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게임 시즌2

막장 행성서 풀어낸 총에 관한 오만 가지 상상력

입력 2019. 07. 11   17:03
업데이트 2019. 07. 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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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보더랜드


폐허처럼 남은 행성서 펼치는 슈팅 액션 게임
무기에 의해 성격 정의받는 캐릭터에다
수천 종의 총기, 제각각 판타지적 속성 부여
어떤 기업이 만들었는가에 따라 특징 구분
총기 본연의 느낌 살리고자 ‘타격감’ 공들여


게임 속 총기 제조사 ‘하이페리온’은 현대적인 총기 디자인을 콘셉트로 한다. 세부 작동 구조도까지 존재할 정도로 ‘보더랜드’의 총기 판타지는 섬세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게임 속 총기 제조사 ‘하이페리온’은 현대적인 총기 디자인을 콘셉트로 한다. 세부 작동 구조도까지 존재할 정도로 ‘보더랜드’의 총기 판타지는 섬세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보더랜드’ 시리즈는 황당한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지만, 꽤나 사실적인 타격감을 갖춘 총기 액션 게임이기도 하다.  필자 제공
‘보더랜드’ 시리즈는 황당한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지만, 꽤나 사실적인 타격감을 갖춘 총기 액션 게임이기도 하다. 필자 제공

현실을 다루는 게임들도 호평받지만, 현실처럼 완벽하게 돌아가면서도 동시에 그 기반이 완전하게 판타지를 딛고 서 있는 게임들이야말로 상상력의 매체인 디지털게임에서도 빛나는 작품들인 경우가 적지 않다. 훌륭한 판타지는 결코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공상이 아니라 ‘무척이나 그럴듯한’ 상상을 다루기 때문이다.

보통 판타지라고 하면 중세풍의 무기와 갑옷, 의상과 건축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런 보편적인 상상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게임들도 있다. 어떤 게임은 화약 무기와 기계류, 외계 행성과 미래 기술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말도 안되는 상상력으로 조금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세계관을 뽐내기도 한다. 2009년부터 롤플레잉 슈팅 게임의 한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보더랜드’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기괴한 세기말 SF 세계관을 누비는 슈팅 액션 게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거친 외곽선, 기괴하게 과장된 등장인물들의 신체뿐 아니라 ‘보더랜드’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무척 과장된 세계관 위에 서 있다. 서부 개척시대를 모티프로 삼은 듯한 게임의 배경은 미지의 머나먼 우주 어딘가의 작은 행성 판도라로, 행성에 묻힌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을 노리고 수많은 기업이 채굴사업을 벌였으나 채산성이 맞지 않자 떠나버려 폐허처럼 남겨진 곳이다. 게임의 제목이 변방지대를 상징하는 ‘보더랜드’인 것은 버려진 곳의 무법과 광기가 게임의 분위기 중심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공간에 떨어진 플레이어와 동료들, 그리고 주요 적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빠진 듯한 기괴함을 자랑한다. 신체 곳곳을 거친 솜씨의 기계로 대체한 사람들, 팔이 네 개 달린 빙하의 야수들이 게임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적들은 언제나 무모하고 위험하게 플레이어를 향해 오지만, 막상 그 화력은 무시 못할 수준이라 손쉬운 컨트롤로 걷어낼 수 없다. 어딘가 모르게 넋이 나간 듯한 기괴한 판타지는 암울한 게임 속 세계관 설정과 엮이면서 일종의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느낌은 몇 년 전 리메이크되면서 다시금 세기말 분위기의 정석으로 자리를 굳건히 한 영화 ‘매드맥스’의 영향권 안에 있다. 멸망해버린 문명, 황무지가 된 세계 위에 다시 살아가는 ‘매드맥스’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기괴한 심리와 독특하고 거친 의상, 디자인들은 ‘보더랜드’에서 같은 의미지만 SF라는 새 형식 안에서 다시금 태어난다. 버려진 세계의 황량함과 그 속에서 뭔가 넋이 나간 듯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기괴함은 ‘보더랜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총기에 관한 무한한 상상력의 결정판

수없이 쏟아지는 적들 사이를 혈혈단신으로 뚫고 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 캐릭터는 캐릭터 그 자체보다 캐릭터의 무기와 활용에 의해 정의된다. ‘보더랜드’에 등장하는 플레이어 캐릭터는 각각 근접격투, 권총류, 중화기 혹은 스나이퍼 라이플 같은 특정 전투방식에 조금씩 특화된 차별점을 갖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총, 다시 말해 무기에 의해 그 성격을 부여받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보더랜드’에서 총기의 의미는 사실상 캐릭터 그 자체라고 봐도 될 만큼 막중하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거의 수천 종에 달하는 총기는 정말 제각각의 모습을 자랑한다. 권총류만 해도 한 방이 강력한 리볼버, 자동연사가 핵심인 피스톨, 거기에 장거리용 줌을 달고 있거나 아예 유탄 같은 탄환이 나가는 권총까지 온갖 유형들이 쏟아진다. 권총, 기관단총, 돌격소총, 저격소총, 샷건과 로켓 런처 등 수많은 종류의 무기들이 게임 속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각 무기의 차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알고 있는 기초적인 차이 이상의 놀라움을 선사한다.

총기의 다양함은 발사 시의 반동, 연사 속도, 조준경 확대 거리와 같은 일반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각각의 총기는 SF게임답게 서로 다른 속성이 부여돼 있다. 생체 적에게 적중시키면 적을 불붙게 하는 화염 속성, 중장갑 적들에게 맞히면 장갑이 부식되는 산성 속성, 강력한 감전을 만드는 전기 속성은 기본이고, 각 총기의 탄환 유형까지도 달라진다. 빠른 탄속으로 조준점에 꽂히는 총이 있는가 하면, 같은 돌격소총이라도 탄환이 도착하면 폭발하는 대신 연사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 탄창이 빌 때 재장전하는 대신 총을 적에게 던져버리면 총이 수류탄처럼 폭발하는 콘셉트의 총까지도 등장하며 게임은 정신 나간 SF 기반으로 총기에 대해 가져볼 수 있는 온갖 판타지를 펼쳐놓는다.

이런 총기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총기의 숫자만 늘이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애초에 자원개발 기업들에 의해 시작된 막장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보더랜드’에 등장하는 총기들은 모두 어느 기업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명확히 구분하며 그 특징을 기업 기준으로도 정렬시킨다. 명중률 최우선의 제작사 ‘하이페리온’, 서부개척시대 총기의 콘셉트를 유지하는 ‘제이콥’, 러시아제 무기 느낌을 물씬 풍기는 ‘블라도프’ 등 수많은 제작사의 고유 콘셉트들이 상상력과 결합하며 기발한 모습들을 선보인다. 발사 탄환의 속성, 기본적인 총기 종류에 제조사별 특징까지 결합하면서 ‘보더랜드’의 총기는 온갖 종류의 총기에 관한 상상들을 게임 속에서나마 만져볼 수 있는, 일종의 ‘총기 판타지’에 가까운 모습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수많은 총기 판타지 속에서도 게임은 총기 본연의 느낌만큼은 살리고자 애쓴다. 이른바 ‘타격감’이라고 불리는 감각에 대해서는 어떤 총기라도 쉽사리 낮은 평가를 주기 어렵게 등장한다. 한 방이 묵직한 총은 그만큼 웅장한 격발음과 반동으로, 연사가 중심인 총은 마치 실제 잡은 마우스에 반동이 오는 듯한 소리와 화면 연출을 뿜어낸다.

현실에서 총기는 언제나 군인의 제1호 재산목록이며 동시에 가장 주의해서 다뤄야 할 물건이다.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무기이니만큼 그 조심스러움이야 두말할 나위 없겠지만, 또 한편으로 총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가상세계에서나마 그 총기에 대한 무한한 판타지를 즐겨볼 수 있는 기회로서 ‘보더랜드’ 시리즈는 의미 깊을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 신작 제3편의 출시가 예정된 상태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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