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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독자마당] 유엔군 최초 전투지 오산의 평화공원

기사입력 2019. 11. 06   15:47 최종수정 2019. 11. 06   15:49

이상구 
육군51사단 오산시 중앙동 예비군동대장

예비군 지휘관으로서 내가 지키고 있는 경기도 오산시는 유네스코에서 교육도시로 선정한 국제적인 도시다.

또한, 교육도시라는 명칭에 걸맞게 아이들을 양육하기 좋은 시로 만들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데 앞장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평화로운 도시다. 그러나 지금의 오산도 과거 임진왜란과 6·25전쟁 당시에는 전란의 소용돌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임진왜란 직후인 1593년 2월 초, 오산 독산성. 조선의 권율 장군과 일본 왜군이 서로 대치 중이었다.

매서운 공격에도 조선군이 끄떡없자 왜군은 성 앞에 진을 치고 물자가 부족해 조선군이 스스로 성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긴 시간 기다린 왜군을 향해 권율 장군은 성(城)의 가장 높은 곳에서 흰쌀로 말을 목욕시키는 행위를 연출했고, 이것을 본 왜장은 여전히 독산성 내에 전쟁물자가 많다고 착각해 철수했다. 그렇게 세마대(洗馬臺)가 탄생했다.

또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후인 7월 5일 수요일, 오산 죽미령 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유엔군 소속으로 파견된 스미스 특수임무 1개 대대가 전차를 포함한 적 1개 사단과 첫 전투를 벌였다.

오전 8시16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6시간14분 동안 스미스 특수임무대대는 치열하게 전투에 임했고 북한군의 남침을 지연시키며 낙동강 전선을 공고히 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를 벌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두 전투의 중심에 오산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한양으로 북상하는 길 중심에, 6·25전쟁 때는 북한군이 부산으로 남하하는 길 중심에 오산이 있었다. 즉 오산은 전쟁의 요충지이자 중요한 목이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장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 바로 오산시다. 오산시에서는 2013년, 죽미령전투 현장에 유엔초전기념관(유엔初戰紀念館)을 세워 매년 3000여 명의 지역주민과 학생·군인이 참여하는 호국 학습장으로 활용해 오고 있다.

최근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고자 기념관에 호수, 산책로, 평화학연구소 등을 보강해 평화공원으로 재개장했다.

6·25전쟁과 유엔군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공간에서 올바른 역사관과 평화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시도하는 오산시의 죽미령 평화공원의 개장을 환영하며, 전쟁의 아픈 역사를 극복한 호국 공원에서 이제는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평화체험·평화교육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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