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 > 교양 >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어서 와 이런 멜로는 처음이지

기사입력 2019. 08. 14   16:22 최종수정 2019. 08. 14   16:29

<55> 이병헌이 안방에 왔다 2030 세대 대변자로 일상의 통쾌한 저항 보여줘


영화 ‘극한직업’의 엄청난 성공이 단지 우연으로 생각되거나, 반대로 그 정도의 엉뚱함에는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본방 사수해야 할 드라마가 찾아왔다. 남들이 제작비 덩치를 한정 없이 키우며 비주얼 스펙터클로 1인 미디어와 싸우려 할 때, 착착 감기는 대사의 맛과 엉뚱 캐릭터, 그들의 황당한 미션 수행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공격하는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안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진주, 한주, 은정을 중심으로 밑바닥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그들의 일상과 구질구질하지만 끊을 수 없어 더욱 빛나는 사랑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제목이나 인물 관계도만 보면 흔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인다. 청춘을 살아가는 3명의 여성이 우연한 계기로 한집에 살면서 적당한 방해를 뚫고 멋진 이성과 사랑에 성공한다는 뻔한 결말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

하지만, 1회 차부터 그런 기대는 박살 난다. 뻔한 클리셰(Cliche)를 슬쩍 보여주는가 하면 이내 그것을 깨버리고 B급 코드들을 얹어서 엉뚱한 결말을 내는 작가의 발랄한 글솜씨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특히나 요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사라진 페이소스가 마구 폭발하는 그들의 일상은, 사뭇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상황에 대한 각자만의 독특한 반응과 재기 넘치는 대사는 어쩌면 필연이다.

이 드라마는 분명 2030세대를 위한 헌정이다. 그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짠 내 나는 노동과 불합리한 어른들의 강요로 가득 찬 현장에 대한 묘사들은 작가가 얼마나 현장을 잘 관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동화 속 왕자 대신 좀팽이나 사기꾼, 성 소수자와 친일파 후손을 집어넣는 작가의 용기는 어쩌면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기도 하다. 그나마 조상의 잘못을 참회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바른 심성의 소유자이며, 사랑의 가치를 신뢰하는 존재로 그려졌던 친일파의 후손이 불치병으로 1회 만에 죽어버리는 전개는 여러모로 상징적이기까지 하다.

이쯤 되면 이 드라마가 대체 어떤 장르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사실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어떤 순간 멜로였다가, 갑자기 코미디로 돌변하고는 슬그머니 공포물을 집어넣었다가 가족드라마로 옮겨가고 뒤이어 미스터리로 튀어버리는 이 드라마는, 장르 규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한다.

하지만 이런 뒤죽박죽 융합들은 든든한 토대 위에서 이뤄져 있다. 그것은 소름 끼치도록 날카로운 일상에 대한 관찰 자료들과 친구의 약점과 상처를 서로가 품어주며 색다른 가족이 돼 있는 공동체라는 구조다. 이 두 가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현란하다 못해 랩처럼 온갖 드립을 귀에 꽂아 넣는 대사들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폭소를 터뜨리다 주책스럽게 눈물도 짜게 된다. 심지어 분노하다가 뭔가를 깨닫는 순간까지도 만날 수 있는데 그때 묘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면 분명 당신은 아직 젊다고 확신해도 될 것이다. 

 


2회 차까지만 보고 드라마를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지 잘 알지만, 그래도 평가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대정신을 획득하고 있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미 2회 만에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기성세대와의 문화적 괴리까지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지 이야기 구조에서만 배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그 엉뚱한 연기를 원래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내는 상황들이나, 약간은 혼란스러워 보이는 컷과 컷의 연결, 생뚱맞아 보이는 앵글과 시각의 충돌, 만화적 표현 기법 등을 통해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작진이 이 시대 청춘들의 일상을 그 밑바닥까지 탐구하고 표현할 방법을 찾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장착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새롭게 보이는 이유는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세대들을 천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그래서 바라건대 더 많은 기성세대가 이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다. 단지 넋 놓고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공감하면서 봤으면 한다. 이왕이면 자식들과 함께 앉아서 본방 사수를 해보는 것도 권한다. 함께 웃고 울 수만 있어도 소통은 이뤄지는 것이니.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개 있습니다. 로그인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