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 07. 17 17:04 최종수정 2019. 07. 17 17:08
25 점묘파 - 분할주의, 사회과학, 가현운동, 대비, 광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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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시대는 근대로 접어든 유럽의 변화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산업혁명과 시민계급의 대두 등 많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2차 산업혁명의 결과 강철 제련 기술과 전기가 일상화되면서 과학은 근대 사회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됐다.
과학은 도시 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생활 수준을 끌어올려 주는 기회를 만들었고 새로운 소비자들은 산업의 팽창과 통합을 유도했으며 기업은 능률을 추구했다. 이렇게 모든 분야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레닌의 혁명이론조차 사회과학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과학 분야에서는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의 박테리아, 퀴리 부인의 라듐, 뢴트겐의 X선 발견, 다윈의 진화론, 파블로프의 조건반사가 등장했다. 철학에서는 헤겔과 니체, 프로이트, 쇼펜하우어가 새로운 관점으로 인간과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 모든 분야가 광의의 의미에서 과학으로 인식되던 시기다.
삼원색의 순도·밝기 유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색채는 과학이었다. 태양 빛에 드러나는 자연은 삼원색이나 1차 혼합색으로 가득 찬 공기 같은 것이었다.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원색으로 분해되고 이들은 다시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삼원색으로 환원되며 이 삼원색이야말로 모든 색의 원형이다. 그리고 이를 섞으면 섞을수록 밝기를 잃고 탁해져 종국에는 검정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점묘파들은 삼원색의 순도와 밝기를 유지하기 위해 중간색이 필요할 경우 색을 팔레트에서 개어 만들기보다 원색과 원색을 대비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들 그림의 대상은 모두 미세하게 작은 점으로 분할됐고, 분할된 점마다 원색이 번갈아가며 칠해졌다. 오늘날 디지털 사진처럼 픽셀로 나뉘고 픽셀마다 각각의 색이 칠해져 눈을 통해서 혼합되는 방식은 점묘파에서 빌려 온 것과 같다.
이런 기법은 영국의 컨스터블이나 프랑스의 들라크루아도 사용했지만 이를 주로 사용한 이는 모네나 피사로였다. 그리고 쇠라는 이를 체계화했고 시냐크는 『외젠 들라크루아로부터 신인상주의까지』(d‘Eugene Delacroix au Neo-Impressionnisme, 1899)라는 저서를 통해 이를 널리 보급했다.
반 고흐·마티스·피카소 등에게 영향
이들의 미학적 관심은 과학적인 것과 맥을 같이하거나 그것보다 더 우월했다. 결국 이들에게 모더니즘은 과학 정신이자 과학이었다.
과학적이며 새로운 회화적 방법론이었던 점묘파는 인상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혁신적인 방법론으로 인상파의 장로라고 불리는 피사로는 물론 마네·쇠라·시냐크와 크로스(Henri Edmond Cross, 1856~1910), 페티장(Hippolyte Petitjean, 1854~1929) 등이 점묘파 화가로 활약했다. 이들은 반 고흐와 마티스(Henri Matisse, 1869~ 1954),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사진=필자 제공
<정준모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