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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빈 종교와삶] 의미 있는 삶

기사입력 2019. 07. 30   14:22 최종수정 2019. 07. 30   14:25

최종빈 공군본부 군종실 교육담당·대위·목사

이런 제안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돈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살 수 있는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노인이 아직은 가진 것이 없는 젊은 청년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과 청년의 젊음을 맞바꾸자고 한다면? 아마 그 누구도 선뜻 이러한 제안에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삶은 게임처럼 리셋(RESET)되지 않고, 되돌이킬 수 없는 직선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실 우리는 모두 딱 한 번 사니까 말이죠!

저는 청년들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장대한 역사와 수많은 사람의 행렬 속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로 지금, 여기에서 딱 한 번 삽니다. 그만큼 오늘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단 한 번 사는 삶이니 정말 보람 있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좋아합니다. 정말 단 한 번뿐인 삶입니다. 그러니 더욱 잘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질문하게 됩니다. 그럼 무엇에서 한 번뿐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나요?

지금, 여기로 표현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삶의 의미가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에 나는 왜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어느 때 어느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사람은 괴로울 것이고 환경에 그저 끌려다닐 것입니다.

몇 해 전 종영했던 드라마 ‘정도전’의 주인공이 목에 핏발 세우며 내뱉었던 ‘밥버러지들!’로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다시 그때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이렇게 살 거야’와 같은 종류의 후회로 삶을 마치게 될 겁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미셸 드 몽테뉴는 자신의 저서 『수상록』에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빌려 질문에 답해 보자면 삶의 의미는 여러분의 예정된 죽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기와 방식은 달라도 사실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무제한이 아니라는, 매우 당연하지만 모두 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은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 유한성을 인식한 시각으로, 반드시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역으로 여기에 있는 삶을 바라보면 일상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비로소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채워갈지, 무엇이 가장 자신에게 중요한지 알아가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과, 50년 남은 것을 아는 사람, 5년 또는 1년 남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선택은 같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어떤 것이 더 영속적인지 일시적인지 아는 것은 사람의 삶 자체를 다르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한 번뿐인 삶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은 끝을 아는 것과 그 시각으로 오늘을 조명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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