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최기영 기고] 필름카메라의 매력

입력 2019. 09. 19   16:43
업데이트 2019. 09. 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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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기 영 피알비즈 본부장
최 기 영 피알비즈 본부장

나는 소위 ‘필빠’(필름카메라 마니아)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던 나는 전공과목 중 ‘보도사진 실습’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수동 클래식 필름카메라에 매료됐다.

그러나 요즘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워낙 뛰어나고 촬영한 뒤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가 대세가 돼 버린 지 오래다. 필름값 걱정 없이 사진을 찍고 촬영된 이미지를 골라 얼마든지 무한복제가 가능한 데다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으로 감쪽같이 다른 형태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투박한 필름카메라의 조리개를 신중하게 조절하며 한 장 한 장 찰칵찰칵 정성스럽게 셔터를 누른 뒤, 다 찍은 필름을 맡기고 결과물을 기다리는 작은 설렘과 필름만의 깊은 색감은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요즘 유행을 주도하는 세대는 소위 밀레니얼 세대라고 한다. 누구보다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세대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이들 세대에서 뉴트로(New-tro·복고의 새로운 해석)가 유행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기성세대들이야 과거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아날로그를 소비하곤 한다. 그렇지만 우리 장병들과 같은 젊은 청년세대는 LP판이나 필름카메라 같은 것들을 접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소품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그런 그들이 필름카메라의 노출 값을 신중하게 계산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처음엔 의아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늘 숨이 가쁘다. 나 역시 어느새 유행과 기술을 뒤쫓는 일이 버거운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웅다웅 다투며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일상 속에서 필름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찾아 꾸밈없는 나만의 사진을 얻는 일은 나에게는 언제나 큰 위안이다.

그런데 지금 청년세대의 고민은 우리의 그것과는 결이 다른 것 같다. 오죽하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얽히고설키며 지난 세대들이 당연히 추구했던 것들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들의 ‘뉴트로’는 어쩌면 이러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에 대한 저항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군 생활은 오래된 앨범에 꽂혀 있는 빛바랜 필름 사진으로 아직 남아있다. 가족들이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편지와 함께 나의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도 내게 사진을 보냈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전송할 수 있지만,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기다리는 일은 그 시절 정말 큰 낙이었다. 필름 사진은 그렇게 나의 인연들과의 추억이고 사랑의 표현이었다.

필름카메라는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으로부터 잠시 물러나 다소 느리지만, 나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한다. 우리 장병들의 군 생활도 주류 사회로부터 잠시 반 발짝 이탈해 자신의 인연들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신없는 디지털 세상을 오랜만에 벗어나 느끼는 필름카메라의 아날로그 감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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