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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배신, 비극…그곳엔 ‘새벽의 7인’이 있었다

기사입력 2019. 06. 18   16:11 최종수정 2019. 06. 18   16:13

<23> 체코 (상)

2차 세계대전 당시 실화 바탕 제작
독일 총독 ‘하이드리히’ 암살 시도
7명의 특공대원 마지막 저항 그려 

 
분노한 히틀러 리디츠 마을 초토화
450명 주민 살육의 장소로 변해 

 
영웅 흉상 있는 메소디우스 대성당
탈출 위해 급박했던 상황 잘 보여줘 

 

프라하 메소디우스 대성당 전경. 빨간색 원형 안에 지하실 환기구와 특공대원 및 성당 신부 조각상이 있다.

체코(Czech)는 유럽의 내륙국이며 수도는 프라하다. 독일·오스트리아·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이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최초 건국됐으며, 1939년 3월 독일에 강제합병당했다가 1944년 소련에 의해 해방됐다. 냉전 시기인 1968년 체코인들은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소 시위를 벌였으나 실패했다. 결국 1989년 소련 붕괴 후 겨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게 된다. 하지만 국가재건정책에 대한 갈등으로 1993년 1월 1월 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다. 현재 체코는 인구 1063만 명, 국토 넓이 7만8865㎢, 국민 연 개인소득은 2만 달러 내외다. 군사력은 병력 2만1950명(육군 1만2750명, 공군 6800명, 기타 2400명, 준군사부대 3100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새벽의 7인’ 그 현장에서 본 체코 비극


1970년대 중반의 세계적인 명화 ‘새벽의 7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소국 체코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특히 2명의 체코 청년이 끝까지 독일군에 저항하다가 물이 찬 성당지하실에서 최후의 순간 자결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당시 치열했던 격전 현장이면서 실제 영화 촬영지였던 성당, 지하실, 환기구, 비밀통로는 현재 그대로 남아있다. 

 

프라하 메소디우스 대성당의 지하실 내부 전경. 사진 위쪽의 환기구와 그 밑에 탈출로를 찾기 위해 벽을 깬 흔적이 보인다.

1942년 6월 17일, 프라하의 메소디우스 대성당으로 독일군들이 몰려 왔다. 이곳에는 ‘히틀러의 후계자’로 알려진 체코의 독일 총독 하이드리히를 암살한 7명의 영국 특공대원들이 숨어 있었다. 성당으로 진입한 독일군과 대원들 간의 치열한 교전으로 시신은 산처럼 쌓였고 건물 바닥은 피바다로 변했다. 그러나 700여 명의 적을 단지 7명의 공수부대원이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탄·수류탄은 떨어졌고 대원들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체코 출신인 얀과 요제프는 비밀통로로 연결된 지하실로 내려가 결사항전을 준비한다.

6월 18일 새벽, 성당 지하의 좁은 환기구가 마침내 적에게 발견됐다. 독일군은 이 틈으로 최루가스를 집어넣었지만, 저항군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절망적 상황에서 두 사람은 지하실과 하수구의 연결 통로를 찾고자 벽을 깨부쉈다. 그러나 탈출은 쉽지 않았다. 결국 독일군은 소방 호스를 집어넣어 지하실에 물을 가득 채웠다. 더 이상 저항은 불가했고 최후의 순간은 다가왔다. 얀과 요제프는 한 손에 권총을 들고 수영으로 물 위에서 만나 부둥켜안았다. 서로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갖다 대고 말 없는 미소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지하실 환기구로 한 줄기의 새벽 햇살이 비쳤다.


성지(聖地)로 변한 영웅들의 격전지


현재 이 성당은 체코 성지로 관리되고 있다. 무수한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환기구 외벽 위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의 조각상이 있다. 낙하산을 멘 특공대원과 이들을 숨겨주다 학살당한 성당 신부의 형상이다. 

 

리디츠 마을 학살 현장에 세워진 희생자 추모 동상.

성당 지하실로 들어가면 환한 조명 아래 투항을 거부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7명의 공수부대원 흉상이 줄지어 서 있다. 주변에는 당시 독일군이 촬영했던 각종 사진 자료로 기념관을 꾸며 놨다. 폭파된 총독 차량, 소방호스 주입, 저항군 시신 검안, 무기류 사진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특히 최루가스, 물세례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탈출로를 찾기 위해 벽면을 깨부순 흔적은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 ‘새벽의 7인’을 떠올리며 처절했던 현장을 직접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성당 외벽을 살피던 중 마침 한국 여학생 2명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잠깐 나눴는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혹시 이 근처 체코식 돼지족발 콜레뇨 잘하는 음식점 아세요?”라고 묻는다. 역사유적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학생들은 동유럽 맛집 탐방 중이란다.


초토화된 ‘리디츠’ 마을과 배신자의 말로

이 사건에 분노한 히틀러의 보복은 잔인했다. 낙하산으로 침투한 영국 특공대원들을 도와준 리디츠 마을이 대상이었다. 450여 명의 주민이 살았던 이곳은 순식간에 살육의 장소로 변했다. 기념 부조에 그려진 송아지만 한 군견은 날카로운 이빨로 아이들을 물어뜯을 기세다. 리디츠는 철저하게 파괴됐고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어느 시대나 영웅이 있으면 비열한 배신자도 있다. 이 퇴출 작전의 실패는 나약한 정신을 가진 특공대원 카렐의 밀고 때문이었다. 얀·요제프·카렐은 같은 체코 출신이다. 그러나 카렐은 고향에서 아내와 아들을 만난 후 영국 귀환에 회의를 품었다. 더구나 암살범에게는 엄청난 포상금까지 걸렸다. 결국 그는 게슈타포에 제 발로 찾아가 동료들을 밀고했다. 작전요원들은 전원 사살됐고, 지원세력은 일망타진됐다. 카렐은 독일군 협력대원으로 특채됐으나 종전 후 체코정부에 체포돼 처형된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체코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매국노로 후손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있다.


냉혹한 국제외교에 희생된 체코 역사

한산한 리디츠 기념관의 학예사 마리는 강대국들이 내팽개친 체코의 서러운 역사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1930년대 후반 유럽의 강대국 영국·프랑스·독일·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절박한 생존 문제에 무관심했다.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한 히틀러는 또다시 ‘체코 영토 주테덴란트 거주 독일인들이 박해받는다’는 황당한 논리로 이 약소국을 협박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히틀러의 장난에 영국·프랑스가 먼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정작 체코 대표는 참석도 못한 채 1938년 9월, ‘뮌헨 회담’에서 영국·프랑스 총리는 이 지역을 독일에 넘겨 버렸다. 전쟁을 피하고자 독재자의 비위를 맞췄던 것이다. 이어 1939년 3월, 독일군은 체코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래 우리는 버림받았다. 하지만 다음은 프랑스·영국 당신들 차례다!”라고 체코인들은 울부짖었다. 그리고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전격적인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됐고 유럽은 6년여간 처절한 전화에 휩싸였다. 


<신종태 통일안보전략硏 연구원>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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