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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성숙한 요정이 출몰하는...이 클럽, 가고 싶다!

기사입력 2019. 07. 25   16:04 최종수정 2019. 07. 25   16:08

<52> 나이 먹은 요정들은 솔직해서 더 아름답다 핑클의 캠핑클럽


JTBC ‘캠핑클럽’은 1세대 걸그룹 ‘핑클’이 21주년 기념일에 다시 만나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여행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다. 첫 회에 종편 예능치고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4%대를 달성하더니 계속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동영상 클립들에 대한 관심도 폭발하고 있어서 관련 동영상이 10일 만에 1000만 뷰를 돌파하는 등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번은 단연 돋보이는 기획이다. 그 중심에 이제는 40대가 된 요정 ‘핑클’이 있다.
핑클은 ‘SES’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원조 걸그룹이었지만, 다른 그룹들과 달리 멤버의 탈퇴나 교체, 공식적 해체도 해본 적 없는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은 2002년 6월 이후 개인 활동에 치중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이 때문에 팬클럽과 브랜드 파워를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고, 완전체 활동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JTBC ‘캠핑클럽’

개인 활동을 통해 각자 성공했기에 2005년 사실상 마지막 앨범인 디지털 싱글 발매 이후에는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이 없었다. 예능의 마지막 완전체 출연이 2005년 1월이었다고 하니, 사실상 14년 만에 완전체가 예능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기획은 성사시키기만 하면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기획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전설이 다시 만나 변하지 않는 전설을 다시 쓴다는 기획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것은 이미 귀환을 감행한 1990년대 아이돌들이 도전했고 실패했던 바 있다. 따라서 그런 기획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은 ‘달라진 핑클’을 보여준다는 데 있었는데 그것을 성공시킨 것이다.

제작진이 ‘캠핑’이란 여행 방식을 선택했던 것은, 달라진 핑클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속속들이 보여주려는 의도다. 캠핑은 모든 문제를 멤버들이 제작진의 개입 없이 해결해야 하는, 일상의 민낯과 관계의 민낯을 다 드러낼 수밖에 없는, 최고 수위의 리얼리티가 가능한 방식이다. 시청자들은 코앞에서 이제 중년이 된 요정들의 코골이까지 관찰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시청자들은 사람 사는 게 결국 다 똑같다는 평범한 발견과 만날 것이며,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며 비슷한 고민을 견뎌낸 성숙한 요정들로부터 차원이 다른 위로와 치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JTBC ‘캠핑클럽’

게다가 캠핑이란 여행 방식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들이 마구 발생할 수 있으며, 멤버 누구도 캠핑에 익숙하지 않기에 그만큼 큰 재미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기획이다. 핑클은 자연으로 들어가 좌충우돌하면서 생존해 내고, 시청자들은 그들 옆자리에서 함께 좌충우돌하면서 현실에서의 생존하기를 관찰한다. 그렇게 일체가 된 핑클과 시청자들은 함께 바람을 느끼고 물소리를 들으며 공존하게 된다. 그 순간 문득 다가온 수많은 별이나 압도적인 풍광의 아름다움은 영혼을 깨끗게 하는 축복이 된다.

제작진의 가장 탁월한 선택 중 하나는 이들이 생존해 내는 자연이, 해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숨어있는 비경(秘境)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손쉽게 협찬을 얻으려고 외국의 명소를 소개하느라 정신없지만, 캠핑카로 떠난다는 설정 때문이라고 해도 전국 방방곡곡의 숨은 캠핑지를 찾아 떠난다는 설정은, 곧 내 안의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아간다는 의미를 획득한다. 그것은 성숙한 핑클의 고백들과 함께 강력한 성찰의 힘을 발휘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여행은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여행이다. 하지만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왔거나 오히려 퇴보해서 돌아온다면 여행의 시간과 노력이 헛된 수고가 되고 만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 강력한 미해결 과제가 있다면, 그래서 여행 중에 그 과제를 해결해 내거나 해결할 실마리를 찾게 된다면, 그 여행은 새로운 인생을 가능케 하는 리부팅의 의미를 갖는다. 핑클은 14년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완전체 공연 도전이란 미해결 과제를 안고 이번 여행을 시작했다. 그래서 1회차에 보여준 옥주현의 눈물이, 2회차에 이뤄진 이진과 이효리의 새벽 데이트가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많은 중년의 여성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캠핑 여행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동창들 혹은 동료들, 어쩌면 관계의 회복이 필요한 동시대를 살아온 어떤 다양한 관계들과 미해결 과제를 품은 상태에서 서로의 민낯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돌리거나 문자를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론 하찮은 예능프로그램 하나가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최근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일본 불매 운동’까지 캠핑클럽의 성공을 돕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대신할 만한 ‘현명한 대체재’를 찾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훌륭한 ‘대체재 찾기’ 정보 쇼가 됐다. 선한 의도와 성실한 노력에는 마땅히 선물이 따라오는 법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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