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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 쇠잔 징후 보여 줘

기사입력 2019. 10. 29   16:49 최종수정 2019. 10. 29   16:52

터키의 대(對)시리아 군사작전 배경과 안보적 함의

미군 시리아 철수에 ‘테러세력 무력화·안전지대’ 명분 진격
터키, 지정학적 가치 십분 활용 러시아·유럽 양보 이끌어내
미국 동맹체제 신뢰성 위기… 결국 “공짜안보는 없다” 각인 


터키의 대(對)시리아 군사작전은 우리에게도 곱씹어야 할 교훈을 준다. 터키군 군용차량들이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작전을 위해 지난 9일(현지시간) 시리아 접경 터키 킬리스에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9일, 터키군은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북동부로 진격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작전 개시를 선언하며, 목표는 “테러 세력의 무력화와 시리아 북동부 내 안전지대(security zone) 형성을 통한 시리아 난민 귀환”이라고 밝혔다. 이 사태는 지난 2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 소치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터키가 주장하는 안전지대를 공동 순찰하기로 합의하면서 진정됐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중해에 위치한 터키는 러시아와 가장 근접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터키의 시리아 군사작전 사례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 국가와 극우 성향의 정책결정자집단이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이번에 발생한 터키의 ‘세 번째’ 시리아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신호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곱씹어야 할 교훈과 심각한 파장을 낳았다. 이 글에서는 터키의 군사작전 배경을 살펴보고, 터키의 군사행동 전후에 나타난 현상을 억지의 실패, 국제질서, 동맹관리 측면에서 분석한다.

터키가 밝힌 작전 목표에는 테러 조직으로 간주하는 쿠르드족 민병대(YPG)를 굴복시킴으로써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고, 군사작전을 통해 얻게 될 지역에 3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해 치안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은 ‘국경의 확대’다. 소치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자국의 동맹국인 시리아의 자주권과 영토 보전 존중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터키의 관점에서 대시리아 군사작전은 예고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2018년 10월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꾸준히 미군 철수를 논의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안보 우려(쿠르드족 독립, 난민 수용 위기)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핵심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동기를 형성했다. 국내 정치는 형성된 동기를 관심 전환 전쟁이라는 선호로 이끌었다. 2019년 3월 치른 총선에서 여당인 정의개발당(AKP)과 극우정당 연합의 성적은 리더십 위기 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AKP는 집권 25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 앙카라의 시장 자리를 야권에 내줬고, 제2 도시 이스탄불에서도 참패했다.

내전 종식 단계에 접어든 최근의 시리아 상황은 무력 사용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게 했다. 터키의 군사작전 범위는 2019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 보호를 위해 제안한 너비 30㎞의 안전지대 범위와 일치한다. 하지만 양국은 안전지대의 관리 주체, 크기, 비용 부담, 통치위원회 구성 등을 둘러싸고 협상에 난항을 빚었다. 마침내 9월 말 열린 유엔총회에서 터키는 폭 2㎞가 확대된 안전지대 구상을 발표하며, 터키가 단독으로 관리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여기에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원도,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며 미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했다. 이 최종적인 묵계는 터키에 기회의 창을 열어줬다.

결과적으로 터키는 자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활용해 러시아와 유럽 국가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냈다. 지중해 진출을 꾀하는 러시아가 자국의 계획에 타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기존의 국경선을 효과적으로 허물었다. 터키는 이미 2018년 ‘올리브 가지’ 작전을 통해 시리아 북서부 요충지인 아프린을 장악하고, 동 지역에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 터키는 쿠르드족을 퇴거시킨 뒤 해당 지역에 시리아 난민을 이주시켜 관할권을 행사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터키를 규탄하는 유럽 국가들에 대해 대규모 난민 이송 엄포로 안전지대 관리권을 용납받았다. 물론,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는 터키의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제어장치를 해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불어, 터키의 군사작전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쇠잔할 수 있다는 징후를 보여줬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세계경찰로서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공통의 가치와 이익에 기반해 동맹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성향과 함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구성요소들이 점차 와해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동맹국들 사이에 ‘트럼피케이션(Trumpfication)’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철수 신호를 재차 발신하는 상황에서, 그가 제안한 NATO가 통제하는 시리아 안전지대 구상은 유럽 국가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터키의 시리아 군사작전 직전까지의 상황이다. 사태 직후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와 NATO 국방장관이사회에서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자유주의 세력의 분열을 노정했다. 그러는 사이 중동에서는 러시아를 위시한 ‘권위주의의 축(러시아·이란·시리아)’이 새로운 질서의 공간을 메워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터키의 군사작전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구성하는 미국의 동맹체제가 신뢰성의 위기를 맞았다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동 사례를 통해 동맹의 헤징(hedging), 동맹국 제지, 동맹 딜레마(방기와 연루의 두려움), 안보보장 등의 동맹 이슈가 대거 불거졌기 때문이다. 터키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헤징 전략을 선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고를 무시하고 군사작전을 감행한 터키에 추가적인 경제제재를 부과했지만, 제재는 핵심이익 관철을 위해 무력사용을 결심한 동맹국을 제지할 수 없었다. 한편, IS 격퇴전의 핵심 동맹이었던 쿠르드족을 배신해 동맹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쿠르드족과 터키의 분쟁에 연루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결국, 미군 철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 불안으로 이어졌고 이들 국가는 자강(自强) 노력과 더불어 러시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동맹체제가 신뢰성의 위기에 직면하면, 안보 불안을 느끼는 국가들의 위협 인식이 커져 안보 딜레마가 심화되고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가중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억지의 실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쇠퇴, 동맹체제 신뢰의 위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중동에서 발생한 국제정치 현상을 다뤘지만, 아시아로 시선을 옮겨와도 묘하게 기시감이 크다. 추세와 맥락, 핵심 행위자가 유사한 까닭이다. 한국은 불안정한 다극 체제의 등장 가능성에 대비하고, 핵심이익은 스스로 지킬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공짜 안보는 없다.


이 수 진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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