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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8월1일] 2010년 핵실험 '비키니섬' 세계문화유산 선정

신인호

입력 2019. 07. 30   08:22
업데이트 2020. 07. 3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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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비키니 환초의 핵실험지. 사진 = 유네스코(whc.unesco.org)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비키니 환초의 핵실험지. 사진 = 유네스코(whc.unesco.org)


1940~50년대 미국의 핵무기 실험 장소로 유명한 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Bikini Atoll 環礁)가 2010년 8월 1일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유네스코는 이날 비키니환초의 핵 실험지(Bikini Atoll Nuclear Test Site)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면서 "비키니환초는 핵실험의 위력을 전하는 매우 중요한 증거"라며 "인류가 핵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비키니 환초는 하와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100㎞ 떨어진 지역에 1200개 이상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마셜제도(Marshall Islands, Republic of the Marshall Islands)에 속해 있다. 인구 약 7만 명의 작은 섬나라, 마셜제도는 19세기 말 독일 보호령이 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의 위임 통치를 받았으나 태평양전쟁 때 미국 해군이 점령했다. 마셜은 1978년 미크로네시아연맹에서 탈퇴하고 1979년 헌법 제정과 함께 자치정부를 발족시킨 데 이어 1982년 독립했다. 


비키니 환초는 마셜제도의 북부에 있는 23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환초이다. 랄리크 열도에 속하며, 북위 11도35분, 동경 165도25분에 위치한다. 면적은 594.1㎡.


미국은 비키니환초에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총 23차례, 비키니 환초에서 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에니웨톡(Eniwetok) 환초에서도 1958년까지 총 44차례 등 마셜제도 에서 총 67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벌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6년 7월 1일,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모두 비키니 섬에 집중됐다. 공개 핵실험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수영복 ‘비키니’는 이 실험 후 며칠 뒤에 프랑스 패션쇼에서 등장했다. 1954년 3월에는 수소폭탄 실험을 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1946년 핵폭탄 실험과 비키니')


미국은 핵실험에 앞서 1946년 3월 비키니환초에 거주하는 주민 1000여 명을 근처의 롱겔라프 환초((Rongelap Atoll)로 이주시켰다. 당시 미국은 주민들에게 핵실험이 끝나면 곧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실현되지는 못했다.

미국은 1967년부터 비키니 섬 주민이 복귀할 가능성을 연구하기 시작해 그후 방사선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9년에 주민들이 비키니 섬으로 되돌아가도 괜찮다고 허가를 하고, 1970년대부터 계속해서 농작물 생산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은 사람이 오래도록 살 정도로 호전되지 않았다. 세슘이라는 방사능 물질이 위험할 정도로 증가했고, 환초 내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음식물을 섭취한 주민들이 높은 레벨의 방사능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1978년에 다시 인근 환초로 이주해야 했다.

최근의 연구조사로서, 2015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은 마셜제도의 방사선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조사 연구해보았다. 핵실험 후 철저한 정화작업을 실시했던 에니웨톡 환초는 감마선 수치가 7.6밀리렘(mrem), 롱겔라프는 19.8밀리렘으로 확인됐다. 이는 안전기준보다 낮았다. 하지만 비키니 환초는 184밀리렘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사람이 거주할 만한 환경이 못되는 것이었다.


세계문화유산 선정 당시 비키니 환초의 모습들. 사진 = 유네스코(whc.unesco.org)
세계문화유산 선정 당시 비키니 환초의 모습들. 사진 = 유네스코(whc.unesco.org)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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