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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상담관의 단상

기사입력 2019. 09. 05   17:06 최종수정 2019. 09. 05   17:11

여군 창설 69주년 기고


박 경 희 원사 
육군39사단 양성평등상담관

올해는 꼭 엄마가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날따라 왜 그리 바쁜지 옷도 못 갈아입고 교실까지 뛰었다. 두리번거리는 아들 녀석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예쁜 옷에 깔끔하게 화장한 다른 엄마들과 달리 군복에 짧은 머리, 화장도 하지 않은 엄마가 부끄러웠는지 한 시간 내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돌아오는 내내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군인 엄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일이다. 군인 엄마들은 일반 워킹맘들보다 또래 엄마들과 정보공유가 더 어렵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내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절에는 없던 제도였으나,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큰 변화는 육아휴직이다. 제도가 도입될 당시 많은 이가 군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부군인이 아니라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까지 육아휴직을 하는 남군들도 많다. 양육의 힘듦과 아이와의 교감을 느끼는 아빠가 많다는 것은 좀 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32년 전 여군훈련소 교관님이 “너희들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하실 때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1988년까지 장교는 결혼은 허용하되 임신하면 전역해야 했고, 부사관은 아예 결혼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웃을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여군 1만 명 시대! 지금 우리 군은 국가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는 양성평등, 일-가정 양립, 모성보호제도 등을 국방부 훈령, 육군규정, 군인사법, 각종 시행령에 명시해 놨고 잘 시행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전 병과에 문호가 개방될 때도, 장기복무가 허용될 때도, 처음 야전으로 배치될 때도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고, 우리의 노력에 답해줬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장기복무가 됐고, 주임원사 직책도 수행했으며, 32년째 보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내가 그 증거다.

지금은 양성평등상담관을 하면서 성인지 업무는 물론 부대 적응, 자녀 양육, 진로 문제 등 다른 사람들의 많은 고민을 같이하고 있다. 남녀를 떠나 누군가가 처음 부대에 오면 가르쳐주는 것! 그래서 빨리 적응하게 하는 것! 자신감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이것의 결과물은 최상의 전투력이다. 그들이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은 군이 내게 준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떤 고민도 같이 해주는, 나는 그런 양성평등상담관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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