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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병영칼럼] 다작의 비법, 영감의 원천

입력 2019. 06. 11   15:45
업데이트 2019. 06. 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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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작곡가·SW아트컴퍼니 대표
성용원 작곡가·SW아트컴퍼니 대표

음악사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는 독일 태생의 텔레만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무려 3000곡이 넘는데 계속 새로운 작품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다작엔 이유가 있다. 바로 아내가 남긴 어마어마한 도박 빚을 갚기 위해서 쓰고 또 쓰면서 출판과 연주를 통해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는 엄청나게 빠른 작곡 솜씨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미 18세에 소년 작곡가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친 로시니는 그런 천재성과는 딴판으로 느긋하고 게으른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를 고용한 극장장이었다.

참다못해 오페라하우스 다락방에 로시니를 가둬버리고 작곡을 하게 한 후 하인들에게 제시간에 완성하지 못하면 창밖으로 던져버리라고 한 에피소드가 남아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작품들을 조금씩 바꿔 우려먹는 자기표절과 함께 신들린 듯한 속필과 초스피드로 작곡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스무 살의 바흐는 17세기 후반 독일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인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듣기 위해 320㎞를 걸어서 갔다. 얼마나 감동했는지 바흐는 원래의 직장에 사의를 표명하고 넉 달이나 북스테후데가 봉직하던 뤼벡의 성 마리아 교회에서 머물면서 그의 연주를 듣고 가르침을 받았다. 후에 바흐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 중의 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15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필자가 독일어를 모국어같이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어린 나이에 독일에 가서 성장한 요인도 있지만, 학교 다니면서 어눌한 발음과 유창하지 못한 독일어 때문에 받은 설움과 무시가 한몫 톡톡히 한다. 분했다. 그래서 단어장을 항시 휴대하고 화장실에서도 입으로 주절거렸으며 문장을 넘어 아예 한 문단을 통째로 외워버리면서 절치부심했다.

표면적인 현상 말고 이면을 관찰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텔레만을 버리고 스웨덴 장교랑 도망가 버린 아내의 빚을 갚기 위해 쓴 작품들이 참다못해 이혼해 버리고 빚을 탕감한 후 남긴 작품들보다 수백 년이 지난 현재 더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뭔가 자신의 열정과 욕구를 자극할 만한 인생의 목표와 설정이 있다면 왕복 640㎞ 걷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놀리고 비웃고 이해했으면서도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던 필자의 학창시절 짓궂은 독일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외국어 구사는 필자에게 그림의 떡이고 한으로 남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큰 부를 축적, 갑부 음악가가 된 로시니는 39세에 절필을 선언하고 인생의 절반을 유유자적하며 보냈다. 너무 이른 시기에 부를 축적한 탓에 머리 아프고 피곤한 오페라 작곡에 의욕을 잃어버려서 그런 걸 거다.

그 결과 우리는 로시니를 통해 음악적 즐거움을 더 만끽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긴 로시니의 대표작인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은 로시니가 예전에 작곡했던 무명의 자기 작품 ‘영국 여왕 엘리자베타’의 서곡을 슬쩍 가져다 쓴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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