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

엘리트 정예장교의 힘, 수백년 군사전통이 키웠다

입력 2019. 05. 28   16:38
업데이트 2019. 05. 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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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영국 3


샌드허스트 육군 장교학교
최초 왕립군사학교 명맥 이어

 
다트머스 해군사관학교
전통적으로 왕실 왕세자 교육

 
포츠머스 해군·잠수함·해병대박물관
빅토리아호·홀랜드호 등 전시

 

영국 장교학교 ‘샌드허스트’ 본관 건물 전경.
영국 장교학교 ‘샌드허스트’ 본관 건물 전경.


수백 년 군사전통을 자랑하는 영국군은 부대 역사와 고유의 전통 보존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장병 개개인의 소속 부대에 대한 자긍심과 명예심이 실전에서 무서운 전투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숱한 전쟁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육군은 지역 단위 연대 전통을 끝까지 고수하며, 해외 진출의 선봉장이었던 해군에게는 육·해·공군 동시 보고 시 관행적으로 브리핑을 제일 먼저 하도록 한다. 공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력 전투기였던 ‘스핏파이어(spitfire)’ 편대가 아직도 주요 행사 시 영공을 누비고 있다. 1930년대 제작된 이 항공기들이 백수(白壽)의 나이임에도 ‘에어 쇼’에서 현란한 춤을 추면 영국인들은 미친 듯이 열광한다. 이처럼 영국은 찬란했던 과거 역사를 끊임없이 재현하면서 국가 자부심을 고양하고 있다.



육군 장교 양성의 산실 ‘샌드허스트’

모병제를 시행하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출퇴근 근무, 높은 급여, 전역 후 취업 보장 등)에도 불구하고 신병 확보가 어렵다. 청년실업률이 35%에 달하는 이탈리아는 직업군인 평균 나이가 39세다. 밀레니엄 세대가 힘든 군 생활을 꺼리기 때문이다. 영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영국 신병 모집 광고에 ‘스마트폰 좀비, 게임중독자도 환영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신세대의 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테니 군인이 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군 간부만큼은 엄격한 검증을 거쳐 정예 자원을 뽑는다. 특히 장교 선발은 모집 공고부터 최종 합격까지 통상 1∼1.5년이 걸린다. 이 기간 중 다양한 분야의 심층 면접이 이뤄진다. 대학생 중 지적능력·인성·체력 면에서 최우수 그룹에 속해야만 선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과한 최종합격자들은 ‘샌드허스트(Sandhurst)’ 장교학교에서 1년 교육을 받은 후 비로소 임관한다.

1801년 이곳은 최초 왕립군사학교로 개교했지만,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문을 닫았다. 그 후 1947년 대폭적인 군 구조개편과 함께 현 교육체제로 바뀌었다. 고색창연한 학교 건물은 200여 년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다. 영국 총리 처칠,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왕세자 윌리엄도 이곳 졸업생들이다.

포츠머스 해군역사박물관 전경. 사진 중앙에 넬슨의 빅토리호가 보인다.
포츠머스 해군역사박물관 전경. 사진 중앙에 넬슨의 빅토리호가 보인다.


해군·해병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포츠머스

영국 남부 햄프셔 주 포츠머스에는 ‘히스토릭 독야드(Historic Dockyard)’로 불리는 해군역사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넬슨 제독의 빅토리호가 정박해 있다. 이 함정 앞에 50여 명의 관람객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해군 예비역이 “프랑스·독일·이탈리아·중국·일본…”을 호명하며 외국인들에게 안내 팸플릿을 나눠준다. 나 혼자만 받지 못했다. 인솔자가 돌아서는 순간, 농담 삼아 “여기 한국사람 있소!”라고 소리쳤다. 뜻밖에 “Oh! Korean” 하면서 환한 웃음과 함께 한글 안내서를 가져왔다. 함정 내부에는 넬슨의 전사 위치, 해전 실상, 전투상황도 등이 자세하게 전시돼 있었다.

특히 1800년대 전투함의 ‘해먹’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평시 식당 천장에 매달아 수병 침대로 사용하다가 전투 시에는 선체 난간의 방탄벽으로 활용했다. 전투가 끝나면 전사자를 담는 관으로 변했다. 해먹을 실로 기울 때 마지막 순간 군의관이 큰 바늘로 시신의 코를 찔렀다. 그리하여 “아얏!” 소리를 지르거나 움찔거리는지를 보고 최종 사망을 판단했다고 한다.

또한 포츠머스 항만 건너편에는 잠수함박물관까지 있다. 이곳에는 1901년 영국 최초로 건조한 잠수함 홀랜드호가 원형 그대로 있었다. 도시 외곽의 웅장한 해병대박물관은 창설 과정 및 전투 사례, 영국 해병중대의 장진호 전투도 상세하게 소개한다. 아울러 노르망디 상륙작전과정을 보여주는 디데이(D-day) 기념관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왕족의 교육기관 다트머스 해군사관학교

영국해군사관학교는 아름다운 남부 해안도시 다트머스(Dartmouth)에 있다. 1863년 창설된 이 학교 이전에 이미 영국에는 수개의 해군 장교 양성 학교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해군유년학교·기관장교학교·그리니치해군사관학교 등으로 이곳에서 대제국의 해군을 이끌 인재 육성에 온 힘을 다했다.

현재의 해군사관학교는 고교 졸업 이상의 학력자 중 소수 우수 인재를 선발, 1년 교육 후 해군 장교로 임관시킨다. 물론 선발 인원 대부분은 대학 졸업자들이다. 과거 해군 병력은 수십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3만여 명으로 축소됐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사관생도 인원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영국 왕실의 왕세자는 전통적으로 이곳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육 후 국왕 즉위 시 해군 원수 직위를 상징적으로 가졌다. 소개 책자에는 이들의 학교생활 기록 사진이 상세하게 수록돼 있다.

영국 공군박물관에 전시된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배낭여행 중인 한국 대학생.
영국 공군박물관에 전시된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배낭여행 중인 한국 대학생.


히틀러 본토 침공 의지 꺾어 버린 영국 공군

1940년 9월 7일 저녁, 런던 시내에 최초의 독일 공군 대공습이 있었다. 그 후 겨울까지 계속된 폭탄 세례에 영국인들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시민들은 침착하게 지하철 승강장으로 달려갔다. 컴컴한 지하실은 비좁고 악취가 났으며, 직격탄을 맞으면 집단 생매장을 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 노래하며 갓난아기를 달래기도 했다. 히틀러는 잔인하게도 낙하산형 시한폭탄도 함께 뿌렸다.

그럴수록 영국인들의 항전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최악의 도시 폭격에 1000여 명의 영국 공군 요격기 파일럿이 온몸으로 맞섰다. 20세 내외에 소위로 임관한 이들 중 1년 이상 생존해 중위로 진급한 장교는 거의 없었다. 결국 어린 청소년들의 애국심이 런던을 구한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활약상은 런던 교외의 왕립 공군박물관이 잘 보여주고 있다. 전시실에는 1918년 공군 창설 이후의 공중전·항공기발전사·우주전쟁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자료들이 있다.

이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대학생은 공군조종장교 장학생이었다. 그는 방학 기간 중 유럽 군사박물관을 답사하며 전쟁사를 연구한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푸른 꿈을 가진 열정적인 한국 청년을 해외에서 만나니 필자도 힘이 솟았다. 사진=필자 제공

<신종태 통일안보전략硏??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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