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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석 병영칼럼] 다시 떠나야 할 이유

기사입력 2019. 09. 03   15:19 최종수정 2019. 09. 03   15:53

임 운 석 빛바라 대표·작가 겸 사진가


찜통 같은 더위도 한풀 꺾였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이 묻어난다. 저녁 시간엔 긴 옷을 챙기게 되고, 차가운 커피보다 따뜻한 커피를 찾게 된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이맘때 내리는 비는 여름을 떠나보내고 가을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게 한다. 그래서 환절기에 내리는 비에는 이별과 만남이 공존하나 보다.

20대를 지나온 지금, 그때를 돌이켜 보니 이맘때면 항상 떠날 생각뿐이었다. 한 번은 마지막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떠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무작정. 다행히 좌석이 있어서 앉아 갈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캄캄한 창밖을 지켜봤다. 어둑어둑한 창밖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간간이 빨간색·파란색 신호등이 보였고, 도로를 달리던 차량만이 기차와 함께 궤적을 남기며 흘러갔다. 선명하지 않은 창밖 풍경은 20대 젊은 나에게 불투명한 미래처럼 보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어느 순간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그것들은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뒤엉켰다. 아니 풀 수 없을 것 같은 실타래였다. 머리를 짓누르던 상념들은 눈시울마저 내려앉혔다. 깜빡 잠이 든 것이다.

잠든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우리 열차, 종착지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시고….” 부산에 도착했다.

여명조차 없는 캄캄한 새벽, 역 앞 시내버스 정거장에는 첫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40~50대였는데 60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작업복 차림에 짐을 하나씩 든 그들은 어제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무기력한 얼굴들이었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그들이 내렸고 또 다른 이들이 버스에 올랐다. 1시간은 족히 달려 해운대에 도착했다.

탁 트인 바다 앞에 섰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마음속을 짓누르던 알 수 없는 무거운 생각들이 한순간에 날아간 듯 마음이 가벼웠다. 눈을 돌려 사람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여행을 떠나온 나에게 해운대는 희망의 바다였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에겐 일상의 대수롭지 않은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바다에 무심했다. 어제나 오늘, 내일까지도 항상 있을 바다였기 때문이다.

누가 ‘시간을 쏜 화살’이라 했던가. 어느덧 나도 새벽 첫차를 기다리고, 해운대 바다를 일상으로 여겼던 중년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과 무기력해진다는 것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런데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패기나 도전보다는 안주하려고 한다. 이것은 비단 숫자에 불과한 나이 문제가 아니다. 중년이든 청년이든 열정이 없다는 것은 다시 떠나야 할 이유다.

우리의 여행은 일상을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열정을 향한 여행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진정한 20대의 열정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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