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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공허 숭고한 미학

기사입력 2019. 12. 04   16:50 최종수정 2019. 12. 04   16:52

<42> 색면추상: 형식이 아닌 형이상학을 그리다 - 마셜 플랜, 풍요의 시대, 제스처 페인팅, 숭고,아메리칸 타입 페인팅

‘풍요 속 불안’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표출
대상과 배경 같이 취급… 전면회화 방식 추구
구성 요소 간의 연관성보다 무관계 강조
화면은 칠해지는 바탕 아닌 그 자체로 그림 돼
바넷 뉴먼·마크 로스코 등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 무제, 1947, 아크릴릭 유화, 122.2x101.9㎝,  SFMOMA
바넷 뉴먼의 ‘Onement III’.  사진=MoMA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뒤 1947년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영국·프랑스·이탈리아·서독·벨기에 등 서유럽 16개국을 지원하며 세계 최고의 국가로 자리매김한 미국은 미술에서도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로 세상을 제패했다.

특히 1952년부터 1960년까지 8년 동안 집권한 아이젠하워(1890~1969) 대통령 시절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였다. 경제학자 갈브레이스(1908~2006)가 ‘풍요의 시대’라고 명명했던 이즈음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급속하게 늘었고 사회보험과 복지 혜택은 증가했으며 소득의 재분배도 적절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경제적 안정과 풍요로운 삶은 사회의 동질화와 획일화로 이어지고, 절실할 것 없는 삶이 주는 이완된 심리상태는 내적 불안과 무력감으로 나타났다.
미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 지나 내적불안·무력감 나타나청교도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던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고, 피임약 개발로 촉진된 여성의 성혁명과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 성공은 미국인들을 ‘풍요 속 불안’으로 이끌었다. 이는 절대적인 어떤 힘에 의존하려는 집단적인 심리상태로 이어져 사회적 신경쇠약 상태에 다다랐다. 또 많은 이들은 광적으로 종교에 빠져들었다. 이런 사회적 갈등과 모순은 1960년대 후반 폭발하게 되지만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갈등은 1950년대에 이미 극에 달해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표출됐다.

사회적 갈등과 불안이 증폭되던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에 추상표현주의에 가담했던 화가들은 컬러필드 페인팅(Color Field Painting·색면추상)과 제스처 페인팅(Gestural painting) 등 두 방향으로 움직였다. 특히 일부 화가들은 ‘신비한 공허와 숭고의 미학’이 화면을 덮는 종교적 느낌의 색면추상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이들이 색면추상화가들이다.

이런 분열은 1950년대에 이르러 비평가들에 의해 정리됐다. 이들은 추상표현주의의 대안 역시 추상예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뒀다. 색면추상화가 하나의 장르로 인정을 받은 것은 1964년 LA의 카운티미술관(KACMA)에서 열린 ‘탈회화적 추상(Post painterly abstraction)’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서다.

전시회에는 프랭크 스텔라(1936~ ), 헬렌 프랭컨탈러(1928~2011), 케네스 놀런드(1924~ 2010), 모리스 루이스(1912∼1962), 줄스 올리츠키(1922~2007), 엘스워스 켈리(1923~2015) 등 당시 미국과 캐나다에서 막 떠오르는 추상화가들이 참여했다. 이 전시를 두고 그린버그(1909~1994)는 “이들의 작품이야말로 팝아트와 달리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린버그는 1955년경부터 ‘아메리칸 타입 페인팅(American Type Painting)’을 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인상주의자들이 화면의 깊이와 부피를 표현하기 위해 명암의 대비를 억제한 것과 같은 이들의 표현 방식에 주목했다. 그린버그는 ‘그림으로 그리는 바탕’이 아닌 ‘바탕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장’이 된다고 봤다.

물론 색면추상화가들은 이미 1947년 베티 파슨스(1900~1982) 갤리리에서 열린 표의적 회화전(The Ideographic Picture)을 통해 이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넷 뉴먼(1905∼1970)은 이때 모든 비유적 또는 준구상적 모티브가 사라진 추상예술을 추구했다. 그는 1948년 ‘이제는 숭고다(The Sublime is Now)’라는 글을 통해 “우리는 유럽 회화의 수단이었던 기억, 연상, 향수, 전설, 신화 등의 장애물로부터 해방되고 있다”면서 추상적인 형태는 ‘살아있는 것’이며 추상적인 것은 자연이나 대상으로부터 단순히 추상화된 형태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커다란 화면에 한두 가지 색면으로 구획 짓고 그림 완성

뉴먼과 마크 로스코(1903∼1970) 등이 주도한 이런 경향은 잭슨 폴록의 평면적 개념에 색채를 더한 것이었다. 이들은 모네의 ‘수련’처럼 그림의 주제가 되는 대상이나 배경을 같이 취급해서 전면회화(All-Over)의 방식을 추구했다. 또 화면의 구성 요소들 간의 연관성보다는 무관계(Non-Relational)를 강조하면서 극도로 단순화한 형태, 즉 평면을 강조했다. 따라서 화면은 물감이 칠해지는 바탕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림이 됐다.

색면추상을 시도했던 화가들은 벽면처럼 커다란 화면에 한 가지 색 또는 두어 가지의 색면으로 화면을 구획 짓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이 때문에 이들 작품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관객은 걸어가면서 전체의 부분을 이어서 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 전체를 한눈에 보고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관객들은 보이는 것을 시각적으로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하다. 이론가로서,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실천가로서 바넷 뉴먼의 큰 화면은 이렇게 동시에 전체를 파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은 있되 흐름은 없이 지속될 뿐이며 다질적이지 않은 균질한 표면, 흘러가면서도 정지된 듯한 화면은 관객들이 무의 숭고함을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로스코도 커다란 화폭에 2개나 3개의 색면을 수평으로 배치한 작품으로 색면추상의 대표적인 작가가 됐다. 그가 캔버스에 색채가 일체를 이루도록 스펀지로 칠한 색면들은 화면 속에서 각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신비로우면서 숭고한 존재로 변한다. 시간과 공간을 날실과 씨줄로 화면을 짜 내려간 로스코는 정신분석학에 열중하면서 1920년대 무정부주의자들의 영웅이었던 니체(1844~1900)와 음악에 심취했다.

그는 불명확한 경계를 지닌 사각형 화면 속 사각형들의 만남과 경계의 모호함, 간섭과 교차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묘한 신비로움을 탄생시켰다. 마더웰(1915~1991)이 “그것들은 진정으로 종교적인 것들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로스코의 그림은 종교적 신비감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종교적’이란 표현이 어떤 특정 종교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의 존재와 그 존재의 모호함, 합리주의와 물질주의가 인간의 풍요를 대변하던 시절의 불안과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불멸의 절대정신을 추구함으로써 회화를 종교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이들의 그림을 진정으로 보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믿어야 한다면 관습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감상자의 섬세한 영혼을 믿는다. 그들이라면 어떤 정신적 열망을 위하여 이 그림들을 이용할 것이라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며, 정신과 열망이 있다면 진정한 교류가 있기 때문”이라는 로스코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추상은 형식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신화와 미술의 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회화의 엄숙함은 종교적 무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정준모 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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