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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는 길은 “케이팝 산업이 가지 못한 길”

기사입력 2019. 07. 18   17:07 최종수정 2019. 07. 18   17:18

<51> 아이유, 아티스트로 아름다운 실력이 스타를 만든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무조건 챙겨 봐야겠다고 1회부터 본방송을 사수했다. 극본을 홍자매가 썼다는 사실이나 판타지 드라마 전문이 돼버린 오충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은 꼭 알 필요도 없었다. 아이유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거듭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후 아이유가 출연한 모든 드라마를 보기로 했기 때문에, 순전히 팬심으로 선택하게 된 ‘본방 사수’였던 것이다. 

 
1회를 보고 나서 시청률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호텔 델루나’는 아름다웠다. 아니 호텔 델루나의 사장 장만월이, 아니 그 역할을 소름 끼치도록 제대로 해낸 아이유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이유는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서 가장 확실한 블루칩이다. 지난해 12월에 발매된 정규 4집 ‘팔레트’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 수 1억 뷰를 달성한 것에 이어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나온 싱글 ‘삐삐’ 뮤직비디오 역시 17일 9시 기준 유튜브 조회 수 1억19만 건을 넘어섰다. 이 기록은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트와이스 등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들에서나 찾을 수 있는 기록이다. 이미 데뷔 11년 차가 되는 솔로 여자 가수로서는 아이유가 유일하다.

아이유는 콘서트에서도 ‘넘사벽’이다. 리모델링 이후엔 1만2000석 규모가 된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이틀 동안 만석으로 채울 수 있는 여자 솔로 가수는 현재로는 아이유가 유일하다. 그의 팬덤은 세계적이어서 10주년 기념 콘서트 장소로 홍콩·싱가포르·태국 등이 포함돼 있었는데, 모두 티켓을 매진시켰다.

‘호텔 델루나’에 나온 아이유.  tvN 제공

배우로서의 아이유 역시 비슷한 연령대에서는 최고의 실력과 티켓 파워를 겸비한 캐스팅 1순위의 아티스트다. 이미 티켓 파워에서는 ‘프로듀사’에서 최고 수준임을 입증했지만, 연기력에서는 구설이 끊이지 않았는데,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영화 ‘페르소나’를 통해 아이유는 비슷한 연령대에서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실력을 보여줬다. 이제는 아예 아이유의 출연을 전제로 시나리오를 쓰는 프로젝트가 나타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호텔 델루나’의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아이유가 출연을 고사했을 때 대안이 없어 기획을 접으려 했다고 털어놓았는데, 그것이 홍보용 멘트가 아니었음을 아이유는 1, 2회 출연만으로 입증해 냈다.

사실 아이유를 따라다니는 구설들은 그의 실력이나 가치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가 아티스트가 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생겨난, 어찌 보면 케이팝(K-Pop) 산업의 급성장이 만들어낸 적폐들이 관행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아티스트에게 자행한 복수극에 불과하다.

아이유의 데뷔곡 ‘미아’는 아이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무한한 잠재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명곡이다. 하지만 K-Pop 산업 구조는 15살짜리의 보편적이면서 특별한 자아 탐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춘기에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통을 진지하게 털어놓기보다는, 국민 여동생 가면을 쓰고서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 하며 애교 부리기를 원했다. 그에게 노래하는 인형이 되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아이유는 K-Pop 산업의 강요를 저버릴 수 없었고, 결국 아이돌 댄스가수 콘셉트로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했다. 그 후 군대에서부터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세 번째 미니앨범 ‘좋은 날’로 정상을 차지한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 포스터.

K-Pop 산업의 블루칩이 된 후 아이유는 본격적으로 자기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연기에 도전하는 것도 그 여행의 미션 중 하나였을 것이지만, 더 집중적으로 도전했던 것은 가사와 곡을 직접 쓰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적 색깔에 맞게 프로듀싱까지 하려는 도전이었다. 이런 노력은 점차 그의 앨범에서 아이돌의 색깔이 빠져나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처음엔 이런 노력을 아이돌의 차별화 전략 정도로 생각했던 팬들은 마냥 기특하게 여겼다. 어쩜 국민 여동생이 다양한 재주를 갖게 되는 정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의 가사엔 깊은 성찰이, 그의 음악엔 성숙한 인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가 고교 졸업 후 대학 특례입학 제안을 거부하며 남긴 명언, “대학은 노력한 이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대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는 입학하지 않겠다”는 말은 그가 K-Pop 산업의 전형적 브랜드 마케팅 작업을 거부한 것인데, 이 선택 이후로 그에게 배척자(안티)들이 생성되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전곡을 프로듀싱하며 아티스트로 독립을 선언한 ‘Chat-Shire’란 앨범은 말도 안 되는 소아성애 논란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 끔찍한 성장통을 딛고 아이유는 생애 최고의 성적을 낸 정규 4집 앨범 ‘팔레트’로 자신이 인형이 아니라 아티스트임을 만방에 선언했다. 뒤이어 기획단계에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은 ‘나의 아저씨’까지 성공시키며 안티들을 굴복시켰다. 이후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들의 성공은 그에 대한 공격들을 모두 무력화한 통쾌한 한 방이었다. 그의 성장을 막으려 하던 K-Pop 산업의 적폐들은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고는 좌절했다. 아름다운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아이유의 노력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 그러니 관행이나 운이 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실력만이 스타를 만든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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