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속 현대 군사명저를 찾아

하세가와 쓰요시, 일본의 항복 결정...다양한 해석에 역사적 흥미 ‘백배’

입력 2019. 11. 08   17:50
업데이트 2019. 11. 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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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현대군사명저 <40>


영·러시아어 구사 일본계 美 학자
세계대전 당시 사료·국제정세 분석
원폭 이후도 일본은 결사 항전 강조
소련 참전 결정이 日 항복 주요 이유 주장



저자: 하세가와 쓰요시 Tsuyoshi Hasegawa,

서명: 『Racing the Enemy: Stalin, Truman, and the Surrender of Japan』

출판: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역사는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이지만, 역사학은 이러한 일들에 대한 해석의 역사다. 하세가와 쓰요시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의 『Racing the Enemy』란 책은 출간 당시 미국에서 엄청난 화제와 예상하지 못한 논란을 일으켰으며, 역사 해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설계된 세계 질서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2차 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이 1991년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국제질서는 2차 대전 직후 설계된 질서로 유지되게 됐다. 즉, 2차 대전까지의 국제 질서인 영국·프랑스·독일 등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국가로 운영돼 오던 세계가 미국이라는 인류가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새로운 패권 국가의 새로운 질서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국제기구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중심의)과 워싱턴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달러 본위 체제, 국제통화기금(IMF)과 월드뱅크(World Bank) 설립, 이후 NPT 핵 확산 금지 레짐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 질서 체계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는 독일과 일본이라는 신흥 패권 국가의 패배를 기반으로 구축될 수 있었고, 미국의 패권국으로서의 도덕성(Moral, Legitimacy)은 나쁜 패권국인 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부터 세계를 지켜냈다는 신념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이유로 2차 대전에서 군국주의 국가, 파시즘을 무너뜨린 미국의 희생과 공헌이 역사 속에서 대중문화 속에서 재생산돼 왔고, 유럽 전역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중심으로 유대인을 인종학살한 독일을 무너뜨린 미국의 희생과 활약이, 아시아 태평양 전역에서는 일본을 무너뜨리기 위한 원자폭탄 사용의 정당성이 강조돼 왔다. 냉전 이후에는 소련의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으로부터 자유진영 질서를 수호한 미국의 공헌이 강조되고 있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전시실에 걸려있는 핵 미사일 모형. 하세가와 쓰요시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저서 『Racing the Enemy』를 통해 일본의 항복이 원폭이 아닌 소련의 참전 결정으로 정해진 것이라는 기존과 다른 주장을 내놓아 사회적·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방일보 DB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전시실에 걸려있는 핵 미사일 모형. 하세가와 쓰요시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저서 『Racing the Enemy』를 통해 일본의 항복이 원폭이 아닌 소련의 참전 결정으로 정해진 것이라는 기존과 다른 주장을 내놓아 사회적·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방일보 DB


원폭 사용의 정당성 논란

흥미롭게도 시대가 변하면서 이러한 역사적 담론에 반론을 재기하는 여러 상황들이 진행됐다. 즉,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원자폭탄이 사용된 일본에서 반인륜적인 무기를 사용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미국 내에서 강렬하게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이러한 비난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행정부와 군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원자폭탄 사용의 정당성은, 원자폭탄을 당시 사용하지 않고 일본 본토(한반도 포함)를 침공하려던 ‘Operation Downfall’을 실행했더라면 원자폭탄 희생자보다 훨씬 더 많은 인명 희생이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리처드 프랭크(Richard Frank)의 『Downfall: The End of the Imperial Japanese Empire』란 저서는 실제 일본 본토 침공 작전 계획을 깊이 있게 설명하고, 미국이 워 게임(War Game)을 실행했을 때 막대한 미군과 일본인의 살상 규모를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희생을 줄이고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원자폭탄 사용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주장들로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불가피성은 많이 수용됐고,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논란은 줄어들었다. 이때 하세가와 교수의 책이 발간된 것이다.


일본 항복 원인의 재해석

저자는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박사를 취득한 후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하세가와 교수는 일본어와 영어는 물론 러시아어도 읽을 줄 아는, 즉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일본계 미국 역사학자였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3개 언어를 통해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역사학자로 1차 사료를 기반으로 연구 성과를 내놓았는데 일본 항복 당시 전쟁내각의 회의록, 소련에서의 참전 관련 기록들, 원자폭탄 사용 당시 미국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당시 급박했던 국제정세를 분석하게 됐다. 그 결과가 『Racing the Enemy』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1945년 원자폭탄 투하 이전 소련이 참전을 고민하던 당시 일본이 모스크바의 대사관을 통해 그들의 참전을 막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원자폭탄 사용 직전과 직후 일본 전쟁내각의 회의록 자료들을 통해 실제 원자폭탄이 일본의 항복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상세히 분석했다.

놀랍게도 당시 원자폭탄 사용 직후에도 여전히 일본 전쟁내각은 끝없는 결사항전을 내세웠으며, 이는 당시 지속적인 미국의 공중폭격에 익숙해져 있던 일본의 반응이기도 했다. 즉, 계속해서 일본 주요 시설에 대한 미국 폭격기의 공격에 노출됐던 당시 일본에 원자폭탄은 좀 더 큰 폭탄으로 여겨졌던 것이고, 일본 민간인들의 희생보다 일본 왕실의 보존이 더욱 중요했던 일본의 자연스러운 인식이기도 했다.

두 번의 원자폭탄에도 영원한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일본 내각이 항복을 최초로 검토하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소련의 참전 결정이었다. 모스크바의 일본 대사관을 통해 소련의 참전만은 절대로 막으려 했던 일본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하고 참전이 공식 결정되자 일본은 혼비백산했다.


당시 독일의 자국 공격에 대한 복수로 소련은 독일 진격 시 무자비함으로 악명을 떨친 군대로 알려져 있었다. 더욱이 소련에 정복당하는 것은 차후 공산주의 국가가 됨은 물론, 일본 왕실의 보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을 의미했다. 무자비한 공산국가에 정복당하는 것은 미국과 서방 자유진영에 정복당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던 것이다.


저자는 원자폭탄 사용 전후와 소련의 참전 결정을 전후로 한 당시 일본 전쟁내각의 급박한 의사 결정 변화를 추적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항복은 원자폭탄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 결정으로 정해진 것이란 주장을 하게 됐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


본 저서는 저자가 원하지 않은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촉발했다. 즉 원자폭탄 사용의 정당성, 일본 항복을 최대한 빨리 받아내 인명 살상을 최소화했다는 기존의 주장들이 모두 반박당하게 된 것이다. 미국 내 반핵 시민단체들은 이 책의 해석을 중심으로 반인륜적이고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자폭탄을 사용한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 미 행정부, 미 군부의 비도덕성을 비난하고 사죄를 촉구했다. 이 책은 다양한 역사적 해석을 내놓으려던 저자의 의도를 훨씬 뛰어넘어 미국 사회에 원자폭탄 사용의 정당성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 됐다.

이 책은 여러 가지 교훈을 남긴다. 첫째, 역사적 해석은 고정되거나 멈춰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지만, 역사학의 근본 취지는 1차 사료(증거)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기존에 주류라고 알려진 역사적 해석에 멈춰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것이다. 역사학은 단순히 오래전 일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 사회의 가치관과 세계관, 이데올로기와 생각하는 방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학은 객관성과 1차 사료라는 증거를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본 저서는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라는 역사학의 중요성과 흥미로움을 잘 나타내주는 역작이라고 볼 수 있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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