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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부대 찾아 180번의 무대… 그의 피아노는 ‘행복한 무기’였다

입력 2019. 05. 21   16:42
업데이트 2019. 05. 2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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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마음 & 이야기 윤효간 피아니스트


어린 나이 방황… 나이트서 연주 생활
KBS 관현악단 그만두고 밴드 시작
솔로 공연 1800회 최장기 기록
피아니스트 최초 국립극장 공연도
부사관 아내의 격오지 공연 부탁
예술 목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
쓰촨성 대지진 현장서 위로의 공연
내년엔 6·25전쟁 참전국 공연 계획

  
지난겨울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군사법정 사상 최초로 피아노 공연이 진행됐다. 엄숙한 법정을 따뜻한 피아노 공연장으로 바꾼 주인공은 바로 피아니스트 ‘윤효간’이다. 나눔의 피아니스트, 음악혁명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피아노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윤효간 피아니스트를 만나보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최초의 피아노 콘서트

지난 2월,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대법정에서 사상 처음으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딱딱하고 무거운 공기가 돌던 군사법원은 윤효간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시작되자 단숨에 말랑말랑한 피아노 공연장으로 변했다. 대법정을 가득 채운 장병과 군무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공연을 즐겼고, 큰 박수와 환호로 보답했다.

이날 공연에는 장병뿐만 아니라 군무원, 환경미화원, 군을 사랑하는 국민들도 함께 초청해 윤효간 피아니스트의 따뜻한 연주를 선물했다.



악보대로 치는 피아노, 방황의 시작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윤효간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대하는 자세도 남달랐다. 피아노 연주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의 나이 고작 일곱 살 때의 일이다.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도 남들과는 달랐다. 악보를 보고 표기대로 배우면서 치는 것에 의구심을 가졌다. ‘크게 치라는 데서 작게 치고, 작게 치라는 데서 크게 치면 어떻게 될까? 그게 잘못된 연주인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피아노 선생님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커가면서 부모님과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가출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부터 나이트클럽 피아노 악사 생활을 하는 등 피아노로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냉혹한 현실에 뛰어든 결과는 고달팠다. 그러나 힘든 삶 속에서 음악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고, 내공은 더 깊어졌다.

“피아노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저를 만든 밑거름의 시간이었습니다.”



피아노와 이빨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거나 유학을 가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쌓은 실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뛰어난 실력으로 그 어렵다는 KBS 관현악단에 들어갔고,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고, 결국 관현악단을 나와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마흔에 ‘윤효간 밴드’를 만들었고, 지금의 윤효간 피아니스트를 상징하는 피아노 솔로 공연인 ‘피아노와 이빨’을 시작했다.

‘피아노와 이빨’은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위로를 선물하고, 그들과 함께 삶의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고자 ‘찾아가는 공연’으로 시작했다. 소극장에서 시작된 공연은 1800회가 넘는 기록을 세웠고, 피아노 공연 사상 최장기 기록을 세우고 있다. 또 대한민국 피아니스트 최초로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기도 했고, 세계적인 공연장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공연을 하게 됐다.

“소위 ‘이빨을 깐다’는 말이 있듯이 단순한 피아노 공연이 아니라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공연의 제목부터 친근하게 다가가야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병들을 위해 찾아가는 공연을 펼치다

‘피아노와 이빨’ 1000회 기념으로 최초로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던 날, 관객 한 명이 윤효간 피아니스트를 찾아왔다. 강원도 화천에서 살고 있는 부사관의 아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남편이 있는 격오지 부대에 와서 공연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직접 찾아와 공연을 하실 수밖에 없는데 어려운 부탁이겠죠?”라는 이야기를 했다.

부사관 아내와의 만남은 윤효간 피아니스트가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예술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한 끝에 장병들을 직접 찾아가 공연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주로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을 직접 찾아가며 180회 정도 공연을 펼쳤다. 격오지 부대 특성상 피아노와 음향장비는 윤효간 피아니스트가 직접 싣고 간다.

공연 중에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빨’의 시간이 찾아오면 이야기를 통해 자신감을 찾는 장병들,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장병들도 많다고 한다.

윤효간 피아니스트는 장병들이,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위로의 선율,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윤효간 피아니스트는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현장에도 있었다.

냉장고와 TV 100대를 자동차에 싣고 3만㎞를 달리며 구호품을 전달하고 위로의 공연을 펼쳤다. 삶의 터전을 잃은 1000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공연을 펼쳤을 때, 그들이 수화로 고마움을 표시했던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었다.

한국을 알리고 싶어 무작정 미국 횡단 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입양아, 교포들을 찾아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공연을 펼쳤다.

윤효간 피아니스트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할 당시에 6·25전쟁 참전용사를 특별히 모신 적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참전국들을 방문해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새로운 공연에 도전하다

윤효간 피아니스트는 작곡가, 연주자, 공연기획자 등 별명이 많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문화를 좋아했던 그는 작년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맞아 세종대왕의 업적과 시대상을 담은 ‘세종대왕 600포스터전’을 기획했다. 세종실록을 읽고, 실록에 나온 주제를 바탕으로 600개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세종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시작된 프로젝트로 올해 전국 투어와 해외 투어도 계획돼 있다.

정해진 길대로 살고 싶지 않아 많은 시행착오와 방황을 겪었지만 결국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가치를 깨닫게 된 윤효간 피아니스트. 앞으로 그의 피아노 연주 선율이 또 어떤 가치를 전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장병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말

“외롭고 힘든 시간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먼 인생을 보면 이 시간이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동체가 무엇인지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장병 여러분,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지내세요!” 글=유윤경 작가/사진=윤효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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