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내 안에 나 있다’ 꿈·무의식 세계를 탐구하다

입력 2019. 11. 13   16:49
업데이트 2019. 11. 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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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초현실주의: 꿈의 해석, 이드, 자아, 초자아, 정신분석학, 데페이즈망,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영향…상상력의 힘 억압하는 합리주의에 저항
다다이즘 예술파괴 운동 보완·발전…초현실 탐구해 표현 혁신 꾀해
포토몽타주 등 발전시키고 데칼코마니 등 창조해 미학적 외연 확대
살바도르 달리·르네 마그리트·막스 에른스트 등 주요 작가로 활동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기억, 1931, 유화  뉴욕 현대미술관(MoMA)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기억, 1931, 유화 뉴욕 현대미술관(MoMA)


20세기 초 등장한 바우하우스나 데 스틸, 절대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드(Id)에 기반한 자아, 또는 초자아에 기반한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된 에너지를 통해 진정한 자아로 진실된 현실을 이끌어 내려 했다.

이들은 일상의 사물을 이용하거나 혹은 무의식적인 표현을 가능케 하는 기법을 통해 우울하고 비논리적인 장면이나 세상에는 없지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생물이나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전후 예술계를 접수했던 합리주의와 문학적 리얼리즘을 무시하고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의 정신분석학을 강력하게 수용해 상상력의 힘을 억압하는 합리주의에 저항했다.

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83)의 영향으로 정신세계가 일상세계에서 모순을 드러내고 혁명을 촉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상상력을 낭만주의 전통과 접목시켜 일상에서 계시를 찾아내려 했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에서 내키는 충동에 따라 치기 어린 행동을 했으며 신화 또는 원시주의와 미신 같은 신비주의에도 관심을 가졌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에 많은 빚을 지고 출발했다.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취리히 다다에 참여했다가 파리로 돌아온 일련의 작가들은 다다이즘의 예술파괴운동을 수정 보완하는 동시에 발전시키면서 비합리적인 꿈의 세계, 초현실을 탐구해 표현의 혁신을 꾀했다. 특히 인간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들은 1924년과 1929년, 두 차례에 걸쳐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ealisme)’을 통해 자신들의 예술적 목표와 미학을 천명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나치가 독일을 지배하고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현대미술의 기틀을 마련한다.


막스 에른스트, 유명한 코끼리, 1921, 유화, 125.4x107.9㎝ 런던 테이트갤러리
막스 에른스트, 유명한 코끼리, 1921, 유화, 125.4x107.9㎝ 런던 테이트갤러리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의 기초를 마련한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1896~1966)은 초현실주의를 ‘순수한 상태의 정신적 자율주의’로 정의했는데 이를 통해 말이나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924년 처음으로 ‘초현실주의 제1선언’을 발표했고, 이것은 곧 초현실주의자들의 행동 강령이 됐다.

이듬해 이런 미학과 기법으로 뭉친 일군의 작가들이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 전시회가 최초의 초현실주의 전이었다. 참여작가로는 막스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 앙드레 마송(Andre Massion·1896~1987), 호안 미로(Joan Miro·1893~1983), 장 아르프(Jean Arp·1886~1966), 만 레이(Man Ray·1890~1976) 등이 있었고 그룹에 가입하지 않은 피카소, 폴 클레, 이브 탕기(Yves Tanguy·1900~1955),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89), 지오반니 자코메티(Giovanni Giacometti·1901~1966) 등이 세를 보탰다. 특히 브르통은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무의식에 접근함으로써 이성과 합리성을 우회해 또 다른 실체에 다가가고자 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창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동기술법(Ecriture automatique)’에 크게 의존했다.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 유화, 100×81㎝ 워싱턴 미국국립미술관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 유화, 100×81㎝ 워싱턴 미국국립미술관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식의 세계가 아닌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다. 그래서 ‘수면의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 미학이나 윤리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순수한 원시적 상태, 선입견 없고 고정관념 없는 상태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인간의 의식 아래에 존재하는 원시적인 무의식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다.

초현실주의란 ‘내 안에 나 있다’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다. 1차 대전이 일어나자 근엄하고 자애로운 동물임을 자처했던 인간들이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광기에 휘둘리면서 야수로 돌변했고 많은 이들이 인간의 양면성 또는 이중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무의식과 꿈, 착각, 해학과 같은 것의 심리학적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과학으로 인간을 규명하고자 했던 많은 시도 중 하나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나타났다. 그는 1899년 펴낸 『꿈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을 통해 꿈과 무의식이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다. 특히 섹슈얼리티, 욕망, 폭력의 복잡하고 억압된 내면을 드러내 유효한 계시로 정당화하면서 초현실주의자들에게는 일종의 계시처럼 받아들여졌다.

또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속수무책인 일들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그의 제자인 카를 융(Carl Jung, 1875~1961)이 등장해 개개의 이드, 자아, 초자아의 배후에 있는 어떤 ‘힘’, 즉 ‘집단 무의식’의 존재를 주장했다. ‘신비주의’를 표방한 융은 프로이트를 넘어서면서 스승과 결별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미학적 범위를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프로이트와 입체주의에도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특히 다다이즘의 공간과 형태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는 초현실주의의 상상적·비현실적 공간에 비중을 두는 공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경우 때로는 추상적이며 때로는 사실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달리는 꿈이나 편집광적 환각 증세를 그림으로 그리는 ‘편집광적 비판분석 방법’을 고안해서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유형을 창조했다.

일부는 연체동물을 연상시키는 모호하고 암시적인 돌발적 이미지를 통해 보는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또 다른 것을 떠올리거나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런 작가로는 아르프를 비롯해 에른스트, 마송, 미로 등이 있다. 이들을 유기적 초현실주의 또는 상징적 초현실주의라고도 부른다.

초현실주의의 또 다른 한 축은 완벽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미지들을 원래로부터 벗어나게 존치시켜 역설적이고 충격적인 구도로 재결합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부분에 일부 동의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경우 대개 관람객은 부조리한 것들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작가로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 달리, 폴 델보(Paul Delvaux 1897~ 1994) 등이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뒤샹의 오브제나 다다이즘의 콜라주, 포토몽타주 기법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비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 즉 ‘우리가 알아야 할 현대미술의 모든 기법’을 개발해서 작품에 도입했다. 이들은 우리가 유치원 시절 미술 시간에 해 보았던 ‘프로타주(Frottage·동전이나 표면이 거친 물체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연필로 문질러 이미지를 얻는 기법)’나 오스카 도밍게즈(Oscar Dominguez, 1906~1957)가 즐겨 사용했던 ‘데칼코마니 (Decalcomanie·종이의 한 면에 물감을 칠하고 이를 맞대었다 떼어 얻는 상호 대칭적인 이미지로 우연의 효과가 잘 드러남)’, 그리고 ‘데페이즈망(Depaysement·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낯선 곳에 어떤 물체를 가져다 놓아 그 장소 자체를 낯선 곳으로 만드는 기법)’ 등을 창조해서 미학적 외연을 더욱 확대해 나가면서 현대 미술을 더욱 깊은 미궁으로 끌고 들어갔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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