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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근 종교와 삶] 소명

기사입력 2019. 06. 11   15:45 최종수정 2019. 06. 11   15:57


이 원 근 
육군17사단 군종신부·대위
지난 4월 29일 봄바람 불던 날, 17사단 신병교육대대에 입소하는 장정들이 가족·친구 그리고 애인의 배웅을 받으며 부대 위병소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군종 목사님·법사님과 함께 굳은 표정의 입소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입영식장에서 초코과자와 따뜻한 차를 나눠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어머니 한 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부대를 처음 방문해서 본인이 하는 행동이 아들에게 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 조용히 질문하셨습니다. “이거 받아도 되나요?” 저는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물론이죠! 분명히 아드님이 훈련소 생활관에 들어가면 초코과자 하나 더 먹고 들어올걸 하며 후회할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아들도 주시고 어머니도 당분 채우세요.”

어머니는 밝은 얼굴로 간식을 챙겨 입소를 앞두고 얼굴에 짜증이 잔뜩 묻어있는 아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입소를 앞둔 아들은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어머니가 창피했는지 초코과자를 들고 서 있는 그분의 손이 무색하게도 묵묵히 자기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두커니 서 계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아들 넷을 천주교 신부로 키운 이춘선(1921~2015)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40대 후반 열한 번째 아이로 낳은 막내가 사제품을 받고 임지(任地)로 떠나는 날 어머니는 작은 보따리 하나를 건넸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풀어봐라.’ 막내 신부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풀어봤다. 그러곤 목이 메어 한참을 울었다. 보따리 안에는 막내 신부가 갓난아기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와 함께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신부님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각자 맡은 소명에 따라 주어진 임무에 책임을 다하며 어른이 되어가고, 그 소명을 다할 때마다 목적이 생기고 그 목적을 위해 경쟁하며 치열하게 경주마처럼 앞을 향해 달려갑니다. 경주마는 눈 옆을 가리개로 가린 채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혹독한 조련으로 수명이 짧은 단거리 경주마를 키우는 곳이 군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 막 20대로 접어든 청년들이 잠시 그 경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곳이 바로 군대입니다. 경쟁하다 보면 늘 자기 자신보다 앞선 사람이 눈에 띄게 되고 비교 속에서 열등감은 커져 자신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남의 재산을 부러워한다고 해서 그게 본인의 지갑을 채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춘선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미사 강론 시간에 신자들을 한바탕 웃겨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고자 아들 신부는 눈물을 들키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쓰고 강론을 하며 장례에 참여한 분들에게 웃음을 선물했습니다. 가끔은 어머니의 관심과 시선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잠시 경쟁에서 벗어나 의젓한 아들이 되어 ‘괄목상대’를 실감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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