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

여성 역할 더욱 빛났던 세계대전 후방 병참기지

입력 2019. 06. 04   16:09
업데이트 2019. 06. 0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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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국 4 - 스코틀랜드


천연 요새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
전시 생활상 등 추모·박물관 활용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차 전시도
잉글랜드와 뿌리 깊은 갈등도 지속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에든버러성 전경.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에든버러성 전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에서 포탄신관을 검사하고 있는 영국 여성노동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에서 포탄신관을 검사하고 있는 영국 여성노동자.
에든버러 구시가지에 있는 충견 보비의 동상. 수많은 관광객이 강아지 콧잔등을 만지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에든버러 구시가지에 있는 충견 보비의 동상. 수많은 관광객이 강아지 콧잔등을 만지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본토 섬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북쪽에 위치한다. 남쪽은 잉글랜드, 북서쪽은 대서양, 동쪽은 북해와 접해 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영국의 직접 통치에 저항하다가 1707년 두 왕국이 통합됐다. 1800년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조선·철강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인구가 대폭 증가했다. 특히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군수품 생산을 담당하는 든든한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북부에는 ‘하이 랜드(High Land)’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산악지대와 해저괴물이 산다는 네시 호도 있다. 대도시 에든버러·글래스고와 주변 작은 도시에는 영토 갈등, 왕위 계승, 세계 전쟁에 얽힌 성곽·기념비·군사유적 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천년고도 에든버러성과 One o’clock Gun


스코틀랜드 옛 왕국의 수도인 에든버러는 행정·문화의 중심지이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특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 에든버러성은 한눈에도 천연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숱한 전쟁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이 성은 1500여 년 전에 최초로 축성됐다. 16·17세기경, 이 성채는 적으로부터 숱한 포위 공격을 당했으나 절대로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 대부분 시설이 파괴됐고, 현재의 성안 건축물들은 거의 18세기 이후 지어졌다. 달팽이관처럼 감아올린 성곽 내 건물·지하시설은 과거 전쟁지휘소·감옥·포로수용소로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교회·군사박물관·전사자추모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에든버러 성곽에서 매일 진행되는 ‘One o’clock Gun’이라는 이색적인 행사가 있다. 즉 1861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오후 1시에 대포 한 발을 발사한다. 시계가 귀했던 과거에 정확한 시간을 항구의 선원, 지역 주민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수많은 영국 식민지에서도 똑같은 시간대에 대포가 발사됐다. 우리나라도 한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12시 정각 사이렌을 울려 시간을 알려줬다. ‘오포(午砲)’라고 불린 이 관습은 에든버러성의 대포 발사 행사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전해져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에든버러의 충견 ‘Bobby’ 이야기

영국인들은 보수적이면서도 독특한 전통을 기막히게 창조하는 천재성을 갖고 있다. 심지어 수백 년 된 공동묘지조차 다양한 의미와 역사성을 부여해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이 도시 구시가지에는 ‘보비(Bobby)’라는 조그마한 강아지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는 늘 사람이 북적인다. 이 동상은 한국의 전북 임실 ‘오수의 개’와 비슷한 사연을 가졌다. 보비는 1850년경 존 그레이 목사가 기르던 강아지였다. 보비가 두 살 무렵, 주인이 죽자 이 개는 무려 14년 동안 주인 묘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보비의 충성심에 감탄한 주민들은 그곳에 아예 개집까지 지어줬다. 어디까지 진실인지 솔직히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 후 이 강아지는 일약 영국의 유명인사(?)가 됐고, 죽은 후 주인 옆에 안장되고 묘비까지 세워졌다. 뒤이어 동상이 건립되고 보비펍·보비식당·보비마스코트 등으로 지금까지 관광특수를 톡톡히 누린다. 특히 보비 코를 만지면 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다는 속설까지 퍼져 동상 콧잔등은 하얗게 변해 있다. 흡사 한국 망부석이나 돌부처의 코가 닳아 없어지는 수난을 겪는 것처럼….


전시 영국의 병참기지 스코틀랜드

제1·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공군이 스코틀랜드까지 날아가 폭격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따라서 영국은 이 지역 군수공장에서 수많은 전쟁 물자를 생산했다. 에든버러 국립박물관 3층에는 세계대전 중의 후방 기지 역할과 스코틀랜드인 생활상 자료들이 많이 있다.

1940년 1월, 처칠은 “앞으로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이 전쟁에 필요할 것이다. 특히 10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군수공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박물관에는 머리 스카프를 단정히 쓰고 포탄 신관 분류작업을 하는 수백 명의 여성 노동자와 여성 방공경보 요원 사진 같은 이색 전시물들이 꽉 차 있다. 전쟁 기간 내내 우편·간호·교통 업무, 심지어 방공호 구축까지 여성들의 몫이었다. 또 독일군 폭격을 피해 200여만 명의 도시 어린이들이 엄마와 생이별하면서 시골로 후송됐다. 아이들을 인수한 농촌 가정들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정성껏 그들을 돌봤다. 육아 부담을 던 도시권 주부들은 더욱 전시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곧 여성들의 사회참여 폭을 대폭 확장했다. 사실 영국은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남녀평등이 이뤄졌다.

아울러 1760년대 시작된 산업혁명 당시의 증기기관차, 공장 설비들도 전시실에 있었다. 파격적 동력을 가진 증기기관은 기계·제철·수송 분야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결국, 영국은 이런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간의 심각한 갈등

1999년부터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외교·국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정 권한을 중앙정부로부터 위임받았다. 그러나 뿌리 깊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갈등은 아직도 남아있다.

최근에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두고 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유럽연합 잔류를 희망했지만, 영국 정부는 탈퇴를 결정했다. 따라서 2014년에 이어 수년 내 또다시 스코틀랜드 독립에 관한 찬반 투표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영국 지도에서 동·서간 가장 좁은 지역이 에든버러-글래스고 구간이다. 에든버러역에서 기차를 타고 느긋한 마음으로 창밖의 시골 풍경을 감상했다. 더욱이 글래스고가 마지막 종착역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두 다리를 쭉 뻗으니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윽고 종착역에 도착해 내리니 어쩐지 출발역 분위기와 비슷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조금 전 출발했던 에든버러역이다. 조는 사이 기차가 글래스고에서 에든버러로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이 횡단 열차 운행시간은 50분에 불과했다. “의심나면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는 배낭여행 철칙을 어긴 대가로 오전 일정이 날아가고 말았다.

<신종태 통일안보전략硏 연구원>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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