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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베트남’ 부상 가로막는 뜨거운 감자 ‘로힝야’

입력 2019. 08. 23   16:34
업데이트 2019. 08. 2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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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미얀마 땃마도(미얀마군)와 로힝야족 이슈 이해


2014년 11월 해군순항훈련 함정의 양곤 입항 당시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주미얀마 한국대사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2014년 11월 해군순항훈련 함정의 양곤 입항 당시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주미얀마 한국대사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민물새우가 천수를 누리는’ 고요한 은둔의 나라 미얀마가 10여 년 전부터 개방정책을 진행해 오면서, 이제는 ‘자원이 풍부하면서도 개발되지 않은 지구 상 몇 개 남지 않은 시장’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블루오션’ 혹은 ‘떠오르는 포스트 베트남’ 등으로 국제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미얀마는 세 차례(1824~1826, 1852, 1885년)에 걸친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인도령에 편입된 영국 식민지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다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미얀마는 반영(反英) 무장 독립투쟁 과정에서 일본의 도움을 받아 영국군을 몰아냈으나, 이후 다시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게 되자 이번에는 영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군을 물리친 독특한 독립운동 역사를 갖고 있다. 독립 후 1962년에 네윈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Tatmadaw)가 쿠데타로 정치권력을 잡은 이래 반세기 이상을 군부가 나라를 직간접으로 통치해 왔다. 군부독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의 결과, 2003년 민주화 로드맵 7단계 발표, 2007년 신헌법 완성, 2008년 신헌법 국민투표 통과, 2010년 신헌법에 따른 총선 실시 등의 정치 일정을 거친 뒤 2011년 3월에는 민간정부 1기인 테인 세인 정부가 출범했다. 2015년의 총선 결과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당이 승리함으로써 2016년 민간정부 2기인 NLD 정부가 집권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웅 산 수 치의 NLD가 집권하고 있는 지금도 미얀마의 정치체제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군부의 정치권력이 막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얀마의 군 통수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방총사령관에게 귀속돼 있고, 연방 국회의원의 25%는 선거 없이 국방총사령관이 임명한 현역 군인으로 구성돼 있다. 국방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국경부 장관 등 안보부처 장관들 역시 총사령관이 지명하는 현역 3성 장군들로서 행정부 내각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 또한, 군부가 2008년도에 제정한 현행 헌법에 따르면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75%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군부 동의와 협력 없이는 헌법의 단 한 글자도 수정할 수 없는 정치체제다. 집권 3년 차인 NLD 당수 아웅 산 수 치는 현행 헌법상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조항으로 인해 국가자문역(State Counsellor)이라는 직책을 신설해 외교부 장관과 국가자문역을 겸직하면서 현 미얀마 정부를 이끌고 있다.

미얀마군(땃마도·Tatmadaw)은 육군 위주의 통합군제로 육군 43만 명, 해군 1만6000명, 공군 9000명 등 45만5000명의 큰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과의 군사동맹 체결 및 군사기지 제공을 금지하고 외국의 군사지원을 거부하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미얀마의 군부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MEHL과 MEC는 군부가 직영하고 있는 대형 경제그룹으로 두 그룹의 회장은 모두 현역 3성 장군(장관급)인 인사본부장과 군수본부장이 각각 겸직하고 있다. 이들 그룹의 위상과 영향력은 한국에서의 삼성이나 현대 이상으로, 이들 그룹 산하에 산업인프라, 금융, 제조, 유통, 서비스 등 산업 전 분야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미얀마의 군사정부 기간에는 미얀마군과 한국군의 군사협력 관계가 매우 미미했다. 그러나 필자가 국방무관 재직 시(2012~2015년)에 미얀마 총사령관과 한국 합참의장의 최초 상호 방문이 각각 이뤄지고, 우리 해군 함정이 사상 처음으로 미얀마 양곤항에 입항해 군사외교활동을 펼친 데 이어 한국 국방대와 각 군 대학에 미얀마 장교들의 수탁교육이 실현되는 등 양국 간 군사교류 및 국방협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방 교류·협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방산 협력은 우리 정부가 미얀마를 여전히 ‘방산수출 요주의 국가’로 지정하고 있어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2012년과 2017년 촉발된 정부군과 로힝야 반군의 충돌로 수천 명이 희생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로힝야족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은 로힝야족을 박해하는 주요 행위자가 군부이지만, 버마족은 물론 다른 대부분의 미얀마인이 로힝야를 극도로 미워하고 있어 정치가들이 섣불리 로힝야족을 두둔하는 정책을 시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내년 말 예정된 총선 표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국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미얀마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11년 민간정부 출범과 더불어 36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중국의 밋손댐 건설 프로젝트를 비롯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러나 로힝야 난민 사태를 계기로 미얀마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투자가 위축된 가운데 중국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일대일로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짜욱퓨 경제특구 개발계획 시행과 밋손댐 건설 프로젝트 재개에 강한 의욕을 보이며, 미얀마 측을 설득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 Asia) 중에서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미얀마에 많은 공을 들여, 점진적으로 미얀마에 부과된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는 등 개입(engagement)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아웅 산 수 치 정권교체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로힝야족 인권탄압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군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무관노트; 中 의존 고착 견제…美, 경제 개입 점진적 시행


로힝야족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점은 아시아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對)미얀마 개입에 관한 부분이다. 최근 미국은 미얀마의 중국 의존도가 너무 과도한 상황으로 고착될 것을 견제하는 성격의 경제적 개입 조치들을 점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국 보험사 처브(Chubb)의 미얀마 영업 라이선스 획득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예비역 신분으로 미얀마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경제협력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미얀마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인 로힝야족 이슈가 하루빨리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진 군부의 전향적 조치와 정치적 타결을 통해 원만히 해결돼 명실상부한 ‘포스트 베트남’의 미얀마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 신 일 (예)육군대령
前주미얀마 국방무관
現㈜미얀코 글로벌 대표
최 신 일 (예)육군대령 前주미얀마 국방무관 現㈜미얀코 글로벌 대표


최 신 일 (예)육군대령
前 주미얀마 국방무관
現 ㈜미얀코 글로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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