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게임 시즌2

소리없이 다가가 적 주력함 노리는 ‘심해의 늑대’

입력 2019. 09. 05   16:52
업데이트 2019. 09. 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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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콜드 워터스


‘콜드 워터스’에서 직접 탑승 플레이가 가능한 미국의 스킵잭급 공격 원잠. 필자 제공
‘콜드 워터스’에서 직접 탑승 플레이가 가능한 미국의 스킵잭급 공격 원잠. 필자 제공


은밀하게, 심지어 아군의 눈조차 속일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이면서도 적의 중심에 궤멸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이 전력은 소규모 인력으로 운용되면서도 워낙 상대적으로 막강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대칭 전력의 주요 사례로 자주 손꼽히곤 한다. 가장 고립된 전장에서 활동하는 바다의 늑대, 잠수함이다.

기나긴 인류의 전쟁사 속에서 잠수함이라는 병기가 등장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길게 잡아봐야 1776년 미국 독립전쟁 때 실험적으로 운용된 1인용 잠수정 ‘터틀’이 전부고, 본격적인 잠수함 운용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전쟁사에 관심 있는 장병이라면 익숙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1차대전기 독일 해군에 의해 시작됐다는 역사의 중심에 유보트(U-Boat)라는 독일 잠수함이 있었고, 이는 2차대전에서도 여전히 수상함 열세를 면치 못했던 독일 해군의 주력으로 이어져 왔다.



세계대전기의 잠수함전, ‘사일런트 헌터’

주력 전장이 1~2차 대전기였기에 많은 매체가 실제 당시의 잠수함 이야기를 다뤄왔다. 일반적인 전장에 비해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해저 이야기라는 점, 실제 역사 속에서 1차대전에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2차대전에서는 ‘에니그마’라고 불리는 독일의 암호 기계와 관련한 이야기로 잘 알려졌다는 점에서 잠수함은 색다른 전쟁을 얘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재였다.

1980년대 영화 ‘특전 유보트’는 별다른 서사 없이도 잠수함 승조원의 전투와 일상을 강렬하게 그려내며 호평받았고, 매슈 매코너헤이가 주연을 맡은 2000년대 영화 ‘U571’도 2차대전이라는 배경 속의 잠수함을 생동감 있는 역경을 통해 재현해 내며 회자되곤 한다.

대전기의 잠수함 활약상은 그렇기에 디지털게임으로도 자주 다뤄지는 소재였다. 포괄적인 전장에서의 비대칭 전력으로 갖는 강점은 ‘네이비필드’ 시리즈나 ‘배틀스테이션’ 시리즈 등에서 표현됐고, ‘월드 오브 워쉽’ 같은 해전 게임에서도 유의미하게 등장한다.

잠수함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게임으로는 ‘사일런트 헌터’ 시리즈가 독보적이다. 200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이 게임은 2차대전의 주요 잠수함 작전에 플레이어를 함장으로 취역시킨다. 기존의 수상전투 묘사와 달리 ‘사일런트 헌터’는 잠수함의 특성인 은밀한 항해와 기습공격, 안전한 퇴각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돋보여 해군 마니아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군사 시뮬레이션에 기대하는 화끈한 화력전, 대규모 교리 운용과 같은 흥미로운 요소들에 비해 지나치게 정적이고 고요한 잠수함 시뮬레이션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는 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냉전기의 새로운 의미, ‘콜드 워터스’

현대의 잠수함 개념은 주로 미국과 러시아 등의 대형 해군이 운용하는 초대형 원자력잠수함에 많이 기댄다. 대전기의 잠수함들이 디젤 추진을 사용하는 관계로 완벽한 잠수함이라기보다는 잠수가 가능한 수상함에 가까운 운용을 보였고, 수시로 추진과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보급하기 위해 물 위로 부상해야 했다는 한계는 원자력 엔진을 사용함으로써 완벽하게 극복됐다. 원자로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력 제공은 한 번의 재충전으로 몇 년의 항해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원자로가 만드는 풍부한 전력을 활용해 현대 원자력잠수함들은 산소마저도 바닷물을 전기 분해해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기술적 배경은 2차대전 이후 세계가 냉전이라는 새로운 체제에 돌입함과 맞물리며 잠수함전을 더욱 새로운 장으로 만들어낸다. 이 시기의 잠수함을 다룬 가장 대표적인 소설인 ‘붉은 10월’은 전략핵을 탑재한 채 대양을 맴도는 원자력잠수함의 고립된 상황을 핵전쟁 위기와 엮으며 톰 클랜시를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리는 데 크게 공헌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냉전 이후 원자력잠수함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들 또한 세계대전기의 게임과는 크게 다른 궤를 보인다. 2017년 여름에 스팀을 통해 선보인 킬러피시게임즈의 인디게임 ‘콜드 워터스’는 게임의 제목부터 냉전기의 바닷속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내며 원자력잠수함의 전투 상황을 그려낸다.

장기간 잠수 항행이 가능한 원자력잠수함의 함장으로서 플레이어는 1960년대, 1980년대라는 냉전기의 가상 시나리오 속에 배치된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라는 동서 냉전의 양 축 사이에서 벌어진 작은 긴장의 균열은 곧 냉전을 열전으로 확전시켰고, 그 최일선인 북대서양에서 플레이어의 잠수함은 최전선의 적 주력함을 노리는 심해의 늑대가 돼 움직여야 한다.

게임은 여전히 잠수함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시야 대신 음탐을 통해 움직이는 잠수함의 특성은 게임에선 제대로 된 시야가 거의 제공되지 않고 수병들의 보고가 도식화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플레이어의 잠수함을 풀 카메라로 보여주는 조향 장면도 존재하지만, 적을 찾아내는 과정과 어뢰 발사 등의 세부 디테일에 있어 상당 부분 플레이어는 직접 조작하기보다는 명령을 도표상에서 내리는 형태를 겪게 된다.

음탐을 통해 확인한 선박의 피아식별 과정은 꽤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파악된 소나의 음파형을 선박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고유 음파형과 비교해 최종 식별을 마치는 장면은 시야가 제한된 잠수함에 타고 있다는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아군 함의 정숙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적진 깊숙하게 침투해야 하는 미션은 아군 잠수함의 기술발전만큼이나 적의 대잠전력 또한 강화된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2차대전 잠수함전과는 또 다른 스릴을 제공한다. 후반부 미션인 적국의 전략 핵미사일 잠수함 저지와 같은 미션은 냉전이라는 고요함 속의 불같은 긴장감이 가장 치열했던 현장이 어디인가를 심해의 침묵 속에 드러낸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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