승소나 대회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최근 후쿠시마 수산물을 둘러싼 한·일 간 분쟁에서는 양국 간 치열한 협상 전략과 기술이 동원됐고, 최종 승리는 한국 측이 가져갔다. 정책담당자나 국민이 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협상문화를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 분쟁서 승소 개가

한·일 간 분쟁은 2013년 8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오염수 300여t이 비밀리에 바다에 유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제대로 관리·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우리 정부는 같은 해 9월 후쿠시마와 인근 8개 현의 모든 수산물에 대해 수입을 금지했다.

일본은 한국에 수입 제한 조치의 철회를 반복해 요청했고, 2015년 5월 한국에 대해 WTO 협정 중 부속협정인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관한 협정(SPS·Agreement on 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을 위반했다며 WTO에 제소했다. 2018년 2월 열린 1심에서는 일본이 승소했고, 2019년 4월에는 한국이 최종 승소했다. WTO 상소기구는 2019년 4월 11일 우리 정부의 일본산 식품 규제 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관한 협정에 합치한다며, 한국의 수입규제 조치는 “자의적 차별이 아니며 부당한 무역 제한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판단했다.


자국이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역전패했다는 소식을 1면에 전한 일본 주요 신문들.  연합뉴스
자국이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역전패했다는 소식을 1면에 전한 일본 주요 신문들. 연합뉴스

1심 결과-일본 측 전략 철저 분석-대비로 성공 협상 이루다

2018년 2월 당시 준비 소홀로 패소했던 1심과 정반대의 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2심 협상은 대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심의 경우 WTO 규정을 이유로 핵종 검사 기준치 누락, 수입금지 품목 등과 관련 정보 누락 등 자충수를 뒀다는 우리 내부의 반성적인 평가가 나왔다. 반면 2심에서는 1차 분쟁에서의 패소가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상소 과정에서 이행 절차에 12~15개월이 소요되는 등 승리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적극 대응에 나섰다.

SPS 협정과 관련해 피소된 당사국이 패소한 사건이 상소기구에서 뒤집힌 전례가 없었던 점이 큰 부담이 됐지만, 협상팀은 국제법에 근거해 철저히 준비하고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정교화해 상소심에 나섰다.

협상팀은 SPS 협정과 관련해 일본만 부당하게 자의적으로 차별했느냐라는 쟁점에 주목하고, 상소기구가 지리적 특수성과 잠재적 위험성, 자국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 일본산 수산물이 갖는 특별한 사정 등을 모두 판단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협상팀은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하며 실제 변론을 하듯 심리를 대비했다. 감정인들이 일본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꾸려지는 등 상황이 우리 측에 유리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정보를 적극 제공하고 우리 측이 준비한 논리를 펼친 결과 상소기구는 통상과 환경적 요소를 고려해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승리였다.

협상은 당장의 무역상 이익이나 정책성과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바꾼다. 이번 협상으로 피소된 당사국이 상소기구에서 1심을 뒤집고 승소한 첫 사례를 만들었고, 국익을 지키는 결과까지 얻었다. 협상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중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협상문화 정착을 위한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능숙하고 리듬감 있게 공격-방어하는 협상기술 8계명

협상에 나서는 순간 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효율적이고 속도감 있게 대처해야 한다. 협상은 치열하게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 소통과 공감을 통해 이익을 나눠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탐 가슬린, 왕하이산 등 협상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협상장에서 능숙하고 리듬감 있게 공격-방어를 하는 8가지 협상 원칙이다.

1. 협상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상대가 실제 이익을 얻는 것 외에 협상 과정에 참여했고, 협상 결과에 자신의 몫이 반영됐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협상은 소통이고 이익 나누기다.

2. 살라미 전술, 잘게 썰어라: 조금씩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처럼, 통째로 다루기보다 잘게 나눠 접근한다. 여러 현안을 세분화해 단계적으로 접근해 협상 이득을 극대화한다.

3. 허영심은 함정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협상은 심리게임이며 흥분하거나 자만하면 지게 된다. 상대방의 두려움과 욕심, 허영심을 내 편에 유리하게 이용하라.

4. 결정적 정보는 끝까지 숨긴다: 협상 상대방의 제약요소와 권한 등에 관한 정보 수집은 필수적이다. 나의 최종 결정을 노출하지 않아야 하며, 결정적 정보는 협상판을 바꾸게 된다.

5. 가랑비에 옷이 젖듯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 협상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서서히 내 편으로 잠식되도록 해야 한다. 상대가 경계심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

6. 공격이 끝나기를 기다려라: 상대가 공세를 펼 때는 지켜보면서 반격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무조건 맞서면 감정싸움도 격해지고, 파국으로 이어지기 쉽다.

7. 질문을 던지고 기다려라: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질문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질문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8. 유머를 활용하라: 유머는 상대의 부정적 감정과 경계심을 사라지게 하는 최고이자 최선의 무기다. 웃는 순간 협상은 절반의 성공에 도달한 셈이다.

<김홍국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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