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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이야기] 첨단 기술 집약 한국형 구축함 1996년 첫 진수

윤병노 기사입력 2019. 07. 12   16:14 최종수정 2019. 07. 14   09:52

<51>광개토대왕급 구축함

1986년 한국형 구축함 사업단 발족 

플랫폼-국내 설계, 핵심체계-해외 도입
선도함과 함께 2·3번함 건조 착수


독도 근해를 항해하고 있는 광개토대왕함. 사진 = 해군

우리 해군은 1963년 5월 16일 미국에서 플레처급(Fletcher Class) 구축함을 도입하면서 꿈에 그리던 구축함(DD·Destroyer)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후 1981년까지 12척의 구축함을 인수해 주력함으로 운용했다. 이 구축함들은 1940년대 건조된 것들로 미국의 함대 개조 및 현대화(FRAM·Fleet Rehabilitation and Modernization) 프로그램에 따라 성능을 업그레이드했지만 선체 노후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에 해군은 198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구축함 건조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한국형 구축함 사업(KDX·Korean Destroyer eXperimental)’이 탄생했다.


한국형 구축함 사업 첫 열매 ‘광개토대왕함’

해군은 울산급 호위함(FF·Frigate)을 건조하면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대 초부터 새로운 함형, 즉 구축함 건조를 위한 기초연구 및 자료수집에 돌입하고, 이를 제2차 전력증강사업(1982~1986)에 반영했다. 그 결과 1985년 KDX로 명명된 구축함 국내 건조 사업의 추진이 결정됐으며, 1986년 대우조선해양이 시제 업체로 선정됐다. 이와 함께 같은 해 12월 22일에는 이 사업을 관리할 ‘한국형구축함사업단’이 발족했다.

그러나 첨단 기술이 집약된 구축함은 호위함과 ‘급’이 달랐다. 순수 국내 기술만으로는 건조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해군은 플랫폼(platform)은 국내에서 설계하고, 핵심체계는 해외에서 도입하기로 했다. 대형 플랫폼의 개념설계와 해외기술 검토·조합은 쉽게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데 1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1996년 10월 28일 국내에서 건조한 한국형 구축함 1번함(DDH-Ⅰ·Destroyer Helicopter)이 진수됐다. 해군은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해 함명을 ‘광개토대왕’으로 부여했다. 미국에서 도입한 구축함을 대체하기 위해 시작한 한국형 구축함 사업의 첫 열매를 수확하는 순간이었다.

3200톤급의 광개토대왕함은 전장 135.4m, 전폭 14.2m 규모에 최대 속력은 30노트(시속 55.56㎞)다. 5인치 주포 1문과 근접방어무기체계(CIWS·Closed In Weapon System) 2문, 대함유도탄 하푼(Harpoon), 대함유도탄기만체계(DAGAIE·Device Automatic Gurre Anti-missile Infrared Electromagnetic), 어뢰음향대항체계(TACM·Torpedo Acoustic Counter Measure)를 장착했다. 헬기 2대를 탑재할 수 있는 격납고도 구비했다.

특히 현대화된 전투체계와 대공레이더, 대공유도탄(Sea Sparrow) 등을 갖춰 ‘대공방어’를 가능케 했다. 또 우리 해군 함정 최초로 수직발사대(VLS·Vertical Launching System)를 설치했다. 수직발사대는 대공유도탄을 보관한 상태에서 발사해 다수의 목표물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서해의 믿음직한 지킴이 을지문덕함. 사진 = 해군


‘대양해군’ 상징적 존재…해역함대 기함

광개토대왕함 건조 이전까지 우리 해군의 함정사업 절차는 선도함을 건조한 뒤 시험평가를 거쳐 작전운용 성능이 확인되면 후속함 건조에 착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로 인해 후속함이 작전배치될 때까지 길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무기체계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선진국에서는 함정을 ‘묶음 단위’ 개념으로 설계해 연차적으로 건조하는 시스템이 정착된 지 오래였다.

해군은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93년 ‘함정 건조 업무 지침’을 개정했다. 기본설계 자료로만 시험평가를 실시한 후 바로 후속함 건조에 착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이 한국형 구축함 사업이다.

해군은 선도함과 함께 후속함 건조에 착수해 2·3번함을 차례로 진수·취역했다. 을지문덕함과 양만춘함이다.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은 1995년 ‘대양해군’을 기치로 내걸었던 우리 해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광개토대왕함은 동해에서, 을지문덕함은 서해에서, 양만춘함은 남해와 동해에서 주로 작전을 펼치며 해역함대 기함(旗艦·지휘함)으로 활약하고 있다.


남해와 동해에서 주로 작전을 펼치며 해역함대 기함(旗艦·지휘함)으로 활약하고 있는 양만춘함. 사진 = 해군


베트남전 이후 최초로 해외 작전 수행

우리 해군은 1998년 10월 13일 부산 앞바다에서 창군 최초로 국제관함식을 개최했다. 해상사열의 좌승함(座乘艦)은 광개토대왕함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광개토대왕함에 올라 외국 함정들을 사열했다.

2008년 부산 앞바다와 2018년 제주 앞바다에서 열린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도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은 어김없이 참가했다.

광개토대왕함은 베트남전쟁 이후 처음으로 해외에서 작전을 수행한 함정이다. 2004년 우리나라는 이라크에 자이툰부대를 파병했다. 이때 군수물자 수송에 2만5000톤급 민간 상선 2척이 동원됐다. 해군은 이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광개토대왕함을 투입했다. 광개토대왕함은 약 1만2000㎞를 항해하며 상선을 쿠웨이트까지 안전하게 호송했다. 아라비아해와 믈라카 해협에서 해적의 위협을 이겨내고 거둔 성과였다.

광개토대왕급은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DDH-Ⅱ)이 건조되기 전까지 해군사관생도 순항훈련의 주력 함정이었다. 광개토대왕함은 2000·2002년 미주와 중남미 구간을, 을지문덕함은 2001년 아시아 구간을, 양만춘함은 2003·2004·2010년 태평양권 구간을 항해하며 사관생도 함정실습에 기여했다.

재해·재난 구조작전에서도 임무 수행 능력을 입증했다. 광개토대왕함은 2004년 11월 러시아 국적 원양어선 알마츠(Almz)호의 긴급 조난 신호를 수신한 뒤 현장 구조에 참여했고, 70명을 구조했다.


글=윤병노 기자 

사진=해군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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