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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병영칼럼] 그림을 통한 몰입과 긴장완화

입력 2019. 10. 17   16:15
업데이트 2019. 10. 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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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서울여대 특수치료 전문대학원 부교수
김선희 서울여대 특수치료 전문대학원 부교수


그림을 그릴 때, 문득 손에 잡히는 색을 집어 들고 팔을 움직여서 그려지는 운동감과 색의 움직임을 발견하는 것, 실수로 그어진 선이라도 그걸로 인해 떠오른 어떤 장면이나 모양을 구체화하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잠시 그 즐거움에 빠집니다.

미술치료에서는 마음을 다루는 방식에서 심상, 즉 이미지를 중요한 도구로 다룹니다. 이미지로 생각하는 마음을 시각적 사고(visual thinking)로 다루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느끼지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색과 선, 형태와 구조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그리거나 입체 작업을 해보는 것이 바로 그 과정입니다. 특히 압도되는 감정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도화지 위에 풀어놓다 보면 억압되고 무시했던, 그러나 자신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는 부정적 감정들을 다루어볼 수 있습니다.

개개인은 삶의 장면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특히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압도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 자신이 현재 경험하는 무거운 감정들을 개인적으로 다루기가 쉽지 않고, 설사 다룬다 하더라도 그 집단 전체가 공유하기 전에는 그것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단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다룬 한 예를 들자면,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때의 컬링팀 이야기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과 응원을 뜨겁게 받고 있던 컬링팀이 일본과의 4강전을 앞두고 얼마나 긴장하고 스트레스가 심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때 그 선수들이 어떻게 그러한 마음의 중압감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지를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는데, 바로 올림픽 경기 기간에도 선수들이 회의실에 모여 미술심리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스포츠 선수들에게 팀원이 함께하는 미술치료는 일반적이지는 않은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동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노력하거나 더 집중해서 훈련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 안의 이미지를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긴장이 완화되는 마음 상태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기사에는 컬링팀 선수들이 이미 익숙한 미술심리치료와 명상을 했다고 쓰여 있었는데, 미술치료사로서 눈에 띄는 내용은 바로 ‘이미 익숙한’이라는 어구였습니다. 국민 모두를 뜨거운 열정으로 응원하게 하면서 컬링이라는 생소한 스포츠를 단숨에 최고의 인기 종목이자 팀원 모두를 스타로 만드는 과정에는 선수들의 기량뿐만 아니라 그 팀이 함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왔는지, 얼마나 열심히 즐겁게 함께하고 있었는지를 ‘이미 익숙한’이라는 어구가 잘 알려주었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전에 오늘 그림 그리기를 통해 즐거운 몰입의 경험을 자신에게 허락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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