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二色 축구예능...상실감 차버리거나 꿈을 드리블하거나

입력 2019. 06. 20   16:19
업데이트 2019. 06. 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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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뭉쳐야 찬다’와 ‘으라차차 만수로’


뭉쳐야 찬다
각 종목 정상
올라봤던 중년의
선수 출신
아재들로 구성
익숙하지 않은
제2 인생
적응하는 모습
중심부 밀려났다는
상실감으로
위축된 이들에
짜릿한 쾌감 줄 수도

 
으라차차 만수로
구단 운영 꿈인
초보 구단주
김수로 좌충우돌
웃음 포인트
괜찮은 직업에도
축구의 꿈
포기 못하는
이들을 보며
하던 일 하며 사는 게
과연 의미 있는지
사뭇 진지한 질문


U-20 월드컵 대회에서의 기적 같은 준우승 이후 TV 예능프로그램에 축구를 소재로 한 두 개의 프로그램이 론칭돼 눈길을 끈다. 하나는 세계적 축구스타였던 안정환이, 함께 ‘뭉쳐야 뜬다’에서 만나 아재 4인방 전성시대를 열었던 김용만·김성주·정형돈 그리고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을 모아 조기축구팀을 만드는 JTBC의 ‘뭉쳐야 찬다’. 또 하나는 축구광인 김수로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13부 팀을 사서 구단주가 돼 꿈을 이루는 KBS의 ‘으라차차 만수로’다.


‘뭉쳐야 찬다’의 아이디어는 이미 ‘무한도전’이나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보았던 익숙하지 않은 스포츠 종목 도전기라서 참신한 맛은 떨어진다. 하지만 친근하고 안정적인 아이디어는 금방 몰입이 가능하게 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사실 생활체육 중에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즐기는 구기 종목은 단연 축구다. 게다가 조기축구회가 없는 동네는 찾을 수가 없을 만큼 팀들도 잘 조직돼 있어서 사실상 클럽의 역할까지 하는 조직이 조기축구회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로 중년 이상의 아재들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서 중년 남성들이 느끼는 상실감이나 고민을 잘 포착할 수 있는 정서적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런 공동체를 이만기·허재·양준혁·이봉주·심권호·여홍철·진종오·김동현 등 각 종목에서 정상에 올라봤던 선수 출신의 아재들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인생의 정점을 찍고는 이제 평범한 사회구성원으로 정착한 사람들이다. 은퇴 이후의 공포를 이미 먼저 만난 사람들이고, 지금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마다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그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은퇴를 한 번 이상 경험했거나 앞둔 40대 이상의 시청자층에 강력한 감정이입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축구라는 새로운 미션을 받았다. 이 미션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공놀이에 불과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제2의 인생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하지 않은 이 종목에 적응하면서 망가지다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면서 멋진 플레이를 보이는 모습이 담긴다면, 공포와 불안감에 떨고 있거나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으로 위축돼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해줄 수 있다.



‘뭉쳐야 찬다’가 익숙함을 강조한 아이디어로 쉽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면, ‘으라차차 만수로’는 다소 엉뚱하지만 꽤 묵직한 한 방을 갖춘 프로그램이다. 바로 ‘꿈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의 핵심에는 축구광 김수로가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실제로 영국 축구 13부 리그의 ‘첼시 로버스’를 인수해서 화제를 모았던 바 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 구단을 운영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평범하게 늘 하던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삶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의 질문은 그가 운영하는 구단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이 붙들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예능에서는 뭘 몰라서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만회하려고 좌충우돌하는 이방인 초보 구단주 김수로가 웃음 포인트일 것이다. 그를 따라 웃다 보니 어느새 영국 축구 시스템을 배우며 진정한 구단주로 성장한 김수로를 만난다면 뿌듯한 감동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그런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축구광들은 20부 리그까지 존재하는 영국이 어떻게 구단을 관리하는지 선수 등록부터 승강 시스템, 상벌제 등 영국의 축구 문화를 예능을 통해 만난다는 점에 흥분하고 있다. 축구 구단주가 돼보지 않으면 겪을 수 없는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야말로 새로움으로 가득한 신세계가 아닌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재미는 예상보다 강력하다.

게다가 여기엔 선수들이 있다. 강등 위기에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꿈을 위해 뛰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공개될 예정이다. 13부 리그쯤 되면 사실 아마추어 축구팀에 가깝다. 축구만으로 먹고살 수 없으니 각각 다른 직업들로 생계를 꾸리면서 공을 차는 선수들은 왜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각각 초등교사, 기관사, 증권사 직원, 식당 매니저, 경호업체 직원 등 꽤 괜찮은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축구에 목을 매고 있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

그래서 이 예능은 사실 예언적이기도 하다. 만약 4차 산업혁명으로 직업이 사라지는 상황이 가속된다면, 그래서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대다수 직업을 대신하는 사회가 온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 진짜 자신들이 원하는 꿈을 선택해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벌이와 관계없이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시대가 된다면 더욱 그런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겉으로 보이기에 ‘축구 예능’인 듯하지만, 새로 론칭되는 두 프로그램은 결국 ‘인생’을 제법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예능이다. 이제 예능으로 사유하는 시대가 됐다. 이 놀라운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전적으로 소비자들이다. 현명한 소비자들의 선택이 콘텐츠를 깊이 있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일상의 몰상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능만도 못한 시대에 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서 소비자들은 더 똑똑해지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 결국 세상에 완전히 나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김성수 시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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