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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경제 블록… 亞 영향력 美 ‘쇠퇴’.中 ‘증가’

기사입력 2019. 11. 26   16:02 최종수정 2019. 11. 26   16:04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잠정 타결과 안보적 함의

트럼프 TPP 탈퇴 선언에 협상 급진전… 내년 최종 체결
인도 참여 시 전 세계 인구 48%·교역량 27%·GDP 32%
교역 이익 극대화 추구하면서 안보 실리 동시에 챙겨야
  

지난 4일 태국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서 문재인(오른쪽 다섯째) 대통령을 비롯한 참가국 정상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RCEP 정상회의는 ‘협정문안 협상 종결’을 선언함으로써 2020년 최종 체결 가능성이 크게 증가했다.  연합뉴스


 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은 협상 타결과 최종 서명까지 부침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존에 뉴질랜드·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 4개국이 회원국 간 무역장벽 철폐를 목표로 추진했던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력체제(TPSEP)’는 2008년 미국의 협정 참여를 위한 교섭이 시작된 것을 기점으로 그 이름을 우리가 잘 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바꾸었다.
2015년 10월 협상이 타결되면서 세계 경제 발전의 엔진 역할을 해온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포괄하는 자유무역시장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TPP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미국의 탈퇴를 선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후 협정에 남은 11개 국가가 일본의 주도 아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협상을 진행해 2018년 12월 30일 겨우 협정이 공식 발효됐다. 미국의 참여로 힘을 얻어 추진됐던 협정이 미국의 탈퇴로 다시 힘을 잃고 폐기의 위기까지 몰렸던 것이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TPP와 비슷한 시기에 협상이 시작된 아시아 지역의 또 다른 다자 FTA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중국·일본·한국·호주·뉴질랜드 그리고 인도까지 총 16개 국가를 하나의 경제시장으로 묶는 것이 목표인 RCEP는 2012년 11월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협상 개시가 선언된 후 오랫동안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한 채 TPP보다 낮은 기대를 받아왔다.

참여국의 인구만 합쳐도 약 36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47.5%에 달하고, 2018년 기준 전 세계 교역량의 약 27%(약 13조4000억 달러)와 국내총생산(GDP)의 약 32%(약 27조5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블록(block)의 탄생을 의미하는 RCEP가 그동안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역내 무역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이 RCEP가 아닌 TPP를 아태지역 경제통합을 주도할 협정으로 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는 인도와 일본이 중국의 지역 및 범세계 경제구상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유지하는 가운데 RCEP 협상 과정에서 중국과 계속 부딪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하던 RCEP 협상이 활력을 되찾아 지난 4일 RCEP 정상회의에서 협정의 잠정 타결을 선언한 것도 상기 두 가지 요인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두 요인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미국의 역할이다.

TPP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예외 없는 관세 철폐를 추구한 것은 물론 노동시장, 환경보호, 지적재산권 보호 그리고 외환시장 개입에 관해서도 높은 수준의 기준을 수립해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에 비해 협정 참여국 간 관세 감축과 제한적인 서비스 무역 분야 개방 등을 앞세운 RCEP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자유무역 협상’으로 여겨졌다. RCEP는 미국식 시장 개방과 구조 개혁에 반발하는 중국을 비롯해 ASEAN의 일부 저개발국가 및 극빈국이 참여하고 있어 높은 수준을 추구하지 못하는 대신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러 예외 조항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잠정 타결된 협정문이 서비스와 투자 분야를 망라하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협정을 원하는 일본을 만족시키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중국의 저가 상품 유입으로 대(對)중국 무역적자가 악화되고 자국의 농업과 산업이 지나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을 우려하는 인도를 달래기에도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2018년 11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RCEP 장관회의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을 선언하고 마침내 지난 4일 정상회의에서는 ‘협정문안 협상 종결’을 선언함과 동시에 2020년 협정 서명 및 체결을 위해 남아있는 법률적인 문제 해결을 각국에 맡기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이는 바로 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에 따른 악영향을 역내 국가들이 강하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다자무역협정의 운명에 미국의 정책 결정과 움직임이 중대한 영향을 미쳐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은 물론 동맹국과 우방국에 대해서도 각종 무역 상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통상확대법 201조 세이프가드 제도나 232조 안보상 예외조치 등을 동원하는 등 보호주의 색채가 강한 무역정책을 미 트럼프 행정부가 펼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그러자 그 반작용으로 이를 상쇄할 무역 및 투자 기회를 찾게 된 국가들이 다시 RCEP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아직은 인도의 RCEP 참여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 없이 RCEP가 출범하게 될지, 아니면 인도까지 참여하는 진정한 ‘메가(Mega)-FTA’ RCEP이 될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미국이 배제된 아시아 지역 국가들만의 다자 FTA 탄생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또 세계 주요 제조회사들이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역내 무역 및 가치 사슬 연계 심화, 더 나아가서는 중국 시장의 영향력 강화를 의미한다는 점도 동일하다.

RCEP 협정의 잠정 타결과 2020년 최종 체결 가능성 증가의 안보적 함의는 미국의 역내 영향력이 더욱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한 축으로서 TPP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TPP 탈퇴와 보호주의 무역정책 추구는 중장기적으로 미국을 아시아로부터 오히려 멀어지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미 과거 안보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를 무기화하는 모습을 망설임 없이 보여준 바 있는 중국이 RCEP 최종 체결을 토대로 미국의 공백을 공략해 아시아 경제시장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한국·일본·호주 등 미국의 동맹 및 우방국들은 미·중 경쟁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때 전략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무역자유화를 통한 교역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안보적 함의를 따져 조심스럽게 전략과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기 범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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