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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7월4일] 1953년 리비교 개통

신인호

입력 2019. 07. 03   09:28
업데이트 2019. 07. 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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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임진강 가설 교량 중 유일하게 현존


파주시 파평면 임진강에는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다리가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두포리의 전진교이고, 가까운 상류 장파리에 리비교라는 다리도 있다. 이 두 다리 모두 일반인의 통행은 제한된다. 특히 리비교라는 이름이 쉽게 와닿지 않는 다리는 현재 폐쇄돼 통행이 안되고, 또다른 용도를 위해 보수 중인 다리이다. 그런데 이 다리가 6·25전쟁 때 작전을 위해 미군이 임진강에 건설한 10여 개의 다리 중 현존하는 유일한 다리로서 꽤 의미가 있는 곳이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날 즈음이 되자 전선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1951년 6월 한 달 동안의 전황을 보면 유엔군은 임진강 동쪽과 한탄강 북쪽 산악지대에서 적을 압박했고, 임진강 서쪽에서는 기습과 수색정찰 작전을 전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임진강 북부 지역에 지속적으로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해야 했고 여기에 장애가 되는 임진강을 극복할 원활하고 안정적인 보급로를 확보해야 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임진강 하류인 파주에서 상류인 연천까지 ‘자유의 다리’를 포함해 11개의 다리를 부설하기 시작했다.


1952년 10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1953년 7월 4일 12시 개통된 리비교.
1952년 10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1953년 7월 4일 12시 개통된 리비교.

하지만 목교나 부교 형태로 가설된 다리는 우기 때 홍수로 인해 유실되고 말았다. 미 1군단 사령관은 1952년에 9월에 적성 지역 2곳에 반영구적인 교량을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 엑스레이(X-Ray) 프로젝트 아래 건설된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와 진동면 용상리를 잇는 리비교가 그 중 하나였다. 미8군 예하의 2건설공병단 84건설공병대대는 1952년 10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8개월만인 다음해 1953년 7월 4일에 다리를 준공했다. 교량의 높이는 45m이며 길이 328m, 폭 7m로 2차선 도로였다.

개통을 앞두고 본래 대대에서는 카투사(KATUSA)로서 대대에 배속돼 다리 건설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53년 1월 31일 사고로 사망한 김호덕(Kim Ho Duk) 상병의 이름을 다리 이름으로 붙이려 했다. 하지만 미 8군 사령관맥스웰 테일러(Maxwell D. Taylor) 장군은 3전투공병대대 조지 리비(George D. Libby) 중사의 이름을 따 명명할 것을 지시했다. 리비 중사는 1950년 7월 20일 대전지구 전투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위기의 동료를 구한 공로 1951년 8월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정전 이후 리비교는 ‘북진교’로도 불리면서 국군과 미군의 병력·차량 이동에 사용됐으나 인근에 전진교(1984년) 등 다리가 건설되면서 군의 이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주로 민간인통제선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이동할 때 이용했다.


그러다 2015년 12월 군관정책협의회 자리에서 리비교에 균열이 일어나 안전진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이에 따라 진단을 실시한 결과 ‘사용을 금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해야 한다’는 E등급이 나와 2016년 10월, 다리의 폐쇄가 결정되었다. 


파주시는 현재 리비교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키로 하고 운영권을 넘겨받아 개·보수를 진행하면서 근대등록문화재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또 파주시는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DMZ 평화의 길’의 거점센터를 2020년 말까지 리비교에 인근에 조성한다고 2019년 7월 18일 밝혔다. DMZ 평화의 길은 강화~파주를 거쳐 강원도 고성까지의 접경 지역을 경유하는 동서 횡단 여행길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총 501㎞에 달한다.



 

 조지 리비 (1919.12.4 ~ 1950.7.20)
조지 리비 (1919.12.4 ~ 1950.7.20)

■ 조지 리비 (George D. Libby)

6·25 전쟁 중 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더불어 최초로 받은 인물이다. 또다른 인물은 미 24사단장을 지낸 윌리엄 딘(William F. Dean) 소장이다.

미8군 3전투공병대대 C중대 소속의 조지 리비 중사는 1950년 7월 20일 대전전투 당시 옥천으로 향한 철수로가 차단된 상태에서 자신을 희생해 사단 병력을 철수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날 그는 철수작전 중 산악을 통해 철수하기 어려운 부상병을 차량에 싣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북한군의 사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이동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철수하던 포병의 M-5트랙터를 정지시켜 부상병들을 실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적의 화력에 그는 자신의 몸으로 운전병을 보호하며 탈출을 계속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신에 많은 총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결국 전사했다.



북진교로 불렸던 리비교는 파주시에 의해 2019년 현재 주요 골격을 남기고 개수,보수 중이다. 이헌구 기자
북진교로 불렸던 리비교는 파주시에 의해 2019년 현재 주요 골격을 남기고 개수,보수 중이다. 이헌구 기자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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