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북한과 혈맹관계 유지…소련 붕괴 후 전투력 급감

입력 2019. 06. 28   16:27
업데이트 2019. 06. 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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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쿠바 국방정책


1949년 한국과 우호관계 정립했으나 10년 뒤 교류 단절
1960년 北과 공식 수교…정치·군사적으로 동맹관계 유지
1980년대 비중있는 군사력 보유…소련 붕괴로 규모 줄어
수상함 등 대부분 노후돼 정상운영 힘들고 방산능력도 정체
쿠바는 2016년 11월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 후 라울 카스트로가 최고권력자 역할을 수행하다 최근 디아스카넬에게 국가평의회 및 각료회의 의장직은 이양했으나, 여전히 군 최고사령관인 쿠바 공산당 제1서기로서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1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 퍼레이드에 모습을 드러낸 디아스카넬(왼쪽) 국가평의회 의장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  연합뉴스
쿠바는 2016년 11월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 후 라울 카스트로가 최고권력자 역할을 수행하다 최근 디아스카넬에게 국가평의회 및 각료회의 의장직은 이양했으나, 여전히 군 최고사령관인 쿠바 공산당 제1서기로서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1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 퍼레이드에 모습을 드러낸 디아스카넬(왼쪽) 국가평의회 의장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 연합뉴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북한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의 심각한 경제난을 야기한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나라 등이 연상되는 ‘쿠바’라는 ‘멀고도 먼 나라’가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에게 ‘멀지만 가까운 나라’로 재인식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지난해 4월 19일, ‘혁명 후 세대’인 디아스카넬이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인준됐다. 카스트로가(家) 외의 인물이 국가수반으로 선출됨으로써 59년 만에 쿠바 정권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라울 카스트로 등 혁명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 및 북한과의 관계

1921년 3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선인장 재배 농장에서 일하던 300여 명의 한인들이 쿠바의 사탕수수 재배 농장에 취업하기 위해 이주했고 그 결과 이제 1000명이 넘는 한인 후손들이 쿠바 전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쿠바와 우리나라는 미수교 상태다. 1949년 7월 쿠바는 우리나라와 우호관계를 정립하고, 6·25 전쟁 시에는 279만 달러 상당의 긴급구호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쿠바 재해재난(2008·2013년, 허리케인) 시 인도적 지원을 시행한 바 있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우리나라와 교류를 단절하고, 1960년 북한과 공식 수교했다. 최근까지 쿠바와 북한은 이념적인 동지로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디아스카넬이 국가평의회 의장 취임 이후 첫 방문국으로 북한을 방문해 양국 간 전통적 혈맹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6년 3월에는 피델 카스트로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한이 쿠바에 소총 10만 정, 1600만 달러 분량의 탄약과 쿠바 내 탄약공장 건설을 지원하는 등 양국 관계를 사실상의 동맹관계로 격상시킨 바 있다. 1991년 3월 양국 간 군사협정을 체결한 이래, 양국은 정치·군사적으로 사실상의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상호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특히 필자가 주멕시코 국방무관으로 재직하던 2014년 7월, 쿠바를 경유하면서 불법활동을 전개한 북한 선박 ‘무두봉’호가 멕시코 항구도시인 툭스판 근해에서 좌초해 당시 유엔 통제 아래 주재국 정부가 예인·억류한 사례 또한 이러한 관계를 입증해 주는 듯하다.



국방 및 방위산업 현황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잠재적 침략 가능성을 주된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다. 특히 잠재적인 반혁명세력과 외부로부터 주권 및 영토를 수호하는 것을 자국 안보의 중점 기조로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 쿠바의 군사(軍史)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혁명 이듬해인 1960년 쿠바혁명군(FAR·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을 창설한 이래, 1980년대 말까지는 소련의 집중적인 지원·원조를 받으면서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 비중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다. 이를 바탕으로 알제리·앙골라 등 아프리카 국가는 물론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중미(中美) 국가 내전에 자국군을 파병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군사개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로 인해 더 이상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2011년 군 전투력 규모가 대폭 감소(24만5000명에서 8만5000명으로 3분의 1수준)했다.

주요 군사력 현황은 다음과 같다.

정규군 병력은 5만 명 수준이나, 민병대 등 비정규군을 포함하면 100만 명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상군은 3만8000명 수준으로 서부군·중부군·동부군 등 3개 지역사령부로 구성돼 있다. 각 지역사령부는 예하에 4~5개 여단급 규모의 부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T-62 등 전차 1500여 대, 장갑차 700여 대, 견인·자주포 700여 문, SAM 미사일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공군은 8000명 수준으로 MIG-21 12대, MIG-23 38대, MIG-29 6대, 공격헬기 35대 등 120여 대의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다.

해군은 4000명 수준으로 1998년 이전까지는 12척의 수상함을 보유했으나, 대부분 노후화와 연료·부속품 부족으로 정상적인 운영유지가 제한됨에 따라,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해안포 기지를 다수 지역에 건설·운용하고 있다. 특히 2010년에는 북한의 이영호 당시 총참모장의 쿠바 방문을 통해 북한의 기술지원으로 상어급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쿠바의 국방예산은 2016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8.26% 수준이며, 2억9300만 달러 상당이다. 이는 최근 3년간 커다란 증감 없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쿠바의 방산능력은 보유 항공기 및 전차 등을 수리하거나 일부 개인화기 등을 생산하는 수준에 정체돼 있으며, 해안경비정, 대공화기, 저격용 소총, 탄약류, 지뢰 등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사실상 군수공장의 잉여 설비 및 인력을 민간산업용으로 전환하는 추세에 있다.



[무관노트]

한국과 경제·문화 교류로 관계 개선…수년 내 정책 변화 예상

1959년 쿠바혁명의 상징인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2016년 11월)으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최고 권력자 역할을 수행하다가 최근 디아스카넬에게 국가평의회 및 각료회의 의장직을 이양했다. 그러나 라울은 여전히 군 최고사령관인 쿠바 공산당 제1서기(2021년까지 임기 보장)로서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쿠바와 수교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쿠바와 북한 간의 전통적 관계로 인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문화 교류를 통해 양국 관계가 점차 개선되는 상황이며, 수년 내 라울 카스트로가 사망하면 쿠바에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왕종표 예비역 육군대령 
前 주멕시코 국방무관 
現 한국국방외교협회  
중남미센터장
왕종표 예비역 육군대령 前 주멕시코 국방무관 現 한국국방외교협회 중남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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