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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그리고 보안

입력 2019. 09. 19   17:02
업데이트 2019. 09. 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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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준영 대위 해군잠수함사령부 정보참모실
맹준영 대위 해군잠수함사령부 정보참모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사람도 옆구리를 쿡 찌르면 움찔한다! 넛지(nudge)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쿡 찌르다’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정의했다.

가장 유명한 「넛지이론」의 예시로는 화장실의 ‘파리 스티커’가 있다.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화장실은 소변기 옆으로 비켜나간 소변 때문에 항상 지저분했고, 공항 관계자는 지속적인 민원에 시달렸다. 공항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 스티커’로 이용객의 옆구리를 찔렀다! 소변기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자, 이용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파리를 향해 조준을 시도했다. 작은 스티커는 이용객들이 소변을 정확하게 보도록 유도하는 넛지 역할을 했고,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가량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행동을 엄격하게 금지하거나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아도, 높은 효과를 보는 방법이 바로 「넛지이론」이다.

군 생활과 보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작게는 개인의 진급에서부터 크게는 부대의 보안태세와 기강 그리고 국가의 안보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각급 부대의 보안 주무부서는 개인과 부대의 보안태세 확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런다고 해서 모든 보안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보안과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발생한 보안위반 사고를 조사하고 위반자를 교육하는 일이다. 실수로 국방망PC에 스마트폰을 연결하고 사색이 되어 찾아온 전우를 다그치며 보안위반 발생 보고서를 작성하는 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완벽한 군사보안태세 확립은 엄중한 신상필벌의 원칙에서 나온다지만, 한편으로는 무조건적 처벌보다 제도적인 예방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의 위반 사례 같은 경우, 스마트폰 연결 케이블에 작은 인식표를 부착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옆구리를 쿡 찌르는 「넛지이론」의 적용이다. 우리 사령부 보안과는 연합연습 간 무분별하게 작성되는 음성 비밀성 자료들을 적발하고 처벌하기보다, 연습노트로 일원화해 관리하는 등 「넛지이론」을 적용한 보안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

부드러운 개입 ‘넛지’는 실무자와 보안관계관 모두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으로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우리 사령부 보안과는 2019년도 예하 부대 보안감사를 지적과 처벌을 위한 감사가 아니라 전우의 옆구리를 쿡 찌를 넛지가 가득한 감사로 준비하고 있다. 모든 전우가 보안감사에 지레 겁먹기보다는 보안에서의 새로운 넛지를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적극 동참해준다면, 보안감사는 부대 보안태세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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