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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이 됐지만, 갑종장교 호국정신은 변함없다”

서현우

입력 2019. 06. 14   14:30
업데이트 2019. 06. 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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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에 만난 사람 ① 김영갑 갑종장교전우회장


1950년 창설 20년간 4만5000여 명 임관
갑종장교 70주년 기념사업 내년 완료
공훈 재조명 통해 명예 선양 기대감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갑종장교전우회 대회의실에서 김영갑 회장이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종원 기자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갑종장교전우회 대회의실에서 김영갑 회장이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종원 기자


갑종장교의 역사가 내년 육군보병학교에 설치된다. 지난해 9월 총회에서 구성된 7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추진 중인 사업을 통해서다. 현재 육군보병학교에 ‘추모의 집’과 ‘회상의 벽’을 건립 중이고, 『갑종장교 70년사』 편찬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념사업들은 내년 6월로 예정된 ‘갑종장교 70주년 기념식’에 맞춰 마무리된다. 이를 위해 갑종장교전우회는 약 2억40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해 회원들의 자발적인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 기념사업이 완료되면 갑종장교 70년 공훈이 재조명되는 것은 물론 그들의 명예가 더욱 선양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013년부터 갑종장교전우회를 이끌고 있는 김영갑(77·갑종170기·예비역 육군소장) 회장은 이러한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번 기념사업에 대해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의 국가관 확립과 안보의식 고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유가족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 군의 역사에서 갑종장교의 역할과 중요성은 빼놓을 수 없다. 갑종장교는 6·25전쟁 발발 6개월 전에 창설해 약 20년간 4만5424명이 임관했다. 6·25전쟁 중에는 호국의 방패로 나라를 지키고, 베트남전쟁에서는 자유를 수호하는 전사로 국위를 선양했다. 또 전후(戰後)에는 군 전투력 증강과 정예화의 주역으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갑종장교 양성이 중단된 지 50년이 되었지만 그들의 공훈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안타까워 갑종장교들이 직접 그들의 역사를 새기는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김 회장은 갑종장교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70여 년 동안 갑종장교들은 격동의 세월을 살았고, 그 속에서 국가를 위해 기여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후배 장교들에게도 소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이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말은 ‘존경받는 간부가 되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간부들이 부대원으로부터 존경받아야 강한 전투력이 발휘될 수 있기에, 강군 육성의 첫걸음은 존경받는 간부들이고 간부들이 존경받을 때 군의 신뢰 역시 올라간다”고 말했다. 더불어 “갑종장교들은 이제 모두 고령이 됐지만 호국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다”면서 “조국의 자유와 평화는 이제 현역들에게 달렸다”고 강조했다.

서현우 기자 lgiant61@dema.mil.kr

갑종장교 70주년 주요 기념사업 
▲ 회상의 벽: 갑종장교 70년 공적을 화강석 벽에 기록
▲ 추모의 집: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호국영웅 986명 이름 각인
▲ 갑종장교 70년사 편찬: 갑종장교 역사를 책자에 수록해 편찬


갑종장교의 역사


육군보병학교 창설 이듬해 신설

6·25때 소·중대장...805명 전투 중 산화
베트남전 땐 국군 장교 66% 차지

 
갑종장교의 역사는 1950년 1월 육군보병학교에 ‘갑종간부 후보생 과정’이 신설되면서 시작됐다. 갑종장교의 모태가 되는 육군보병학교가 1949년 7월 경기도 시흥에서 창설된 이듬해였다. 전쟁 기간에도 갑종장교는 계속해서 양성됐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대부분 소대장과 중대장으로 전선의 선두에서 전투를 이끌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당시 갑종장교 후보생 1기 387명과 2기 150명 등 537명은 임관도 하기 전에 후보생 신분으로 전투에 투입됐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사관후보생을 나타내는 ‘사(士)’ 표지만을 달았을 뿐이었다.

희생은 컸다. 1기생과 2기생 537명 중 15%인 67명이 초전에서 전사했다. 이후 49기생까지 1만 명이 넘는 갑종장교가 전쟁에 나가 805명이 전투 중 산화했다.

김영갑 전우회장은 “소대장이 선두에 나서 소대원을 이끌어야 전투가 이뤄진다”면서 “대부분 소·중대장이었던 갑종장교들의 희생이 컸던 점은 그만큼 자신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참여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의 희생은 전쟁 초기 적의 진출을 저지하며 초전의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김 회장은 베트남전쟁에서도 갑종장교의 활약은 계속됐다고 강조했다. 1964년부터 약 8년8개월 동안 갑종장교 1만4712명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참전 국군 장교 전체의 약 66%를 차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무공수훈자도 배출했지만 174명의 전사자도 발생했다. 두 전쟁과 갑종장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김 회장은 “매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찾아오면 감회가 새롭고 또 마음이 무겁다”고 덧붙였다.

서현우 기자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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