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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리포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새로운 국제질서 빗장 열다

입력 2019. 08. 04   14:43
업데이트 2019. 08. 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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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기획] 세계는 지금 무관리포트 <74>


다자주의서 국익 우선 양자주의로 가속화 
개별 국가 간 연합·정책공조 추구


보리스 존슨(오른쪽) 영국 신임 총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파스레인 해군기지를 방문, 군 관계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이날 해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안전장치(backstop)’는 쓸모가 없다. EU 탈퇴협정도 폐기해야 한다”면서 유럽연합(EU)과 새 브렉시트(Brexit) 합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오른쪽) 영국 신임 총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파스레인 해군기지를 방문, 군 관계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이날 해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안전장치(backstop)’는 쓸모가 없다. EU 탈퇴협정도 폐기해야 한다”면서 유럽연합(EU)과 새 브렉시트(Brexit) 합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연합뉴스


세계 역사에서 2016년은 자유주의 정치·경제 질서를 뒤흔든 두 사건이 발생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하나는 영국에서 발생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Brexit)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직 경력이 없는 사업가 출신 후보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비전을 제시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이다.

영국은 2016년 6월 23일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찬성 51.9%, 반대 48.1%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이후, 탈퇴 시 발생하는 아일랜드 국경 문제와 유럽 단일시장 접근 문제에 관한 협상안을 두고 격심한 내홍을 겪었다. 지난 6월 테리사 메이 총리가 혼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무조건 탈퇴를 약속한 보리스 존슨이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이로써 유럽연합과의 협상 결과에 상관없이, 탈퇴 시한으로 정한 오는 10월 31일 영국의 탈퇴는 기정사실화됐다. 영국은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한 지 46년 만에 단일 주권국가로 복귀하게 된다. 이는 19세기 유럽 대륙을 향한 영국의 외교방식이었던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ism)’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영국 국민의 브렉시트 선택이나 미국 국민의 트럼프 선택은 대다수 정치전문가와 여론조사 기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 원인으로 지난 40여 년간 자유주의 질서가 초래한 부작용에 대한 유권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지목됐다. 자유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정부 간섭 최소화를 지향하는 자유주의 정책 기조는 기업의 이윤 극대화 행위와 결합해 인적 자원을 포함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생산의 국제 분업화를 촉진했다.

1990년대 이래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공산권 붕괴에 따른 시장경제의 확산은 이 추세를 더욱 가속했다. 자유주의 정책들은 필연적으로 빈부 격차 확대, 이민자 증가, 안정적인 일자리 감소, 문화충돌, 테러 위협 점증 등 기존 공동체를 위협하는 부작용을 동반했다. 세계 분업체계를 장악한 거대 기업과 금융 기관들이 자유주의 질서의 최대 수혜자였으며 세계의 부(wealth)가 이들에게 집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단일시장 접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메이 총리를 비난했고, 무조건 탈퇴를 언급한 존슨이 총리에 선출되자마자 축하의 트윗을 날렸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유사한 성향만큼 두 국가의 관계가 친밀하게 유지될 것 같지는 않다. 영국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5년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시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참여를 결정했다. 존슨 총리는 중국 유학생을 더 받아들일 것이며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국가의 부를 증진하는 경제적 기회에 대해서는 동맹의 입장에 구속되지 않겠다는 자세다.


다른 한편 영국은 북한의 불법 환적 감시와 대중국 견제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2018년 영국 군함들이 영유권 분쟁 중인 파라셀 군도 인근 해역을 항해해 중국을 긴장시켰으며, 이후 동아시아 해역에서 미국·일본·호주 및 영연방 국가들과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 제도와 규범에 국가 정책이 구속됐던 다자주의(multilateralism) 경향이 쇠퇴하고 개별 국가 간 연합과 정책 공조를 추구하는 양자주의(bilateralism)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와 기후변화협약 등 다자간 협의체의 의결보다 강대국의 의사결정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토 분담금, 독일의 노드스트림-2 송유관 허용, 터키의 S-400 도입 등에서 나타났듯이 기존 안보협력체 내에서도 정체성, 비용 및 역할분담, 주권양도의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영속성을 부여해 국가주의나 중상주의의 부활로 단정하거나, 자유주의의 종식을 주장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여전히 국제기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G20 오사카 선언에서 보았듯이 다수의 국가는 대외정책의 명분으로 자유주의 가치와 규범에 의존하고 있다.

영국이 빗장을 열어젖힌 질서의 분위기에 화답하듯이 일본에서도 개헌을 화두로 전쟁 수행이 가능한 보통국가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외교가 다자주의에 방점을 뒀던 1990년대 국제공헌론은 과거의 추억이 됐고, 집단자위권이라는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밀착하면서도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으로 미래의 안보·경제적 이익을 위한 정책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국과 미국이 시행하는 대내외 정책의 결과가 자국 유권자들의 바람을 충족시킨다면 현재의 정책 기조는 새로운 규범으로 변환될 것이다. 지구촌의 다수 국가는 여기에 적응하며 생존과 번영의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브렉시트와 미국 우선주의가 몰고 올 파장을 주시하면서 국익 관점에 근거해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지닌 현실적·잠재적 능력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스스로 조정 및 통제가 가능한 영역과 거역할 수 없는 영역을 분간하고, 세계 질서의 향방을 파악하며 그 흐름에 편승해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


박 주 현 

해군대령 

前 주영국 국방무관


■ 무관노트


'자국 중심 국익 관점 더욱 강화 계기' 


근대 역사에서 영국의 정책 기조는 지구촌 강대국들 대외정책의 전조로 작용했다. 브렉시트는 자국 중심의 국익 관점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 일본의 행태에서 보듯이 과거처럼 강대국들이 우방국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국익을 배려하던 상황은 재연되기 어려울 듯하다. 미국과 동맹 밀착으로 유명한 일본은 미·중 무역전쟁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중국과의 자유무역 공조와 일대일로 참가를 추진하는가 하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안보 문제를 명분 삼아 반도체 주력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시행했다. 자유무역을 강조했던 오사카 G20 회의 직후 이러한 상식 밖의 행동을 취한 배경에는 자유주의 가치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믿음이 작용한 것 같다. 자신들의 빈약한 논리로도 국제사회의 비난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보편적 가치가 지닌 구속력이 그 정도로 쇠퇴해 가는 듯하다.

새로운 질서의 태동은 운신의 폭이 좁은 약소국들로 하여금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응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동북아에 국한된 한·미·일 안보 공조의 틀과 범지구적 안보 협력의 틀에서 일본이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 참가는 그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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