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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요거트일지라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입력 2019. 08. 27   17:13
업데이트 2019. 08. 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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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영화로 푸는 테크수다 ‘러브, 데스+로봇’


각각 다른 그림체의 애니메이션 18편
로봇 중심의 사랑과 죽음 이야기 다뤄
인공지능 통제할 수 없는 특이점 시대
‘과연 인간은 특별한가’라는 질문 던져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인류를 능가하는 지능을 가진 요거트가 나타나면서 생기는 블랙코미디.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인류를 능가하는 지능을 가진 요거트가 나타나면서 생기는 블랙코미디.

 ‘강-약-중강-약, 강-약-중강-약’. 편당 5분에서 17분까지 짧은 애니메이션들이 리듬을 탄다. 잔인하고, 잔잔하며, 아름답고, 섹시하다. 저절로 눈을 질끈 감다가 이내 화면에 눈길이 간다. 오늘이 만약 ‘불금’인데 약속이 깨졌거나 깨질 약속조차 없어 우울하다면 6개들이 캔맥주 세트를 준비하고 TV를 켜시라! ‘혼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사 온 집에 남겨진 냉장고 속의 작은 세상, ‘아이스 에이지’.
이사 온 집에 남겨진 냉장고 속의 작은 세상, ‘아이스 에이지’.
     

로봇이 배경이 되는 미래, 죽음의 의미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등 판타지와 스릴러를 넘나들며 뚜렷한 세계관을 구축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과 영화 ‘데드풀’을 연출한 팀 밀러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후방주의’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로봇’ 이야기다.

러닝타임 3시간47분. 에피소드는 저마다 각기 다른 스토리와 그림체로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랑과 죽음. 여기에 로봇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을 덧씌웠다. 만약 밤 12시를 넘어 보기 시작했다면 날 샐 확률은 초고순도 불화수소와 같은 99.9999999999999%.

시대 배경은 근미래. 이 중 ‘무적의 소니’, ‘독수리자리 너머’, ‘늑대인간’, ‘아이스 에이지’는 실사를 방불케 하는 3D 모션을 느낄 수 있다. ‘무덤을 깨우다’, ‘굿 헌팅’은 전통 2D 애니메이션만의 익숙함을 준다.

1.무적의 소니: 지하세계에서 벌어지는 괴수의 결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괴수가 인간의 아바타가 되어 싸움을 벌인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 남성 시각의 섹슈얼 코드에 거부감이 있다면 건너뛰는 게 좋다. 그만큼 하드 고어 장면과 노출 수위가 높다. 암투와 배신, 반전도 간결하고 좋다. 끝날 때쯤 심장 박동 수가 꽤 높아진다. 사이버펑크의 전형으로 ‘러브, 데스+로봇’ 전체를 아우르는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2.세 대의 로봇: 여러 사람이 함께 봐도 민망하지 않은 몇 편 안되는 에피소드다. 하지만 이미 올라간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류는 멸망했다. 귀여운 세 대의 로봇이 수다를 떨며 인간 문명을 탐사한다. 이때 살아남은 고양이를 만나게 되는데….

3.목격자: 진짜 청불. 하지만 정말 잘 그렸다. 시각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에피소드. 배경은 홍콩. 스트립 걸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출근하기 위해 화장하다가 우연히 옆 건물의 남자가 살인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살인자는 왜 살인을 했고 왜 목격자인 스트립 걸을 죽도록 따라오는가? 반전이 있다.

4.슈트로 무장하고: 먼 미래의 평화로운 농촌이 배경. 하지만 울타리 너머에는 무시무시한 외계 벌레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슈트를 입은 농부들이 이들과 맞선다. ‘스타쉽 트루퍼스’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 숨 가쁘게 달려온 ‘강-약-중강-약’의 마무리다.

‘러브, 데스+로봇’은 개성 강한 작품들이 묶여 있어 자칫 음미할 틈 없이 막 달린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쯤 해서 한 번쯤 끊어보며 곱씹는 것도 좋은 감상법.

이 밖에 6편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와 16편 ‘아이스 에이지’는 폭력적이지도 않으면서 발상이 참신하다. 7편 ‘독수리자리 너머’, 12편 ‘해저의 밤’, 14편 ‘지마 블루’, 18편 ‘숨겨진 전쟁’은 시각적으로도 수작이다.

‘러브, 데스+로봇’을 관통하는 질문은 인간은 과연 특별한가라는 것인데 답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리즈 전체에서 등장하는 로봇은 인간과 동등한 존재 혹은 초월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즉, 자연 앞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는 생태학적 시각을 로봇, 혹은 인공지능으로 확장한 것이다.

청나라 말기 퇴마사의 아들과 구미호가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굿 헌팅’.
청나라 말기 퇴마사의 아들과 구미호가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굿 헌팅’.


신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출간한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반도체 기술 덕분에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2045년엔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인간의 뇌가 컴퓨터를 통해 클라우드에 접속해 인류는 ‘하이브리드’(hybrid·잡종)가 되며 나노 기술을 사용한 수명 연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불로장생’ 꿈이 빠르면 2050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영화 같은 주장은 또 있다. 이안 피어슨 박사는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우리 뇌 속의 모든 정보와 경험이 컴퓨터에 업로드돼 저장된다는 것이다.

뇌가 슈퍼컴퓨터에 업로드된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트랜센던스’가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것. 피어슨 박사는 이렇게 진화돼 호모 사피엔스를 뛰어넘은 새로운 인류를 ‘호모 옵티머스’(Homo optimus)로 명명했다.

유발 하라리도 유전학과 의학이 인공지능, 나노공학과 협업해 신생 인류인 ‘포스트휴먼(posthuman)’이 탄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시기, 즉 싱귤래리티(특이점)가 올 것이라는 점은 이론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생활이 과거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는 특이점의 과정과 결말이 바람직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러브, 데스+로봇’에서 소니처럼 괴수에게 우리의 두뇌를 업로드할 수도 있으며 인류가 외양만 귀여운 인공지능 요거트의 지배하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이 오싹한 이유다. 인공지능의 등장, 인간과 사이보그의 결합 가능성 때문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점점 고차방정식이 되어 간다.

한편 8편 ‘굿 헌팅’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켄 리우의 단편집 『종이 동물원』(황금가지)에 수록된 ‘좋은 사냥이 되길’이 원작이다. 이 밖에 1편 ‘무적의 소니’는 피터 F. 해밀턴의 단편집 『A Second Chance at Eden』에 실린 SF 소설을 모티프로 삼고 있으며 6편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는 『노인의 전쟁』으로 존 갬벨 신인상을 수상한 존 스칼지의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김인기 IT칼럼니스트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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