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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문화산책] 스바스티카와 하켄크로이츠

입력 2019. 08. 08   14:56
업데이트 2019. 08. 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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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작가
박현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작가


한 통의 민원전화가 걸려왔다. 박물관 누리집에 오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불교 공예품과 함께 ‘卍’ 자가 소개돼 있는데,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아 독일군 마크처럼 보인다. 국립박물관에서 우리 문화재를 이렇게 엉터리로 소개해도 되느냐?” 자신의 세심한 관찰과 문화재에 대한 식견을 과시하고 싶은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우리가 전형적으로 알고 있는 독일군의 모습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통해서다. 영화 속에서 힘차게 달리는 전차의 모습과 단정한 군복, ‘SS’ 마크,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등으로 장식된 독일군의 모습은 그들 특유의 통일성을 잘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는 로마 제국을 동경했던 그들의 원망(願望)이 담긴 독수리 문장도 사용됐다.

군대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집단이 또 있을까? 로마의 군대는 매우 강렬한 시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기강과 신뢰를 표현하는 독수리가 그려진 군복과 군기는 병사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줬다. 근대기에는 우선 17세기 스페인 군대가 표준화된 군복과 무기를 도입해 적들에게 두려움을 줬다. 현대의 군대 또한 제복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육군·해군·공군·해병대가 모두 다르고, 장교와 사병이 다르다. 또 계급장·훈장·문장·깃발 등 다양한 표지와 상징을 활용하고 있다.

민원인이 독일군 마크와 구분하고 싶어 했던 ‘卍’은 산스크리트어(梵語)로 스바스티카(Swastika)다. 이것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卍’ 자로 불리게 됐지만, 본래 고대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에 널리 분포돼 있었으며 태양·불·생명을 뜻하는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십자가의 위장 형태로서 많은 동굴에 새겨지기도 했다. 불교에서는 불타의 가슴과 손·발에 나타난 길상인(吉祥印)이자 만다라(曼茶羅)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그들의 주신인 비슈누 가슴의 선모(旋毛)에서 나오는 빛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이 스바스티카를 고대 게르만인들은 행운의 상징으로 생각했으며 1920년 독일 나치는 자신들의 공식적인 기장으로 채택, ‘하켄크로이츠’라 이름 붙였다. 이후 붉은색 바탕에 하켄크로이츠가 들어간 흰색 원을 배치해 국기로 제정했다. 또한 친위대 깃발, 독일군의 완장이나 훈장 등에 널리 사용돼 지금은 스바스티카에서 종교적 상징보다는 나치 독일, 히틀러, 대학살이 먼저 연상된다. 즉,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나 스바스티카는 갈고리의 방향과 각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기원이나 의미는 같다. 하지만 하켄크로이츠는 이젠 나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완전히 굳어져 버렸고, 현재 독일에서는 이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전화했던 분이 ‘卍’ 자의 기원과 역사에 더 관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불교와 나치의 심벌을 명확히 구분해야 했다. 앞으로도 스바스티카는 불교의 ‘卍’ 자보다 나치와 히틀러의 악명만큼이나 하켄크로이츠로 기억되기 쉬울 것이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에 의해 기획된 하켄크로이츠는 심벌의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하켄크로이츠는 스바스티카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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