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무엇을 그리는가 보다 어떻게 그리는가, 그것이 더 중요해졌다

입력 2019. 07. 10   16:12
업데이트 2019. 07. 1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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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인상주의: 임패스토, 무명예술가협회, 스트로크, 스냅 샷, 동시대비, 보색대비, 우키요에


모더니즘 시작 알린 인상파, ‘재현’ 굴레 벗고 자연과 현실 색채·형태로 재해석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프티 부르주아’
그림 주인공이자 소비자로 등장
화가들, 실내 벗어나 야외에서 작업
빛·주변 색에 의해 변하는 색채 포착 
 
메리 커셋의 작품 ‘파란색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어린 소녀’.  필자 제공
메리 커셋의 작품 ‘파란색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어린 소녀’. 필자 제공
모네의 작품 ‘인상-해돋이’.
모네의 작품 ‘인상-해돋이’.
마네의 작품 ‘장 밥티스트 포레의 초상’.
마네의 작품 ‘장 밥티스트 포레의 초상’.

미술관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다. 그래서 원작은 하나도 없이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된 의사(擬似) 인상주의 전시가 관객들을 현혹하기도 하지만 실은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이렇게 만인의 사랑을 받아온 인상주의는 지난 150년간 미술계를 지배했고 새로운 미술운동을 촉발하는 공이 역할과 근대의 열쇠 역할을 했다. 
 
다양한 작가들이 각자의 양식·독창성과 함께 하나의 운동을 벌인 인상주의는 187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전통적인 신고전주의의 소재와 엄격한 규칙을 거부했다. 또 거대 서사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고 그 느낌과 인상을 사실적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아틀리에를 벗어나 야외로 나가 풍경을 그리면서 빛의 순간적인 효과를 포착했다. 빛과 색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빛을 표현하고자 붓놀림도 빨라졌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작품이 한 아카데믹 살롱에서 거부당하자 이들은 자체적으로 독립적인 전시를 열었다. 1874년 4월 5일부터 5월 15일까지 나다르 사진관에서 열린 ‘제1회 화가, 조각가, 판화가 무명예술가협회’전이 그것이다.

사진작가 나다르(1820~1910)의 스튜디오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3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 전시는 이후 1886년까지 12년 동안 8회에 걸쳐 열리며 인상주의의 존재와 미학을 알렸다.

제1회 전시에 출품된 모네(1840~1926)의 ‘인상-해돋이’(1872)를 본 비평가 루이 르로이(1812~1885)는 “인상, 그것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인상이 매우 깊었기 때문에 그곳에 인상이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제멋대로, 아주 쉽게 그린 그림은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벽지의 무늬를 위한 예비 스케치가 차라리 이 작품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빈정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이들은 인상파라고 불렸다.

미술사에서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인상파는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미술은 이제 ‘재현’이라는 굴레를 벗고 자연과 현실을 색채와 형태로 재해석한 조형미를 추구했다. 즉 ‘무엇을 그리는가’보다는 ‘어떻게 그리는가’가 중요했다. 물론 이런 방식은 당시 낯설고 기이해 저항감을 불러일으켰지만 20세기 추상화도 이런 기틀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상파는 산업혁명과 그에 따른 산업화 과정에서 신분 질서의 붕괴, 계급의 혁파, 참정권의 확대, 미국의 독립 등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큰 변화에서 기인했다. 산업혁명은 여유 있는 프티 부르주아(Petit bourgeoisie)를 낳았고, 이들이 새로운 소비자가 돼 인상파의 작품을 구입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일찍 적응했다. 이들은 시대적 변화라는 파도에 조금 무모해 보일지라도 작은 배를 띄워 항해를 시작했다. 이런 거대한 시대적인 변화는 이들의 모험심을 일깨웠다.

먼저, 카메라가 발명되자 회화는 ‘시각적 기록 수단’이라는 유일성을 상실했다. 둘째로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자연에 고유색이 있다”는 믿음이 깨졌다. 슈브럴(1786~1889)은 『색의 조화와 대비의 법칙』이라는 책을 내면서 새로운 색채이론을 펼쳤는데, 동시대비(Simultaneous Contrast)와 보색대비(Complementary contrast)를 통해 색채는 주변의 색에 의해 변화한다는 사실을 화가들에게 알려줬다. 셋째로 튜브 물감과 야외용 이젤의 발명은 실내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작업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넷째로 일본의 다색 판화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입체감이나 공간감이 아닌 면과 색채만으로 충분히 대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입체감이라는 깊이보다는 표면, 즉 평면성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또 더는 신화나 종교적 내용이 아닌 현실에서 그림의 소재를 택하면서 하느님과 신 또는 영웅들의 무용담이 아닌 주변 보통 사람들이 그림의 주제가 됐다.

도시는 급격히 발전해 새로운 자연,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 됐다. 인상주의 그림의 대부분은 교양 있는 중산층의 밝고 행복한 삶이 주제다. 풍경도 마찬가지다. 이제 역사의 주체이자 생산과 소비의 당사자인 신흥 부르주아, 즉 중산층의 새롭고 풍요로운 삶을 그리면서 전제주의 시절 억압받고 착취당했던 시민들이 그림의 주인공인 동시에 소비자가 됐다. 이들 사이에는 뛰어난 눈과 상인의 감각을 갖춘 폴 뒤랑 루엘(1831~1922), 앙브루아즈 볼라르(1866~1939)와 같은 화상들과 제빵사 외젠 뮤러(1841~1906), 기업가 앙리 루아르트(1833~1912), 바리톤 가수 장 밥티스트 포레(1830~1914), 백화점 주인 어네스트 오셰데(1837~1891) 같은 컬렉터들이 있었다. 이런 원군 덕택에 인상주의는 더 깊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들의 그림은 ‘두껍게 물감을 바르는 스트로크’(임패스토)와 독특한 색채, 일상적인 주제, 빛의 초점과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소재 등이 특징이다. 특히 일시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캔버스에서 서로 다른 톤의 색상이 상호 작용을 통해 눈을 통해 혼합되도록 순색을 사용했다. 어두웠던 배경은 밝게 처리했다. 특히 시시각각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발견했다. 모네는 “내게 풍경은 매 순간 그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의 주위에 있는 빛과 공기는 끊임없이 변한다. 내게 진정한 가치로 다가오는 것은 오직 그 주변 분위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모네의 영향으로 시간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그리는 연작이 등장해 인상파의 또 다른 특징이 됐다.

인상주의 작가들은 정물화·풍경은 물론 친구와 가족의 초상, 현대화되는 도시 등 새로운 소재에 몰두했다. 또 사진의 전통적인 스냅 샷처럼 비대칭적인 구도를 이용,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을 즐겼다.

인상주의 작가들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빛이 그 원인이며 그 결과는 색채라는 사실을 실천에 옮겼다. 이렇게 꾸준하게 보이는 것들의 순간순간을 화폭에 담았던 인상주의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초기 인상주의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화가로 활동한 프레데리크 바지유(1841~1870), 다른 이들보다 어려서 1870년대 중반에야 인상파에 합류한 귀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 사실주의적인 시각으로 인물의 동작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했던 에드가 드가(1834~1917), 인상파 화가이기를 부정했던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 인상파의 미학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했던 클로드 모네, ‘인상파의 장로’ 카미유 피사로(1830~ 1903), 행복한 사람들을 그렸던 행복한 화가 르누아르(1841~1919), 시슬리(1839~1899),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중후하고 야생적인 회화의 아르망 기요맹(1841~1927), 그리고 인상파에서 출발해서 독자적인 회화를 구축한 세잔(1839~1906)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인상주의가 근대적임을 입증하듯 여성 화가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자유롭고 경쾌한 필치로 가정의 안팎 풍경이나 정물화를 그린 베르트 모리조(1841~1895), 미국 태생으로 명쾌한 색조와 경쾌한 터치로 모자상을 즐겨 그린 미국 인상주의의 대모 메리 커셋(1844~1926)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이들이 인상주의라는 단일한 이념이나 명백한 원리에 의해 하나로 묶였다기보다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반응이 집단화됐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정준모 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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