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

자주국방 포기한 대가…러, 순식간에 크림반도 합병

입력 2019. 09. 10   16:22
업데이트 2019. 09. 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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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우크라이나(하)


키예프 군사박물관 입구. 크림전쟁 전사자들 사진과 땅에 꽂힌 러시아군 포탄(오른쪽 끝)이 방문객을 맞는다.
키예프 군사박물관 입구. 크림전쟁 전사자들 사진과 땅에 꽂힌 러시아군 포탄(오른쪽 끝)이 방문객을 맞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전형적인 복합전(Hybrid Warfare) 성공 사례다. 러시아는 처음부터 교묘한 정치심리전으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군사개입을 은폐했다. 민간인 복장의 특수부대는 은밀하게 친러 반군을 지원했고, 결정적 시기에 공중강습부대를 투입해 우크라이나군을 제압했다. 뒤이어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을 동반한 의문의 크림공화국 새 총리가 나타났다. 그는 러시아로의 크림반도 합병 요구와 전격적인 국민투표로 98%의 찬성표를 얻어냈다. 또한, 러시아군은 국경 군사력을 대폭 증강해 서방진영 개입을 사전에 차단했다. 속전속결로 단 한 달 만에 전투를 끝냈다. 양측 3만 명의 전사자와 11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뒤늦게 우크라이나 정부는 징병제를 부활시키는 등 국정 최우선순위를 군사력 강화에 두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현역 병력 25만5000명, 예비군 15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키예프 군사박물관의 크림반도 전쟁 사료
키예프 군사박물관에 전시된 전쟁화 ‘우크라이나 자유를 위하여’.
키예프 군사박물관에 전시된 전쟁화 ‘우크라이나 자유를 위하여’.

키예프군사박물관은 입구에서 크림전쟁 전사자 사진과 길바닥에 꽂힌 로켓포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1층에는 수백 년 전 키예프공국 시기의 군사 유물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2층은 우크라이나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크림전쟁’ 사료로 꽉 차 있다. 전쟁 배경, 전력 비교, 러시아군 특수부대, 피격당해 벌겋게 녹슨 장갑차·탱크 사진 등 현대전 양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실전 투입된 쌍방 무기·장비들은 대부분 소련제였다. 북한 역시 유사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파괴된 장비들을 잘 분석하면 북한군 무기체계의 취약점 파악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곳에서 전시물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우크라이나인 유젠(Eugen)을 만났다. 그는 키예프대학 졸업 후 한때 모교 교수로 재직했다. 우크라이나 최고의 대학이지만 급여가 너무 적었단다. 특히 자신이 관심을 가진 세계전쟁 유적답사 경비 마련은 불가능했다. 결국 대학을 떠나 일반 기업에 취업해 휴가 때마다 세계 격전지를 답사한단다. 더구나 한국의 전쟁기념관, 제3땅굴, 부산 유엔묘지, 태릉 육사까지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어렸을 적 그의 꿈은 군인이었다. 지금도 크림반도를 빼앗긴 분함을 참지 못해 수시로 군사박물관을 찾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도 강한 군대 건설을 위해 수차례 국방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예산 부족으로 실패했단다. 그는 처절했던 전장 기록사진을 보면서 “만약 우리나라도 한국처럼 잘 훈련된 정예 군사력을 가졌더라면 결코 어이없이 영토를 강탈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키예프 군사박물관 크림전쟁 전시실에 전시된 크림전쟁 참전부대 군기와 작전 상황도 및 자료 사진.
키예프 군사박물관 크림전쟁 전시실에 전시된 크림전쟁 참전부대 군기와 작전 상황도 및 자료 사진.

러시아 특수부대의 은밀한 비밀전쟁

2014년 2월 27일 새벽 04시25분, 30여 명의 무장대원이 크림반도 의회를 장악했다. 경비 경찰관들을 간단히 제압한 이들은 자칭 ‘크림주민 자경단’이라고 했다. 뒤이어 기관단총, 저격용 소총, 대전차포로 무장하고 사복 위에 군용 헬멧과 방탄조끼를 착용한 무리가 대거 나타났다. 바로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이었다. 곧이어 러시아군 감시 아래 의회 의원들은 ‘크림반도 주민투표안’을 통과시켰다.

3월 2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공화국 합병안에 서명했다. 이 시기 200여 명의 친러시아 무장대가 세바스토폴항 우크라이나 해군사령부를 급습했다. 해군 장병 1만 명이 주둔했지만, 기지를 이들에게 빼앗겼다. 사기가 죽은 군대에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3월 26일, 러시아 특수부대원과 자경단이 우크라이나 군부대 199개소를 장악하면서 크림전쟁은 러시아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당시 우크라이나 육군 4만1000명 중 실전 투입이 가능한 병력은 6000명에 불과했다. 군용차량 배터리는 대부분 방전돼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은 극소수였다.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군 대량 감축에 부패한 정치인들이 관여했다. 돈 되는 첨단 무기들은 아프리카 등지로 몽땅 빼돌려 뒷돈을 챙겼다. 병사의 손에는 낡은 소총만 남았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320억 달러어치의 무기가 증발했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현재도 계속되는 동부지역 내전은 평화에 취해 자주국방을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자업자득이었다.

2014년 크림전쟁 당시 전선의 우크라이나군 남녀 장병.
2014년 크림전쟁 당시 전선의 우크라이나군 남녀 장병.



세계대전 키예프전투기념관의 야외전시물

‘1943년 카예프전투기념관’으로 가는 낡은 시외버스 요금은 400원에 불과했다. 중간 시골정류소에 내려 한참을 걸어가다 작은 카센터에 들러 목적지 위치를 물었다. 차량정비 중인 청년이 자신의 차에 동승하란다. 신나게 ‘쌩’ 달리더니 눈 덮인 기념관 앞에 내려준다. 어느 곳이나 시골 인심은 순박하다. 하지만 기념관은 굳게 닫혀 있어 야외 전시장만 관람할 수 있었다.

1943년 말 독·소 전쟁 중 동부전선에는 추축군 318만 명, 소련군 639만 명이 투입됐다. 그중 일부 병력이 키예프 외곽에서 격돌했다. 1944년 5월, 소련군은 크림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확보했다. 이런 작전 경과는 야외 전시실 입간판의 전투 요도로 잘 그려져 있었다. 또한, 전승기념일의 대규모 행사와 우크라이나군 홍보사진들도 많이 전시돼 있었다.



역사교육으로 애국심 고취하는 우크라이나 육사 생도

키예프 국립역사박물관의 현대사 실은 2013년 11월의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 자료들이 많았다. 이 사건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부의 친러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중시위를 무력진압하면서 발생했다. 결국 2014년 2월 23일, 대통령은 탄핵되고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친서방정책으로 급선회한 신정부를 좌시하지 않았다. 즉 친러 무장세력의 크림반도 장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 나라는 최대 위기를 맞았고 안전보장을 약속한 국제협약은 휴지 조각이 됐다. 마침 현장학습 중인 우크라이나 육사 생도들을 만났다. 인솔 교관은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외교적 규탄 외 우크라이나를 직접 도와준 국가는 아무도 없었음을 강조한다. 사관학교에 갓 입교했다는 신입생들은 이런 역사교육을 통해 자신들이 국가 최후의 보루임을 깨닫는 듯했다. 박물관을 나서는 생도들이 자율적으로 정확하게 오와 열을 맞춰 학교로 돌아간다. 사관생도 기본 교육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 것 같았다. 사진=필자 제공

<신종태 통일안보전략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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